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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17. 2020

모두가 예쁘답니다

아이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어른들

미국에 산 지 두 해 정도 되었을 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한국인 아주머니가 이사 오셨다. 아주머니는 근처 대학의 석사 과정에 입학한 미혼 아들과 단 둘이 사신다고 했다. 당시 내 딸아이는 만 5세였는데, 어느 날은 그 아주머니를 우연히 마주치고는 서투른 존댓말을 꼬박꼬박 써 가며 그날 프리스쿨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드렸다. 이야기를 들으시고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예쁘게 생겼네."


한국에 살았더라면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을 텐데, 미국에서 고작 두 해 살았다고 미국인 마인드가 스미었는지 나는 아주머니의 말에 아연해지고 말았다.

어린 애가 부족한 한국어로 그렇게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칭찬이라고 하신다는 말씀이 고작 '예쁘게 생겼네?'

미국인들은 외모 칭찬을 하지 않는다. 외모를 칭찬한다는 것은 외모를 평가했다는 뜻이므로 무례하게 여겨진다. 나 역시 미국에서 옷차림을 칭찬 받은 적은 있어도 눈이 어떻고, 코가 어떻고, 생김새를 칭찬 받아 본 적은 없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가끔 아이를 보고 귀엽다(cute, adorable)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단지 아이에게서 받은 느낌을 표현하는 말일 뿐, 아이의 얼굴 생김새를 칭찬하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아이와 직접 대화까지 나누었다면 그들의 포커스는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아이의 '이야기'에 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래서 기분이 어땠어? 그랬구나. 나라도 그랬을 거야.
진짜 재밌는 이야기다. 얘기해 줘서 고마워.


반면 아이의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생김새를 평가하는 단 한 마디만 던진다면 아이에게 무례한 언사다.



대학 시절 두 학기를 호주에서 교환학생으로 보냈다. 당시 같은 기숙사에 독일 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그 아이가 물어 왔다.


"한국 여자들은 정말로 성형 수술을 많이 해?"


그러자 옆에 있던 싱가폴 아이도 내게로 고개를 돌리고는 눈을 반짝이며,


"나도 그렇게 들었어. 정말 많이 해?"


하고 물었다. 2005년이었다. 지금이라면 더 다양한 수술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당시로서 내 주위엔 쌍꺼풀 수술만이 보편적이었다.


"쌍꺼풀 수술은 흔해. 내 어머니의 친구 분도 내게 쌍꺼풀 수술을 권했어."


그 말에 싱가폴 친구는 무덤덤한 반면, 독일 친구는 경악을 하였다.


"그러니까 너더러 성형 수술을 하라는 거잖아. 수술할 만큼 못생겼다는 뜻이잖아. 그것 모욕이잖아! 넌 뭐라고 답했어?"

"아무 대답도 안 했는데..."


독일 친구는 "네 눈은 지금으로도 완벽"하다며 절대 수술을 하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나도 수술할 생각은 없었다. 어머니 친구 분의 수술 권유에 침묵했던 것은 그 분에게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런 권유를 너무 많이 받다 보니 지겹기도 했고, 대응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나는 독일 친구의 반응이 유난스러운 호들갑으로 느껴졌다. 사실 어머니의 친구 분이 쌍꺼풀 수술을 권유했을 때 어머니 역시 맞장구를 치셨고 이후로 내게 수술 의향을 몇 번이나 물어보셨지만 독일 친구에겐 차마 그 얘기까지 하지 못했다. 더 큰 호들갑이 뻔히 예상되었고, 나는 호들갑을 싫어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 엄마로 살다 보니 나도 독일 친구와 비슷해졌다.



외모는 통제 밖의 영역이다. 성형 수술이 가능하다 해도 여기 조금, 저기 조금 고치다 보면 다른 부위에도 욕심이 나고, 욕심 나는 만큼 하다 보면 도무지 끝이 없다. 통제 밖의 영역이므로 건드릴수록 이상해지기도 쉽고. 금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외모를 편안히 받아 들이는 것. 눈이 작으면 작은 대로,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주름이 지면 진 대로. 누군가가 나를 외모로 무시한다면 그 사람은 신경 써줄 가치가 없다. 하지만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때때로 그 사람은 가족이기도 하다.

낳을 때는 괜찮았는데 눈이 언제 그리 작아졌니?
여자 피부가 저러면 못 쓰는데.
너는 가슴이 작아도 너무 작아. 병원에 가 보자.

그래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정말로 병원에 간 적이 있다. 대학병원 내분비과였다. 머리칼만 곧을 뿐 <아기공룡 둘리>의 마이콜을 닮은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몇 번 눌러 보시더니 생리 주기를 묻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셨다. 생리가 정상이면 호르몬도 정상이므로 내분비 관점에선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럼에도 어머니께선 "그래도 얜 너무 작은데..." 하셨고,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크기가 불만이시면 성형외과로 가시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 길로 성형외과를 찾아 등록할 태세셨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정말로 괜찮겠느냐며 몇 번이나 확인하셨고, 아버지는 "그래도 가슴은 작으면 안 되는데..." 하셨다.


오랜 시간이 흘러 출산과 모유수유를 겪고 딸아이을 기르며 그 일을 회상하니 찬웃음만 나온다. 눈이 작든, 가슴이 작든, 피부가 상했든 괜찮다. 아무리 남들이 안 괜찮다 하여도 부모만큼은 괜찮다, 괜찮다, 하여야 한다. 너는 있는 그대로도 괜찮고,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고, 아이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반대로 부모가 먼저 나서 아이에게 성형을 권하거나 습관적으로 외모를 지적한다면 '너는 있는 그대로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셈이다.


아이의 프리스쿨 친구인 C는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를 닮았다. 얼굴뿐만 아니라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과거의 나였더라면 C에게 "너 아리아나 그란데를 닮았네!" 하였을 텐데 부모가 된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C의 엄마 또한 연예인을 닮았다. 그녀는 미국 드라마 <오피스>에서 안젤라 역을 맡은 배우를 닮았는데 역시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와 말투까지 똑 닮았다. C의 가족은 우리가 타주로 이사온 이후까지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C나 C의 엄마에게 아리아나 그란데나 안젤라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C는 C이고, C의 엄마는 C의 엄마인 것이 중요하지, 그들이 어떤 유명인을 닮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Jin은 나에게서 나를 보지 않고 연예인을 보는구나'라는 오해의 여지를 감수할 정도로 그 사람의 외모를 칭찬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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