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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Oct 14. 2022

과자부스러기 같은 기억들


#1.

한겨울이면 귤을 수확했다. 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는 예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얇은 가지는 귤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축 처져 있었다. 한겨울의 귤나무는 젊은 엄마를 닮았다. 한 손은 큰 아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유모차를 밀고 있고, 배는 불룩 튀어나와 있는 젊은 엄마의 모습. 엄마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축 처져 있다.


한차례 수확을 하고 나면 노랗던 귤밭은 어느새 초록빛이었다. 아이 낳은 산모가 미역국을 먹듯, 수확을 마친 귤나무에 거름을 부렸다. 봄이면 소 거름을 잔뜩 실은 파란 트럭이 분주했다. 덜컹거리며 달리다 마을 도로에 조금씩 거름을 흘렸다. 학교에 갔다가 돌아올 때면 거름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온 마을이 소거름 냄새로 진동했다. 창문을 닫아도 소용없었다. 밭에서도, 우리 집골목에서도, 옆집 아저씨한테서도, 아빠 차에서도,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엄마 아빠 옷에서도 똥냄새가 났다.


밭일을 하고 3시쯤 엄마 아빠가 돌아왔다. 아빠가 먼저 목욕했다. 머리를 말리던 아빠가 밭에 지갑을 두고 온 것 같다고 했다. 오토바이 타고 밭에 같이 다녀오자고 했다. 조그마한 빨간색 엄마 오토바이에 아빠가 앉아 있으니 아빠가 더 커 보였다. 나는 아빠 뒤에 앉아서 허리를 꼭 잡았다. 온 마을 똥바람이 내 얼굴을 때렸다. 코를 막고 싶었지만,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빠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빠한테서 깨끗하고 안전한 냄새가 났다.




#2.

우리 집 바로 뒤에는 옆집 아저씨네 귤밭이 있었다. 아저씨네 귤밭과 우리 집 뒷마당을 나누는 기준은 줄줄이 심어진 방풍 나무였다. 방풍 나무가 제주도 바람으로부터 귤나무들을 지켰다. 방풍 나무는 일년내내 잎이 초록이었다. 봄에도 겨울에도 바람을 막기 좋았다. 매미들도 방풍나무를 좋아했다. 한여름에 매미채를 들고 제일 먼저 가보는 곳이 방풍 나무였다.


방풍 나무는 나의 만성 비염의 원인이기도 했다. 봄에 내 방 책상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면 방풍나무가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서 노란 가루가 펄펄 날렸다. 엄마는 하루 두 번 바닥 걸레질을 했다. 반나절만 있어도 바닥에 노란 가루가 쌓였다.


엄마는 투덜투덜하면서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그런데 한번도 우리에게 바닥을 닦게 한 적이 없었다. 청소도, 설거지도, 빨래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난 청소기를 돌리는 법도 몰랐고, 밥솥에 밥을 하는 방법도,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도 몰랐다. 29살, 결혼하기 며칠 전 압력밥솥에 밥하는 방법을 배웠다.


엄마는 쌀을 두어 번 휘휘 씻고, 밥솥에 넣어서 고르게 균형을 맞췄다. 손을 넣어서 물을 맞췄다. 엄마는 밥솥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런 거 할 줄 몰라야 좋은 집에 시집가서 고생 안한덴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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