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과 퇴근 후 카페행
크로노스가 과거에서 현재로 그냥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미래에서 현재로 당기면서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97p
유영만 작가의 <2분의 1> 책을 읽는 중이다. 글쓰기 시작하면서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의도가 다르게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시간만 가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안다. 원하지 않는 일로 하루하루 버티기만 하면 숨이 막힐 것 같다. 출근하자마자 퇴근을 기다리고 일요일 밤 잠들기 전에는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나려 한다.
점심을 먹고 양치도 하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누가 보면 집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줄 알겠다. 30분 남짓한 시간. 왜 이렇게 갈망하는지. 초콜릿 하나 입에 넣고 책을 펼쳤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으면서도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이 시간을 원했다. 내 집에서 그것도 밝은 대낮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에게 집중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평일에 휴무날이 있다. 하루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데 이러다가 집에 눌러앉게 될까 봐 알람으로 정신을 차린다.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이런 맛이 없다. 틈새 시간을 즐기는 게 아닐까. 마감시간보다 더 촉박한 점심시간이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함이 벅찬 순간이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집중하게 된다. 매번 주어지는 시간이 아니어서 더 감질난다. 어떡해서든 이 시간을 사수하려 한다. 생각나는 대로 마구 질렀더니 글 반을 썼다.
퇴근 후 카페 간다고 전 날 미리 남편에게 말해두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일인용 공간이 있었다. 딱 세 자리만 있는데 다음에 꼭 자리 잡아야지 했다. 그날이 오늘이다. 나름 서둘렀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카페 전체가 독서실이었다. 조용해서인지 유독 음악소리가 크게 들렸다. 처음엔 신경 쓰였는데 시선에서 자유롭고 내가 쓰는 글에만 집중하다 보니 음악도 나만을 위한 연주가 되었다. 이면지와 볼펜을 꺼내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감사, 카페, 라테, 남편, 가족, 사랑
내 길은 내가 찾는다. 개척한다. 내가 연다. 열쇠는 내가 들고 있다. 쓰고 싶은 글 쓰자. 어떻게 쓴다기보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마구 뱉어내는 게 먼저다.
나에게 점심시간과 퇴근 후 카페행은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의미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 꼭 붙들자. 10년 뒤 내가 지금의 나에게 고마워할 것 같다. 잠시 멈춰주어서. 꿈과 연결해 주는 공간 만들어줘서.
크로노스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고,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은 카이로스다.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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