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디락스 Oct 14. 2022

난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니야

엄마는 화가 잔뜩 나서 씩씩거리더니 나에게 쏘아붙였다.


“너 결혼하고 정신 어떵 되부러시냐?”

(너 결혼하고 정신이 나간 거 아니니?)


“결혼하고 정신이 나간 게 아니야. 정신과 치료는 이미 이전부터 받고 있었어. 이미 정신병자인데 엄마가 모른 거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꿀꺽 삼켰다. 언제부터일까. 나는 왜 삼 남매 중에 유일하게 ‘엄마가 아무 말이나 다 해도 되는 자식’이 되어버린 걸까


내가 결혼을 하자 엄마는 갑자기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발신인-엄마’가 뜨면 둘째 딸 마음이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자꾸만 나에게 전화를 했다. 논문을 쓰느라 한창 바쁜 어느 날, 따르릉 전화가 와서는 다짜고짜 남동생 욕을 실컷 했다.


“아들놈은 돈 모을 생각은 안허고 매일 놀러만 다념쪄. 이젠 그놈한테 바라는 거 아무것도 어쪄,”


아들 욕으로 시작한 푸념은 언제나 언니 걱정으로 끝이 났다.

“큰딸은 밥 잘 먹고 공부햄신가이, 올해 시험 합격해야 될껀디….”


스피커폰을 켜두고 노트북 타자를 치며 건성으로 들었다. 엄마는 혼자 화가 났다가 또 혼자 마음이 조금 차분해져서는 전화를 끊었다. 어느 날은 치킨을 시켜놓고 먹으려고 후라이드 닭 다리를 앙- 물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뺄랠랠래, 발신인 엄마. 엄마 목소리가 한결 가벼웠다. 나의 안부를 묻는 척하더니 별안간 맥락에도 안 맞는 아들 칭찬을 시작한다.


“그래도 아들놈도 다 생각이 이신거 닮아. 무슨 정규직 시험도 준비하는 거 닮고.”


아들놈이 정규직이 되는 것 보다 나는 치킨이 식기 전에 먹는 것이 중요했다. 스피커 폰을 틀어놓고 건성으로 들으며 쩝쩝 치킨을 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자기 할 말을 했다. 엄마의 말에는 용건도 없고 기승전결도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 모든 생각과 감정을 나에게 쏟아내며 내 몸을 흰 종이삼아 마인드맵 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딱히 무슨 대답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다. 엄마가 아무말대잔치를 시작하면 나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냥 스피커폰을 틀어두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쯤은 별것 아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갔다.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을 모두 쏟아냈지만, 대부분은 엄마도 혼자 감당하기 힘든 나쁜 감정이 대부분이었다. 요양원에서 중증 치매로 3살짜리 아기가 되어버린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온 날, 아빠와 싸운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재산 분할로 형제들끼리 얼굴 붉힌 날, 아들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자는 모습이 꼴 보기 싫은 날, 점집에서 언니에게 ‘관운이 없다’라는 말을 들은 날. 엄마는 어김없이 나에게 전화했다.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노릇이 처음엔 조금 짜릿했다. 얼굴에 뾰루지가 났을 때 짜내면 흉이 날 걸 알면서도 짜내는 것처럼, 그런 묘한 기분 좋은 감정이 생겼다. 평생 언니와 동생에 치어서 엄마의 관심을 이렇게 오롯이 받아본 적이 없었다. 뭔가 조금 잘못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항상 엄마의 전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엄마의 전화를 거부하게 된 건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이다. 아이를 낳고 나니 내 마음속 감정 쓰레기통에 여유가 없었다. 내가 내 속에서 만들어낸 분노와 두려움이 가득해서 엄마의 그것을 받아줄 여력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꽉 차 있어서 엄마의 감정까지 들어오면 출렁하고 넘쳐서 내 온몸을 덮쳐버렸다.

유튜브에 ‘아이 기저귀 가는 방법’ ‘아기 목욕시키는 방법’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럴 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나의 마음은 이미 화가 나 있었다. 아기는 잘 자고 있냐는 말도 기분이 나빴다. 걱정되면 와서 아기라도 좀 봐 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다가 내 묵은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엄마 아들 자랑 하는 거 듣기 싫다부터, 아기 봐줄 거 아니면 내 집에 오지 말아라. 왜 이제와서 내가 하는 일에 참견이냐. 난 미친년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뭐? 아기 낳으면 부모님 고마운걸 안다고? 난 아기 낳아보니까 이렇게 이쁜 아기를 엄마는 왜그렇게 귀찮아 했을까 그 생각밖에 안들어."


엄마는 입이 떡 벌어져서 아무 말도 못 하더니 어버버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 결혼하고 정신 어떵 되부러시냐?”


엄마는 당황했다. 그리고 우리를 돌려보내고 하루가 지나서 사위에게 카톡을 보냈다. 진아가 섭섭한 게 많은 것 같다고 잘 다독여 주라고 했다. 그 후로 몇 번 자잘하게 둘째 딸은 엄마의 말을 끊고 지랄발광했고, 그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내 앞에서 말을 아낀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갑자기 브레이크를 건 듯이 끽-하고 멈춘다.


그 후로 우리는 가끔 통화한다.

“엄마 별일 없지?”


그럼 엄마는

“응 별일 없져.” 하고 전화를 끊는다.


나는 그 후로 정신과를 간 적이 없고, 엄마는 동창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해피엔딩, 룰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