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콜?"
이라는 카톡에 이걸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었다. 어차피 나도 저녁을 먹어야 했고 겸사겸사 같이 먹지 싶어서 나갔다. 집 근처 맥주집에서 가볍게 맥주나 마시자는 녀석의 제안. 나도 콜이었다.
"언제 보고 안 봤더라? 잘 지냈어??"
"아 그럼요. 저 여자친구 생겼어요."
"얼~~ㅎ 짜씩 바빴겠네 ㅋㅋㅋㅋ 나도 남자친구 생겼어."
"엥? 그때 그 사람??"(오래 썸탄 내 첫사랑이라 생각한 듯했다.)
"아니, 소개팅해서 만난 사람이야."
"엥?? 그렇게 낯 가리면서 무슨 소개팅이에요 소개팅은."
"왜 나는 소개팅하면 안 되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 엄청 경계하잖아요."
"이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만났겠지, 너는 어디서 만났는데??"
"학교 친구예요. 그때 그 학교에서부터 친구였는데 블라블라..."
남자친구가 화가 단단히 났다. 이 녀석을 만나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이 녀석을 만나고 온 내 모습이 한없이 신나 보인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나는 내가 신난 줄 몰랐다. 정말로 전혀 몰랐다.
그 녀석과 나는 서로 겹치는 지인이 없다며 서로에게 이 얘기 저 얘기하는 대나무 숲이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이 관계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만났던 남자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이런 관계는 옳지 않다며 연락처를 지우라고 했다.
나는 이 녀석의 연락처를 지웠다.
연락처를 지우면서 생각했다. 이젠 연애도 하고, 사방에 적을 두고 있지도 않는 녀석의 모습을 떠올리니 안심이 되었다. 나는 이제 내 삶을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하고.
그렇게 2년 정도 흘렀을까. 나는 그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지만 헤어졌다. 많이 쓰라렸고 많이 아팠지만 많이 성장했다.
정신이 없다 보니 까맣게 잊고 살던 녀석. 어느 날 인스타 추천 친구에 뜨는 게 아닌가! 반가웠지만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의 세뇌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연락을 하면 나는 두 번 다시 연애를 못 할 것 같았다. 이것 또한 세뇌의 일부였을까.
며칠이 지났다. 분명 추천 친구 리스트에서 지웠는데 또 뜬다. 그래서 친구 추가를 하고 연락을 했다. 2년이 지나고 만난 녀석은 정말 많이 변했다. 헤어짐도 경험하고 친구와 다투고 멀어지기도 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기도 하고..
얼른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아, 이 녀석이랑은 그냥 끊어질 인연은 아니구나. 싶었다. 지금도 연락하는 수많은 제자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먼저 카톡을 보냈다.
"영화나 볼까?"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César Pinhe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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