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라고요!

딸의 한마디에 내달리는 엄마

by 햇님이반짝


수요일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 딸아이에게서 문자하나가 와있었다.


이것도 다음날 보았다. 이 책이 보고 싶었나?

다음에 도서관 갈 일이 있으면 빌려야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곤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아침부터 온 동네를 촉촉이 적시는 비 덕분에 더위가 한풀 수그러들었다. 비는 오지만 걷기 열정만큼은 꺾지 못하여 아이들 등교 후 집에서 좀 떨어진 공원을 크게 한 시간정도 걸었다. 근처 도서관이 있어 잠시 들릴까 말까 하다 그냥 있는 거나 마저 읽자라는 생각에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주에 도서관에 들렸기에 반납일은 다음 주였다. 빌린 책 두권중 한 권은 거의 다 읽었고 한 권은 대충 훑어보았다. 책도 몇 권 없는데 반납해 버리고 새로운 책을 빌릴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에 딸아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수행평가라고요!"

"오늘 빌리라고 어제 말했잖아요!"


거기다 알겠다고 대답한 적 없는 대답까지 했다고 한다.



헉, 이게 무슨 일이람?!

앞뒤설명하나 없이 다짜고짜 내일 수행평가라니

그것도 전날 문자하나 달랑 보내놓고선. 그래놓고 빌리라고 하지 않았냐고 우기기까지 한다. 나 원 참. 학원에서 잠시 쉬는 시간에 생각이 났는지 독촉 메시지가 쏟아진다. 책 제목하나에 대여해 달라는 약간의 뉘앙스는 알았지만 얼토당토 안 하게 당장 내일 수행평가라니 도통 이해되지 않는 말만 해대었다.



상황을 설명하려면 이러이러하니 언제까지 빌려놔 달라고 하던가. 그것도 최소 일주일 전에 말을 해도 있을까 말까 하는 판국에. 수행평가를 혼자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반 전체 혹은 1학년 전교생이 준비하는 시기지 않나. 지금 도서관에 간다고 해서 있을 턱이 만무하다. 그리고 어린이도서관은 이미 문을 닫았다.



평화로웠던 마음에 미리 준비하지 못한 딸아이를 원망하며 단전에서부터 화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한다.

도서관 종합실은 문 닫기 한 시간 전이었고 지금 가봤자 없는 거 뻔히 알면서도 또 어미의 할 도리(?)인가 싶어 냅다 밖으로 나왔다. 아차 비 오지. 나오자마자 다시 4층까지 올라가 우산을 챙겨 들고 나왔다.



책이 없을 수도 있고 다음엔 미리 이야기하라고 말해두었다. 그러니 인터넷으로 본단다. 그럼 나 왜 급하게 뛴 거야. 책은 넘겨보아야 제대로 봤다는 생각을 한 건가. 역시나 대출불가 이왕 온 김에 기존 도서를 반납하고 내가 읽을 책 두 권을 빌렸다. 이렇게라도 하니 영 헛걸음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머 어찌 되었든 딸의 한마디에 엄마는 달렸다.

비도 추적추적 오고 냅다 달렸더니 비인지 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물줄기가 타고 흘렀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그제야 열기가 가라앉자 반팔에 바람막이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으슬하기까지했다. 비의 굵기는 더 굵어졌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혹시나 딸아이가 왜 미리 아침에 빌리지 않았냐며 화를 낸다면 시어머니 앞에서 싸울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았다(저녁에 들린다고 했다) 사춘기의 특징 중 자기 말이 절대적으로 다 맞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어디서 들은 내용이 있었다. 메시지의 내용상 충분히 화를 낼 수 있을 거라고 미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중 딸에게 전화가 왔다.


언제 들어오냐며 묻는다. 할머니 오셨다며 얼른 들어오란다.


"딸, 어머니한테 할 말 없어?"



"갔다 와줘서 고마워요"



"응? 그래.."


순간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훅 들어왔다. 당연한 거 같으면서 당연하지 않은 그 말 한마디에 사르르 마음이 녹는다. 수고로움 따위 생각나지 않더라. 오랜만에 딸 덕분에 달리기까지 했으니 제대로운동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 한마디의 힘은 컸다.



요즘 앱이 참 좋다.

수행평가는 알아서 잘 마무리하기를.





덧붙임: 이미 수업시간에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고 있었고 수행평가를 치고 있던 와중이었다고 한다. 중등이 와의 대화에는 육하원칙이 필수다.









사진출처:햇님이반짝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