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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04. 2023

보사노바만 알려주세요.

아주 오래전 20대 초반 남성을 상담할 때의 일이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보사노바를 알려달라는 것.

(클로이재즈 상담할 때 뭘 배우고 싶은지 묻는 항목이 있음.)

보사노바는 악보를 좀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할 수 있는 장르였다. 중요한 건 그는 피아노를 태어나서 처음 치는 사람.


장르를 정하고 방문하는 사람은 잘 없기 때문에 의아했다.


"음.. 보사노바를 꼭 배우셔야 하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그냥 좋아서요. 멋있잖아요"


그는 어느 재즈 클럽에서 '보사노바'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후 유튜브로 찾아서 들으니 더 좋았던 것.

큰 용기를 가지고 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까 몇 개의 악보를 가지고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재즈 악보를 보고 (코드와 멜로디만 적힌 Lead sheet) 자유롭게 치는 것을 원했다.

음.. 그건 매우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니 우선 악보로 시작을 하자고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2개월 만에 포기했다.


마지막 수업을 하던 날, 호기롭게 시작한 취미생활을 박살 낸 것 같아서 씁쓸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실패에 대한 원인을 찾고 싶었다. 뻔한 원인이 아니길 바랐던 바램 때문이었겠지.


그 이후로 '시간을 들여야 얻어지는 것'에 대한 얘기를 수업 때 종종 한다. 재즈는 반드시 시간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장르니까. 그래서 재즈는 더 멋지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멋있어서, 좋아서 하기엔 '재즈'안에는 넘어야 할 고비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작은 고비라도 하나씩 넘어 성취할 때의 그 짜릿함을 한 번이라도 맛본다면 무궁무진한 나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처음엔 '멋있어서, 좋아서'였던 이유들이 '내 소리가 좋아서', '들으면 칠 수 있으니까' 등 꽤나 음악적인 이유에서 지속 가능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 가지 장르를 원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수업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아차, 정말 멋에 취해 재즈를 배웠던 분도 계셨는데 그분은 그 '멋짐'이 내면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꽤 진지하게, 오랫동안 배우셨다. 괜찮은 재즈 신보가 나오면 내게 알려주시기까지 했다. 직장에서 다른 나라로 발령이 나서 한국을 떠나셨지만 종종 생각나는 분이다. 멋지고 싶으면 끝까지 배워야 한다는 그 마인드. 나도 배우고 싶은 마음 가짐이다.




나는 나의 수강생들을 볼 때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가는지 보고 배운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삶의 형태이지만 단 한 가지, '재즈'만이 우리의 이어주는 공통점이 된다. 재즈를 배우고 연마하는 시간을 켜켜이 쌓고 수많은 고비를 넘겨 냈을 때 밀도 높은 소리들이 우리 수강생들의 삶을 더욱 단단히 지탱해 주리라 믿는다. 여전히 믿고 있다.


어느덧 7년이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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