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한동안, 내 안으로 깊이 깊이 잠겨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괴로움에 젖고, 외로움이 젖어들수록 깊이, 더 깊이 들어갔던 때가.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옛날에 다 써버린, 그러나 차마 버리지 못한(난 다 쓴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노트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의 나를 들춰보며 한 장 한 장을 넘기다 작은 글씨로 눌러 쓴 글 하나를 발견했다. 괴로움과 외로움에 가득 젖어, 스스로에게 깊이 빠져든 예전의 내가 쓴글이었다.
(주변에 해부학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창 요가강사를 준비하던 작년으로 보인다. 저런 글을 썼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희미한데.. 기억은 음식 투정을 하는 어린아이 같아서 쉽게 잊을 것들에는 참 무정한 모양이다.)
Rotator cuff 극상근 극하근 소원근 견갑하근
Harmate 유구골 ... (페이지 가득 해부학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페이지 하단/
비도 오고. 우울해지는 오늘 같은 날은.
그러나 나에게 낯설지 않은 이 감정은.
익숙해지지는 않는지,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녀석.
외롭다? 이게 맞는 감정일까? 단순히 외로운 감정일까 이게? '외롭다'라는 말로는 충족이 되지 않는 듯한데... 뭔가 헛헛하고 공허하고 다소 답답하기도 한...
중요한 건 절대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건.. 너무 무모하다.
내 문제점을 외부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외부의 누군가에게 나를 위탁하고 맡기겠다는 것인데,
우선 외부의 누군가가 나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려고 할 만큼 이타적이지 않을 것이며 '적극적'인 소수의 사람들은 분명히 나에게서 무언가를 취하려는 사람들일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정말 가까운 누군가는 진심으로 내 문제점에 귀를 기울이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외부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아닐테니.
결국은 내가 내 내부에서 일을 해결해야만 한다. 괴롭고 힘들겠지만 원래 옳은 길은 괴롭고 힘든 법이다.
/두 줄 이상의 공백/
27년을 살며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내가 해결책을외부에서 찾으려 할 때마다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점. (아, 예외는 두 차례 있었다. 이용당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괴로웠지만 난 계속 내 내부에 귀를 기울였고 자연히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이런 메모를 쓰는 데도 과거의 그 시간들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으리라 생각한다.
/또다시 잠시간의 공백/
비유하자면 광야에 내가 덩그러니 서 있고 시기 때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날이 좋고 따뜻해지면 광야에 그러고 서 있는게 그렇게 괴롭지 않다. 조금 있으면 따뜻한 날씨에 주변에 꽃이 피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연히 날이 사나워지면 너무 괴로워지는 거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도 없는 광야니까. 어쩔 수 없이 비바람을 몸으로 맞으면서 버텼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조금은 단단해져서 지금 또 비바람이 불고 있지만 서 있을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