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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Oct 14. 2022

부모와 불안정 애착을 맺은 채 어른이 되었다(3)


‘받아들임’이라는 단어에서는 말랑말랑한 느낌이 난다. 쫀득쫀득 맛있는 말랑카우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날 것 같다. ‘인정’이라는 단어에서는 시원한 박하향이 나는 것 같다. 코가 펑펑 뚫리는 듯 상쾌하고 쿨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받아들임과 인정에서는 보신탕 냄새가 난다. 들깨 냄새와 깻순이 어우러진 슬프지만 고소한 그 냄새.


어릴 적 우리 마을 어귀에는 작은 보신탕집이 있었다. 두 시간에 한 번 오는 5번 마을버스를 타고 ‘대원동가든’이라는 보신탕집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면 우리 집이 있었다. 대원동가든에서는 영양탕을 팔았다. 영양탕은 아프리카 초원의 영양으로 만드는 음식이 아니었다. 개고기로 만든다는 사실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대원동가든 주인아저씨는 가게가 한가할 때면 하얀 러닝에 반바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부채를 부치면서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다.


아저씨가 어슬렁거리면 괜히 불안해졌다. 아저씨가 몰래 동네 개들을 훔쳐 가면 어쩌지 생각했다. 저녁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종종 동네 강아지들이 왈왈하고 짖어대는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그럴 때면 초등학생이던 나는 대원동 아저씨가 낫을 들고 강아지를 잡으러 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악몽을 꾸고 다음 날 일어나 초등학교에 갈 때는 또 그 대원동 가든을 지나가야 했다. 대원동 가든 냄새는 오전과 오후가 다르다. 오전 등굣길에는 기가 막히도록 끔찍한 냄새가 난다. 아마 지옥이란 곳이 있다면 이런 냄새가 날 것이다. 빨갛게 녹이 슨 쇠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엄마가 돼지갈비에 핏물을 빼려고 반나절 담가놓은 그 빨간 물에서 나는 냄새와도 비슷하다. 슬픈 냄새다. 어젯밤 나의 상상이 만들어낸 냄새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굣길에 버스에서 내려 대원동 가든을 지날 때면 들깨 냄새와 깻순 냄새가 어우러진 ‘오후의 대원동가든 냄새’가 난다. 고소하지만 슬픈 냄새가 난다. 우리 아빠는 대원동가든 VIP 손님이었다.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빠의 옷에서는 오전 오후의 대원동가든 냄새에다가 한라산 소주의 냄새까지 더해진 아빠 냄새가 났다.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아빠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알 수 있었다.


받아들임과 인정은 말랑카우처럼 달콤한 것이 아니었다. 보신탕처럼 전투적이고 호러블하고, 기괴하고, 버거운데, 묘하게도 향기롭고 친숙한 그런 것이었다. 부모에 관한 글을 쓸 때 나의 코끝에서는 자주 보신탕 냄새가 났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자. 그래, 인정하자.”

딱 끝-


이렇게 마음을 먹어 보아도, 내 마음은 자꾸만 부모님이 미워졌고, 이런 내가 못나 보였다.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하고 자꾸 죄책감만 커졌다. 인정하자~라고 마음만 먹으면 말랑카우가 입에서 사르르 녹듯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대원동 가든 아저씨처럼 러닝셔츠에 낫을 든 모습처럼 이를 악물고 해야 하는 것이었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말랑카우처럼 살살 녹듯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는 뚱뚱한 빙그레 바나나 우유를 가방에 싸주었다. 한 손으로 들 수도 없을 만큼 커다랗게 보였다. 나보다 어마어마하게 키가 큰 선생님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목을 마르는데 뚜껑을 까버리면 분명 반도 마시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매번 음료를 마시지 않은 채 그대로 가지고 왔다. 받아들임과 인정은 빙그레 바나나 우유처럼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거였다. 유치원생 같은 어리고 미숙한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받아들임과 인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엄두가 나지 않는 동시에 별것 아니기도 했다. 돈이 드는 게 아니었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지혜롭고 그릇이 큰 누군가가 딱 나타나서 반드시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받아들이고 인정을 하는데 꼭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금.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고,

딱 인정해 버리고 받아들이면 그만이었다.


몸에 좋다는 보신탕을

한입 넘기듯이, 꿀꺽.


“그래. 이게 나다. 환영받지 못하는 둘째 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많이 배우지 못했다. 우아하거나 고상한 부모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은 지영이네 아빠처럼 의사도 아니고, 수안이네 엄마처럼 선생님도 아니다. 지안이네 처럼 화목하지도 않았다. 사는 게 힘들어서 부모님은 싸우고 또 싸웠다. 엄마는 무뚝뚝하고 무심했다. 아빠는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난 가슴에 화상자국을 남기고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다.”


“누가 조금만 도와줬으면 내 인생이 편해 질 텐데, 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나아질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이 간절하지만, 불행히도 나에게는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없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런 나의 성장 환경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까지 나 혼자서 인생을 더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별 기대가 없던 둘째 딸이었기에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 없이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열등감이 있었기에 공부를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 싸우는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에, 그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 알기에 내 아이들 앞에서는 조심할 수 있었다.부모님도, 나의 언니와 남동생도, 나의 집안도 내 마음에 쏙 들진 않지만, 이 모든 것은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했던 요소들이다. 나라는 사람은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다. 저마다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갈 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상처는 이런 모습일 뿐이다.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나만 살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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