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한 엄마와 아빠를 상상해 본다.
“안/녕/하/세/요/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짓는 36살 금쪽이 엄마 김정자, 아빠 전종덕입니다.”
제주도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아도, 음의 높낮이에서 다 알 수 있다. 수백 번 연습해서 표준어를 구사해도 제주도민은 티가 난다. 아빠는 방송용 분장을 해도 얼굴이 보랏빛이다. 전형적인 술톤이다.화기애애하게 촬영이 시작된다. vcr이 켜진다. 나무에 매달린 귤 위에 하늘색 코끼리가 앉아 있다. 노란 컨테이너에 아이를 혼자 두고 일하는 모습 보고 패널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시작하자마자 오은영 박사님은 비디오를 멈춘다.
“어머님 이렇게 화면으로 보니까 어떠세요? 부모는 아이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 엄마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대답할 것이다
“기꽈? 제주도에선 다 영 키움니다.”
(통역: 그래요? 제주도에선 다 이렇게 키워요)
어이없다는 패널들의 표정. 그리고 vcr이 계속된다. 캄캄한 밤이다. 아이들을 자고 있다. 아빠는 술에 잔뜩 취해서 집에 들어온다. 아이 셋을 모두 깨운다. 엄마는 왜 깨우냐며 화를 낸다. 싸우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자다 일어나서 엄마 아빠의 싸움을 본다. 싸우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오은영 박사님이 화면을 멈춘다.
“잠깐, 잠깐만요. 아버님 이렇게 화면으로 보니까 어떠세요?”
그럼 아빠는 붉으락 푸르락 얼굴이 변하고 밖으로 나가버릴 것이다. 촬영이 중단된다. 오은영 박사님은 아주 어려운 케이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결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화면을 보고 후회하고 반성하며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도 않을 것이다.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엄마, 어릴 때 엄마 아빠 우리 앞에서 치고받고 싸웠던 거 기억나?”
엄마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가 잘했던 것을 나열한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한 일과 포기한 것들을 나열한다. 뼈빠지게 일해서 대학 대보 내주고, 유학 보내주고, 삼시 세끼 다 차려줘.... 예방접종하러 애 셋 대리고 30분 걸어서 버스 타고 병원 갔던 이야기까지 나온다. 나는 오은영 박사님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다신 연락 안 한다. 빠이 짜이찌엔. 엄마 번호 삭제
보름 뒤면 다시 엄마 번호를 입력할 것이다. 또 전화할 거다. 애들 사진을 보여줄 것이다. 서운한 생각이 든 날은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할 거고 결국 번호를 삭제할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에 또 번호를 입력할 것이다. 너무 자주 지웠다가 입력해서 사실 번호도 외웠다.
번거롭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나중에 조금 덜 후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