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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20. 2023

용식이예요? 저예요?

당연히 용식이지!

오랜만에 녀석에게 연락을 했다.


"영화나 볼까?"


"영화볼 시간까지는 안될 거 같은데 밥이나 먹죠"


"그래, 그러지 뭐!"


"쌤 스튜디오 쪽으로 갈게요"




또 오랜만에 만났다. 이제는 사회생활을 해서 인지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녀석을 보니 웃기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건강을 해치면서 까지 일을 하는 게 걱정스럽기도 했다.


"잘 챙겨 먹어야 해. 안 아파야 일도 많이 할 수 있는 거야"


이런 할머니 같은,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를 하면서 사는 얘기들을 들었다.

녀석은 내가 겪은 폭풍 같은 일들의 전말을 궁금해했고 그때는 한참 그 폭풍을 이겨내고 있었기에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얘기해도 괜찮을 것 같았고, 그게 나를 괴롭게 하지도 않았다.

분명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땐 너무나 괴로워서 집에 오는 길부터 눈물 바람이었는데 말이다.


"와 무슨 또 오해영 드라마예요? 그런 일을 겪다니 보통 아니다~ 아니야~"


저런 너스레를 떨며 긴장도를 낮추게 한다. 마치 별 일 아닌 일이 된 것 같았고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고 싶어졌다.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다.


"밥 다 먹었지? 그럼 얼른 커피 마시고 가자~"


"아 뭐 이렇게 급해요? 뭐 바빠요?"


"아 나 약속 있어 얼른 가봐야 해. 커피 마시고 얼른 가자"


"엥? 쌤이 이 시간에 약속이 있다고요? 진짜 이거 100프로 뻥이다. 뭔데요. 빨리빨리."


그때가 저녁 8시 반쯤이었다. 그래, 내가 이 시간에 약속을 잡을 리 없지.. 녀석은 나를 잘 안다.


"나... 드라마 보러 가야 해.............."


"네???ㅋㅋㅋ드라마 보러 가야 해서 빨리 가야 한다고요??? 뭔데요 무슨 드라마 뭐뭐"


"동백꽃 필 무렵이라고 있어... 동백이랑 용식이 나오는 건데 나 그거 봐야 해.. 빨리 좀 가자..."


"자, 지금 여기서 딱 정해요. 용식이예요? 용현이에요?" (녀석의 이름이 용현이다.)


"아 뭔 소리야 당연히 용식이지 빨리 좀 가자고!!!"



결국 나의 재촉에 빨리 헤어졌다. 영화는 다음에 꼭 보자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한채.


나는 왜 그렇게 동백꽃 필 무렵을 좋아했을까? 나는 동백이의 삶이 애처로웠고 그 삶을 밝혀주는 용식이가 좋았다. 동백이를 바라보면서 용식이가 독백을 한다.


"등짝이 손바닥만 한 사람이 대체 뭘 짊어지고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 나는 동백 씨가 너무 좋고 너무 아프다."


내가 무얼 짊어지고 살아왔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 나를 해맑게 웃게 해주는 사람이 어쩌면 내가 원했던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미련 없이 그 누구도 만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용현이랑 있는 게 편했다. 이유는 모른다. 기약 없는 약속에 띵동 하고 벨이 울렸다.


"저 다음 주 용산 가는데 영화 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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