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디락스 Mar 22. 2022

엄마의 세번째 남친


베이징에서 기차를 탔다. 2박 3일을 꼬박 달렸다. 중국 남쪽 쿤밍에 도착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베이징을 떠났는데 2박 3일 기차로 달리니 봄에 도착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중국 소수민족이 사는 곳을 여행했다. 중국에는 다양한 소수민족이 산다. 각자 자기들만의 언어가 있다. 생활방식, 의복 모든 것이 다르다.


커다란 호수 주위에 사는 모쑤족은 모계사회이다. 모쑤족 언어에는 ‘남편’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남녀는 결혼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진다.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키운다. 집안에 최고 어른은 할머니다. 남자는 자기 집에서 누나와 여동생의 조카들을 키운다. 중국 정부는 이런 결혼 풍습이 미개하다며 일부일처제를 강요했다. 하지만 아직도 모계사회는 유지되고 있다.


김정자는 모쑤족으로 태어나야 했다. 엄마가 3번째 남자친구가 생긴 건 내가 대학생 때였다. 언니는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동생은 군인이었다. 우리 집 세계 3차 대전을 기억하는 것은 나뿐이다. 내가 이 기록을 하지 않으면 이 사건은 영원히 잊힐 것이다. 의무감에 글을 쓴다.


엄마의 당당함에 나는 완전히 기선제압 당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50인데 언제까지 아방 시중들멍 살꺼니?, 만나는 사람은 60대 경찰고이, 이혼할 생각은 어쪄, 그냥 만나서 차 한 잔 마시는 사이여.”

(나도 이제 나이가 50인데 언제까지 아빠 시중만 들면서 사니? 만나는 사람은 60대 경찰이야. 이혼할 생각은 없어. 그냥 만나서 가끔 차 한 잔 마시는 사이야)


나는 동네 호프집으로 아빠를 불렀다. 아빠와 둘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빠에게 꼭 할 말이 있었다.


“아빠 엄마랑 이혼할꺼? 할 거면 해도 돼. 이제 우리 다 컸잖아”


오히려 이 상황에서 두 사람이 이혼을 한다고 하는게 더 자연스러웠다. 엄마의 인생도, 아빠의 인생도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게 된 나이었다. 더 이상 나의 엄마로, 나의 아빠로 나의 부모님으로 꼭 붙여서 나의 결혼식 자리를 채워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의 행복을 끝까지 책임져 줄 수 없었다.


20살을 갓 넘긴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사람이 바람이 났는데, 둘 다 이혼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결혼생활은 사랑과 더불어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만으로 시작한 결혼은 유통기한이 짧다. 이해관계만으로 시작한 결혼은 불행하다. 이상적인 결혼이란 사랑과 이해관계의 퍼센티지가 잘 어우러진 관계다. ‘행복한 결혼’은 사랑과 이해관계의 절묘한 조합, 그 어딘가에 있다. 결혼이 사랑만으로 유지된다고 생각했던 20살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랑과 더불어 이해관계를 어우러져 생각하면 둘의 결혼생활도 뭐 나쁘지 않았다.


행복한 가족도 있다. 불행한 가족도 있다. 행복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기 위해 애쓰는 가족도 있다. 엄마 아빠는 정신과에서 부부 상담을 받았다. 전종덕이 정신과에 들어갈 생각을 했다는 점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때쯤 나도 정신병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혹시 가족 할인은 안 되나 속으로 잠깐 생각했다.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엄마한테 왜 이혼하지 않냐고 물었다.

“제주시 땅뙈기 아직 아빠 명의로 되이신디 누구 좋으랜 이혼하느니?”

(통역: 제주시 부동산이 아직 아빠 명의로 되어있어. 누구 좋으라고 이혼하니?”)


이혼하지 않는 이유가 자식들 때문이 아니라서 고마웠다. 자식들 때문이 아니고 부동산 명의 때문이라서 고마웠다. 만약 ‘너네 때문에 그냥 참고 산다.”라고 대답했다면 나는 아주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배낭을 메고 혼자 여행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계사회를 이어가는 정자의 후예들을 직접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둘은 함께 산다. 엄마한테 남자친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식 셋을 모두 떠나보낸 집에서 같이 아침밥을 먹는다.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엄마가 귤을 따면 아빠는 귤을 나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