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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May 17. 2022

법적인 관계와 혈연관계의 차이

세상에 지켜할 법은 많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법적인 관계이다.

나와 아버지, 그리고 나와 어머니는 혈연관계이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차이.

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법이 이어준 관계가 그 법의 틀 안을 벗어나게 되면, 물보다도 더 옅은 수증기와 같은...

흔히 말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걸 옆에서 지켜보는 피의 입장에서는 법적인 관계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피의 입장에서 물이 더 진하길 바랄 때가 있고, 물의 입장에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 안에 흐릿하게 보이는 과거의 따뜻했던 추억들이 허공으로 무참히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 찰나의 슬픔으로 기억되고 사라져 간다.



관계라는 게, 허허허-




수년 전 집이 기울고, 쓰러져, 산산조각이 났을 무렵, 부모님의 이혼 소식은 나에게 있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라던 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식 중 유일했던 나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에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하시라고 말씀드렸었다. 그렇게 법적인 관계가 끊어졌다.

기울어져 갈 때쯤 처음 아버지가 벌인 일들을 수습하느라 친한 형의 친한 변호사분을 통해 자문을 구했었던 적이 있었다. 처음이었다. 내가 변호사라는 분과 대화를 한다는 게. 잘못은 내가 한 게 아닌데 왜 내가 수습을 하고 있는지... 그때의 나는 피가 물보다 옅어지길 바랐던 것 같다. 내가 만난 최초의 변호사님은 친절하고 좋은 분이었다. 그렇게 내가 몰랐던 여러 가지 지켜야 할 법들을 몇 가지 알게 되었다.


수증기가 되었을 무렵.

갑작스러운 건강보험료 폭탄이 내게 왔었다. 온 가족이 피와 법적인 관계 안에 있을 때. 그러니까 쓰러지고 있을 때 밀리고 밀리던 건강보험료가 시간이 지나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에게 날아간 것이다. 공단을 찾아가 하나하나 설명을 드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하셨기 때문에... 충분히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네...?"


"아버지와 아들은... 혈연관계인 거잖아요?"


부정할 수 없었다. 연락은 안 하고 살았지만, 나는 아버지와 혈연관계이다. 고개를 떨구고 사정사정했었던 것 같다. 월세도 내야 하고, 공과금도 내야 하고, 그때 받는 공연 페이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다행히 좋은 담당자분과 상담이 진행되었다. 다소 복잡하지만 최한 보험금을 낮출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 주었고, 성심성의껏 자료를 준비해서 제출했다. 법이 그렇다고 하더라. 이름을 바꿔도, 국적을 바꿔도, 그분의 아들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고. 살면서 치유가 가능할까 싶었다. 유일한 움.




관계라는 게, 허허허-




즐거운 약속에 덩실덩실 지하철역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은 엄마의 첫 목소리만 들어도 무슨 일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벌금이 나왔다더라. 잊을만하면 꼭 이러더라고. 인생 참-

독촉 고지서를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이혼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잘못한걸... 어머니가 왜...?"


"아... 그게... 자동차 명의자 분이 어머니로 되어있어서..."


"......"


법적인 관계가 유효하던 시절.

반박할 수 없었다. 언제나 법 앞에서 반박할 수 없는 내가 답답했다. 처음 들어보는 교통 관련법들을 검색하고 알아봤다. 일단은 내야 한다.

근데..................................... 어렵다........... 법.............


'5년 전 벌금을 왜 이제야 보내주는 건지.'

'몰랐던 벌금인데, 잘못을 하지 않은 사람이 왜... 내가 하는 건지...'


나는 이 글을 주절주절-한탄하듯 써 내려가면서도 모르겠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했던가.

다가오는 건강검진에 가장 악영향을 주는 하루가 된 듯하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마냥 착하진 않아도 바르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와 상관없이 법 앞에 서게 되는 몇몇의 날들. 그렇게 해결하고 다음이 오고, 또 잊을만하면 또 다가오고, 완전히 끊을 수는 없는 걸까.

잔인하고 차갑지만, 오늘은 그랬다. 선택할 수 없는 게 혈연관계라고 하지만 가끔 이럴 때면 선택하고 싶다.

못된 생각으로 가득한 오늘 하루가 참 슬펐다.

그래서 법적인 관계과 혈연관계의 차이는...............

모르겠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텅텅텅-


애써 웃어 보인 하루가
안쓰러워 보이는 나를 위로해주는 기분.
그런 하루에게 미안해 내일은 반드시 크게 웃어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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