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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Oct 11. 2023

아이 낳으라고 할 거면 5억 주세요

불행한 사람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거야 Ep.10

메이크업 선생님이 들고 다니는 검고 커다란 가방은 요술 상자 같다. 똑딱 소리가 나는 버튼을 두 개 열고 가방을 펼치면 2단, 3단으로 알록달록한 화장품들이 줄지어 들어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메이크업은 예술에 속한다. 사람의 얼굴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는 멋진 일이다. 크기가 다른 브로셔까지 일렬로 펼쳐놓고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메이크업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다.


“메이크업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으세요?”


“아. 저는 눈썹이 진해서 인상이 좀 강해 보여서요.. 좀 연하게 해 주세요.”


인상이 강해 보이는 건 비단 눈썹 때문이 아니고, 나의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모두 축적돼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메이크업 선생님에게 순한 인상을 보여주는 메이크업을 부탁하는 건 조금 비겁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네.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역시 프로다.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톡톡 두드린다. 그녀의 빠른 손이 내 코끝을 지날 때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났다. 난 담배 피우는 여자가 좋다. 담배 냄새나는 아저씨는 가까이 가고 싶지 않지만, 왜인지 모르게 담배 피우는 여자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번은 동네를 걷다가 작은 텃밭에서 잡초를 뽑으며 담배를 피우는 할머니를 봤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졌다. 내가 사진가라면 그 모습을 사진 찍었을 것 같고, 화가라면 그리고 싶었을 것 같다. 난 작가니까 이렇게 그때의 할머니의 모습을 글로 쓴다.


중학교 동창 중에 담배를 피우는 친구가 있다. 경아는 2교시가 끝나면 남자아이들과 같이 매점 뒤쪽에 가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연기가 올라오면 어디선가 선생님이 나타났고, 선생님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면 아이들이 연기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경아는 그저 이렇게 선생님을 골리는 게 재미있어서 담배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대학생이 되어서 오랜만에 만난 경아는 아직도 담배를 피웠다. 같이 추어탕을 한 그릇씩 먹고, 친구는 골목길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카운터에서 집어온 박하사탕을 쪽쪽 빨아먹으면서 물었다.


"담배 피우니까 좋아?”


“응. 좋아 난 평생 담배 절/대/ 안 끊어.”


'못' 끊는 게 아니고 '안' 끊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난 경아가 좋다.


메이크업 선생님의 손끝에서 나는 희미한 담배 냄새에 오랜 친구를 떠올렸다. 그러자 괜히 오늘 처음 만난 메이크업 선생님이 오래된 친구라도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먼저 말을 걸었다.


“선생님 머리색이 너무 이쁘네요.”


선생님은 긴 머리를 찰랑이면서 웃었다. 붓에 분홍색 색조화장을 묻히고 나서 담뱃재를 털 듯이 톡톡 두드렸다. 머리 염색은 셀프라고 했다. 하는 일은 만족스럽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매일 다른 색을 써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눈썹 숱이 많은 손님을 화장할 때면 기분이 좋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눈 크기가 짝짝이인데, 아이라이너로 조금만 신경 쓰면 크기를 맞출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손으로는 속눈썹을 한 올 한 올 붙이면서 나에게 말했다.


“작가님은 결혼하셨죠? 저는 결혼 못 할 것 같아요.”


결혼을 안 할 것 같은 것도 아니고,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못'이라는 단어가 뾰족한 못처럼 내 마음에 탁하고 박힌다. 찰랑거리는 머리를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말끝마다 희미하게 웃으며 말하는 29살의 그녀가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할 것 같다고 한다.


MZ 세대는 기준이 모호하지만, 대충 90년생부터는 MZ로 쳐준다고 한다. 87년생인 나는 고집을 부리면 바득바득 MZ 끄트머리에 발을 걸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MZ가 아니다. 왜냐면 내가 관찰한 바로는 진짜 MZ 세대는 'MZ 세대'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MZ 세대의 특징은 ~”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다 늙은이다. 난 영락없이 MZ에서 퇴출이다.


결혼이 사치품이 되어가고 있다. 결혼은 마치 고급 한정식에서 나오는 전복요리나, 샤넬 가방, 코타키나발루 여행처럼 돈이 있는 몇몇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는 낳고 나면 알아서 큰다'라고 말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MZ에서는 퇴출이지만, MZ가 아닌 사람 중에서는 가장 젊은 나는 가장 최근에 결혼과 육아를 경험했다.


아들 둘을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키웠다. 한 달에 10만 원, 20만 원을 아껴보겠다고 바등바등거렸지만, 내가 돈을 모으는 속도 보다 500배쯤은 빠른 속도로 집값이 오르는 모습을 보며 좌절했다. 아가씨가 아닌 젖먹이 어미가 되어 바라본 세상은 절망적이고 원망스러웠다.


여성과 아이를 존중해 주지도 않으면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성애의 기준은 높기만 했다. 노키즈존은 점점 늘어나는데, 동시에 '생후 3년간은 엄마가 아이와의 애착을 단단히 해야 한다'라는 버거운 이론은 상식이 되어갔다. 큰아이 3년, 작은아이 3년. 총 6년의 육아가 끝나고 다시 사회에 눈을 돌렸을 때, 내 자리는 없었다. 자신감도, 가슴도 축 쳐 저버린 30대 중반의 아줌마만 거울 앞에 있었다.


결혼을 못 할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난 말문이 막혔다. ‘낳으면 다 알아서 커요.’라는 말은 오답이고, ‘요즘은 아기 낳으면 한 달에 100만 원씩 줘요.’도 대답이 안된다. 100만 원은 턱도 없다. 계산이 빠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지금 이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편이 맞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정하고 싶은 부분 있으세요?”


마지막으로 메이크업 픽스를 칙칙 뿌렸다. 메이크업이 참 이쁘게 되었다. 눈썹을 브라운으로 칠하니 정말 순해 보인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쁜 선생님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식도 세 번째 마디쯤에 탁 걸려서 내뱉지는 못했지만 내 진심은 이렇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건 분명 만만치않은 일인것같아요. 하지만

누군가와 단단한 관계를 약속하고,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건 엄청나게 특별한 경험이에요. 커다란 책임이 있지만, 그만큼의 행복이 있어요. 인생을 다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그런 행복이.”


물론 이 말은 내뱉지 못하고 꿀꺽 삼켰다.



아 참.

내 중학교 동창 경아는 32살. 첫아이를 임신하고 담배를 끊었다. 지금 아이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 여전히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서 유기농 음식을 차린다.



가브리엘과 라파엘. 지구에 온 걸 환영해. 와줘서 고마워






조각난 행복들을 긁어모아 나는 지금의 커다란 행복을 일구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의 행복을 이렇게 나누다 보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잠깐 깜빡하고 있던 작고 소중한 나의 행복'을 기억해 낼 수 있지 않을까_




마지막. 열 번째 작은 행복

결국은 가족_



안녕하세요. 작가 골디락스입니다. 처음 약속한 10회 연재를 오늘로 마무리합니다.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고 작은 행복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에는 아이에 대한 글로 마무리를 하게 되네요.


올 한 해 글 쓰고 출간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는데요. 이제 월동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남은 두 달은 둥지로 돌아가 아이들과 남편과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고구마도 한 상자 사고, 읽고 싶은데 참았던 책들도 한가득 주문해야겠네요. 그리고 새로운 장르의 글을 준비해 보려 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또 어떤 삶이 시작될지 기대됩니다.


살아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매일매일 크고 작은 행복을 기어코 찾아낼 것입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그러니 당신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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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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