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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Jun 04. 2021

오늘도 주말만 기다리고 있을 민수에게


초등학교 4학년 같은 반 친구 정자는 유독 마르고 말이 없었다. 말을 안 한 건지 말을 못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없다. 아침 조회가 끝나면 정자는 '희망의 반'으로 수업을 들으러 갔다. 희망의 반은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특수교육을 받는 반이었다. 아침, 점심시간, 체육시간밖에 함께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정자와 짝꿍이 되는 것을 싫어했다.


"으. 이정자랑 짝꿍이래요."

남자애들은 정자와 짝이 된 아이를 약 올리기도 했다. 선생님은 모두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했지만 나도 정자와 짝이 되는 것이 싫었다. 여름에도 두꺼운 옷을 입곤 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났고, 머리에 벌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풍날 정자는 도시락이 없어서 선생님이 밥을 챙겨주었는데 어느 날은 조심조심 자신의 도시락을 꺼냈다. 도시 락안에는 흐물흐물 힘이 없는 김밥이 있었다. 속재료도 몇 개 없고 꾹꾹 눌러 싸지 않아서 젓가락으로 김밥을 집으면 단무지가 후드득 떨어졌다. 속으로 정자가 김밥을 쌌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정자가 엄마와 함께 학교에 왔다. 엄마는 한쪽 팔이 불편해 보이셨다. 엄마는 대뜸 정자를 자주 놀리던 남자아이를 찾더니, 그 자리에서 아이를 바닥으로 밀치고 욕을 퍼부어댔다. 그 후로 정자는 공식적인 왕따가 되었다. 아이들은 정자를 놀리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정자와 친하게 지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우연히 티브이를 보다가 고아원의 24시간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6살 남자아이가 시장에서 부모를 잃어버렸는데, 부모는 누구인지 자신의 이름은 무엇인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버린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남자아이의 엄마가 고아원을 찾아온다. 모자이크 너머로 보이는 엄마의 얼굴이 앳되다. 엄마는 아이를 보자마자 "민수야"라고 불렀다. 고아원에서 다른 이름으로 지내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던 아이는 "민수야"라는 말에 고개를 돌렸다. 아이의 엄마는 '민수야 안녕~'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고 보다 못한 고아원 원장이 '어머니 아이한테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죠."라고 말했다.


아이를 고아원에서 보육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마다 집에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엄마가 다음 주에도 보러 오겠다고 하고 떠났다. 엄마를 봤을 때도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도 엄마가 자신을 다시 보러 오겠다고 말할 때도 아이는 무표정했다. 그리고 엄마가 떠난 뒤 친구들 한테가서 자랑하며 웃었다. "나 엄마 왔다." 그리고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일주일 뒤 엄마가 민수를 데리러 왔다. 민수를 데리고 간 엄마의 집은 모텔이었다. 모텔방에서 민수를 혼자 낳고 길렀다고 했다. 낮에는 어린 민수를 혼자 두고 일하러 나갔다고 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라면을 끓여서 물에 씻어서 먹이며 민수를 키우다가 이렇게 굶기느니 새 부모를 찾아주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민수 엄마는 라면을 먹이더라도, 라면도 못 먹여 굶기더라도 민수를 끝까지 옆에 둬야 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한마디에 무너지고 말았다.


"제가 어릴 때 엄마는 집에 며칠씩 안 들어왔고 컵라면 살 돈도 없어서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고 살았어요."


민수 엄마가 자신의 엄마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부모는 내가 노력한다고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민수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나는 어땠을까? 마트에서 물건을 훔쳐먹고살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또 꿈을 꿀 수 있었을까? 내가 정자 엄마라면 딸을 위해 딸을 괴롭히는 남자아이를 힘으로 넘어트려 버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어진다


이젠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아동학대는 끝도 없이 일어난다. 아이를 학대한 부모들, 아이를 버린 부모들의 기사를 보며 댓글창에 "어떻게 아이를 버릴 수 있냐 네가 사람이냐"로 시작해서 부모를 욕하는 댓글을 썼다가 이내 지워버린다.


나는 흐물흐물한 김밥을 먹는 정자에게 나의 도시락을 나누어준 적도 없고, 먹을 것이 없어 컵라면을 훔치려고 마트 앞을 기웃거리는 아이에게 눈길을 준 적도 없다. 그래서 최소한 침묵하게 된다.


부모에게 욕할 자격이 없는 나는 부모가 아닌 아이에게 댓글을 단다.


"정인아, 너의 부모가 양부모가 모두 너를 버렸지만, 너의 잘못은 아니야. 너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만 기억해줘. 그곳에서는 편안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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