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뒤져보아도 역시 입을 게 없다. 늘 입는 교복 같은 옷 몇 벌을 돌려가며 입는다. 출퇴근할 때만 입는 거라서 예쁜 거 따위 그냥 눈에 띄지 않게 보호색 마냥 내 몸하나 잘 가려주는 옷이면 충분하다. 거의 단색옷을 입는다.세탁 후 다 마른 옷이 옷장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바로 외출복으로 선정된다. 그러다 살짝 싫증이 날 때쯤약간의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알았을까 내 마음을 관통하듯 SNS에서 기다렸다는 듯 이 옷 어때를 연신 들이댄다.
사실 이 사이트를 알게 된 지도 두 달은 되었다. 가입하는 순간 이때다 싶어 날아오는 할인쿠폰의 유혹그때 결제단계까지 손이 갈뻔하다 말았다.이럴 때 우유부단한 결정이 날짜만 연장시켰다. 재고가 없을 시 쿠폰이 소멸될 수도 있다는 알림이 독촉하듯 정기적으로 날아온다. 쿠폰이 소멸될리는 절대없을 것 같은데. 그걸 알면서도 눈앞에 아른거리니 또 마음이 요동친다.
무려 1+1+1+1에 29,800원. 색상도 다양한 크롭티.('크롭(crop:배어내다/잘라내다)'과 '티셔츠(tee shirt)'의 합성어로, 아래선이 잘린 듯 약간 짧은 형태의 티셔츠를 말한다.)
짤막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내 살갗을 감추기엔 무리가 없어 보였다. 긴 옷을 허리춤에 구겨 넣기엔 땀띠가 날 것만 같았다. 여름에 이건 꼭 입어줘야 해 하며통기성이 우수한 얇디얇은 4색 반팔 티. 소장각임을 확신했다.이걸로 이번 여름옷 걱정은 별 무리가 없을 거라 여기며 이번엔 단호하게 결제창을 클릭했다.
드디어 기다렸던 택배가 도착했다.퇴근 후 설레는 마음으로 박스를 개봉하기가 무섭게 이미 옷은 내 손에서 사라졌다. 굶주린 하이에나가 먹이를 찾아 헤매듯 나의 주위를 서성이던 두 딸들은 오래간만에 새로 산 엄마의 아이템에 눈독들인것이다. 냅다 하나씩 가져가서 입어보더니 자기들한테 딱 맞다며 주말에 입을 것을 확정했다. 색상까지 사이좋게 두 벌씩 나누었다. 이미 내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짤막한 느낌은 아이들에게 더 알맞은 핏이 되었다. 둘째에겐 여유롭기까지 한 크롭티. 나도 한번 입어보았다. 무슨 환상이 있었던 걸까.만세를 하는 순간 지금부터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분명한 이유를 알려 주었다. 땀띠는 무슨 여름엔 절대적으로 철저히 옷으로 가려주어야 한다. 크롭티는 나를 수용하기엔 벅차보였다.그렇게 아이들은 득템을 하고 나는 다시 바지 안에 구겨 넣을 안전한 긴 옷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첫째(중1)는알게 모르게나의키와 몸무게를 추격하고 있었다. 어느새 아동복을 입기엔 유치한 그렇다고 성인복을 입기엔 애어른스러운 애매한 시점이 되었다. 어느 순간 내 옷장을 뒤적거리며 나의 옷을 탐한다.점점 취향도 확고해져 간다.
어찌 보면 감사하다고해야 할까. 아직까지 엄마의 옷취향을공유하고 있으니. 나중엔 본인 스타일이 아니라며 엄마옷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날이 오면 섭섭할 것도 같다.우리 아이들이 20대가 넘어서면 취향의 격차는 벌어지겠지만 몸의 격차까지는 멀어지지 않도록 그때까지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당당히 크롭티를입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