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한다, 나는 대학교 재학 당시 공부보다는 주로 노는 것에 더욱 관심을 두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종류의 변명들이 존재하는데, 과 공부가 나와는 맞지 않았다는 아주 잘 정제된 그럴듯한 것에서부터 "나는 방황하는 어리고 차가운 영혼이었다"는 다소 러프한 것까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변명들을 마치 변호하듯 나열한들 무엇하랴. 지금 내가 그러한 결과로 8학기를 마치고도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테지.
나는 필수수업을 미이수한 관계로 7학점의 수업을 더 들어야 하는 초과학기생이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한 계획은 내가 초과학기를 이수해야 한다는 부분이 명백해진 1년 전부터 이미 수립했었지만 말이다. 나는 철저하게 수립된 계획대로 "하하, 대학의 낭만을 조금 더 간직하고 싶었어요"라고 머쓱하게 웃은 후 나에게 주어진 7학점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오늘, 새로운 사건을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오늘 아침, 기분 좋은 마음으로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등록금 고지서를 확인하고 납부하기 위해서였다. '보자, 초과학기는 내가 알기로 학점 당 9만원이니 총 63만원을 지불하면 되겠군. 잠깐만, 초과학기생도 학생회비를 내야 하나..? 그럼 64만원이 나오려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노트북 화면으로 학교 전산시스템이 펼쳐졌다. 마우스 스크롤을 올려 등록금고지서를 확인했다. 등록금은 0원이었다.
학교 과사무실에 전화로 문의를 한 건 오후 즈음이었다. 등록금이 0원이라니. 수강신청을 완료한 상태인데 개강을 1주일 앞둔 상태에서 등록금이 고지되지 않았다? 무언가 전상 상의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통화연결음이 10초 정도 지속되다 전화가 연결되었고 나는 신중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잠시 뒤, 초과학기생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니 알려주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문의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근데 7학점이면 등록금의 1/2을 내셔야 하겠네요.. 이게 이번에 바뀌어서.."라며 말을 흐리는 대답과 함께.
전화를 끊고 불안감에 학교 홈페이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19일 기준으로 '수업연한 초과자에 대한 등록금 책정기준 안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학사안내란에 게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인문대는 360만원 정도의 등록금이 책정되니 1/2이면 180만원이다. 예상치인 63만원에서 3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노트북을 닫고, 머리를 싸매고, 눈을 감았다. 폭발적으로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 도대체 뭐지. 왜 이리 하는 일마다 엉망이지..
이후 길을 걸으며, 마치 내 주변의 땅이 조금씩 금이 가고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여태 알고 있던 나를 둘러싼 어떤 바운더리들이 조금씩 해체되고 붕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어마어마한 두려움과 어마어마한 공포가 엄습했다.
단순히 예상보다 120만원을 더 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한 괴로움보다 그 너머의 무언가가 나를 괴롭힌다. 나는 왜 대학생활을 그렇게 가볍게 대했을까. 세상을 비웃으며 단순히 학점을 채우는 것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겠다 말하던 것들이 지금 생각해 와서 보면 과연 무엇이었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지금 내게 남은 건, 화석이라는 칭호(졸업했어야 했는데 졸업하지 못한 학번을 가리켜 화석이라 부른다)와 늘어가는 나이, 그리고 깊어가는 한숨뿐이라는 것을 그때의 난 과연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