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아들에 대한 소망을 오랫동안 쌓아 왔기 때문일까. 내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내가 고추를 달고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고 뱃속 깊은 곳에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왔기 때문일까. 내 뱃속에선 줄줄이 아들 둘이 나왔다. 둘째 아들을 낳던 날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을 둘이나 낳아서 사돈집에 체면이 선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가끔 외식했다. 아빠의 구형 갤로퍼를 타고 앞 좌석엔 엄마와 아빠가, 뒷좌석에는 초등학생인 언니와 나, 유치원에 다니는 남동생이 줄줄이 앉았다. 뒷좌석 가운데 자리는 불편했다. 언니와 동생이 양옆으로 창문을 막고 앉아 있으면 창밖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운데 자리는 목 받침대도 없었다. 왠지 가운데 앉아 있으면 남의 차에 얻어 타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외식하러 가는 길은 기분이 좋다. 집 가까운 곳 시내에 양념갈비 집에 갔다.
“여기 양념 갈비 5인분 주세요.”
양념갈비 5대로 시작했지만 언제나 고기를 추가했다. 소주를 한잔 마신 아빠가 갈비 1인분을 추가하고, 밥과 상추는 손도 대지 않고 오로지 고기만 굽는 족족 먹어대는 남동생이 1인분를 추가했다. 주인아저씨가 아들이 맛있게 잘 먹는다고 칭찬하면 기분이 좋아진 엄마가 1인분 추가했다. 상추에 쌈을 싸서 먹고 있는대도 엄마는 고기만 먹지 막고 상추에 싸서 채소랑 같이 먹으라고 이야기한다. 내 입맛에 갈비는 너무 달고 짰다. 이 집은 갈비 맛집이 아니고 양념게장 맛집이었다. 온 가족이 갈비에 한 눈이 팔려있을 때 나는 양념게장을 먹고 또 먹었다. 양념게장을 숯불 불판 구석에 구워 먹었다. 달곰하고 매콤한 게장 양념이 불판의 불맛을 입으면 고소하고 감칠맛이 났다.
소주 한 병을 기분 좋게 마신 아빠는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엄마는 무슨 노래방이냐고 어서 집에 가자고 했다가 삼 남매의 채근에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언니는 그즈음 HOT에 단단히 빠져 있었다. 문희준이 프린트된 책받침을 만지지도 못 하게 했다. 당연하게 노래방 첫 곡은 에이치오티의 행복이었다. 오늘의 우리 집 분위기와도 그럭저럭 어울리는 노래였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무슨 노래를 부를까 책자를 뒤적이는데 아빠가 이 노래를 선곡한 것이다. 김국환의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 아빠와 남동생은 마이크 두 개를 하나씩 나눠 가지고 노래를 시작했다.
뚜비뚜바 뚜뚜바 뚜비뚜바 뚜뚜바. 아들아 무엇을 생각하니 난 널 보기만 해도 좋구나♪♬
개구리도 잡고싶고 잠자리도 잡고 싶고 하고 싶은게 너무너무 많아요♪♬
또 저 노래다. 아빠는 아들을 보며 세상 인자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남동생도 귀여운 목소리로 아빠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아빠도 남동생도 꼴보기 싫다. 기분 좋게 나왔는데 저 노래 때문에 기분을 망쳤다. 엄마가 둘째 딸도 노래 한곡 불러 보라고 노래방 책자를 나에게 건내주었지만, 노래를 찾는 척 하다가 책을 덮어버렸다. 노래 부를 기분이 아니다.
아마 저 노래 가사가 ‘아들아 무엇을 생각하니 난 널 보기만 해도 좋구나’가 아니고 ‘딸아 무엇을 생각하니’ 였다면 아빠는 이 노래를 이토록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에게 아들을 특별하고 또 특별했다. 아빠는 아들과 듀엣곡을 부르며 치아가 54개쯤 보이도록 뚜비뚜바 웃었다. 방금 먹은 꽃게가 내 뱃속에서 집게발을 움직이는 것 같다. 뱃속이 따끔거리고 소화가 안 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에 대해 알고 있었다. 여자는 고추가 없고 남자는 고추가 있다. 아빠는 목욕하고 나온 남동생의 고추를 보며 목젓이 보이도록 웃었다. 고추 따 먹어버린다면서 아빠는 장난쳤고 동생은 까르르 웃으며 도망갔다. 둘 다 싫다. 만약 저 고추를 내가 달고 나왔다면 남동생은 이 세상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터였다.
엄마 아빠 그 누구도 대놓고 아들이 최고라고 말과 글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집안의 중심은 남동생이었다. 아빠의 구형 갤로퍼 서랍장에는 500원짜리 동전이 가득했는데 저 동전의 주인은 동생이었다. 아직 자전거도 잘 못 타는 어린아이에게 귤 상자 좀 날라보라며 장난을 쳤지만, 언니와 나는 알고 있었다. 남동생 몫은 저 귤 상자 하나뿐이 아니었다. 아빠가 동생을 보는 표정에서, 장난스레 건네는 말의 뉘앙스에서 ’아들‘이 가지는 힘을 알고 있었다.
인간이 불만을 품고 폭파하는 순간은 원래 가지고 있던 무엇인가를 빼앗겼을 때다. 내 것으로 생각했는데 빼앗겼을 때. 그때 사람들은 내 것을 찾기 위해 들고 일어선다. 그러므로 우리 집에서는 지독한 아들 사랑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원래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언니와 나와 아들에게 사랑을 10점, 10점, 10점 주었다가 아들을 중심으로 5점 5점 20점으로 재분배 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태어날 때부터 무게추는 기울어져 있었기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김국환의 뚜비뚜바> 같은 노래를 들 때면 이따금 뱃속이 따끔거리기는만 우리 집은 원래 그런 것이었으니까.
“아들을 둘이나 낳아서 사돈집에 체면이 선다.”
내가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아빠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순진한 얼굴로 이빨을 54개쯤 내보이며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냈다. 나는 조용히 있었다. 우리 집은 원래 그런 것이었으니까. 아빠는 나이가 들었고 바뀌지 않을 테니까. 아빠가 나에게 건네준 돈 봉투에는 5만 원짜리가 두둑했다. 내가 태어날때는 딸인걸 알고 집으로 가버렸지만, 남동생이 태어났을때는 기분이 좋아서 간호사들에게 만원씩 손에 쥐어줬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돈을 받았으니 된것 아닌가. 그래서 난 입을 다물었다.
아빠의 활짝 웃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 모습을 보면 뱃속 꽃게가 집게발을 움직이는 것같았다. 산 채로 사등분 잘려 빠알간 양념을 생살에 뒤집어 쓴 것으로도 모자라 숯불이 지글지글 구워진 꽂게가 다시 살아나기라도 한걸까. 속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