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때마다 플래너를 적는 딸

고요 속의 외침

by 햇님이반짝


딸 둘이랑 셋이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거실의 티브이는 5둘째가 영어만화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 아침등교 전에 보지만 가끔 저녁 먹을 무렵에도 본다. 식사를 끝내고 나니 시계는 8시를 가리켰다. 티브이를 틀어놓고 있으니 시간이 더욱 빠르게 감을 느낀다.


이제 너네 방으로 가라. 우리 각자 할 일을 하는 게 어때. 본인 할 거 있으면 하고 나도 내 시간을 좀 가져야겠다.




둘째는 화상영어 중이겠고 중1첫째는 본인방에서 휴대폰을 하겠지? 아니면 또? 나의 자리 대각선에서 큰딸이 보이지만 책상에서 무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딸의 방문은 항상 열려있다. 이 방뿐 아니라 큰방도 둘째 방도 다 열려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서로의 안부가(?) 궁금할 때 수시로 들여다볼 수 있어서. 나 역시 우리 딸이 무얼 하는지 궁금하다. 아니 공부를 하는지가 궁금했겠지. 희한하다. 타이밍도 이런 타이밍이 없다. 볼 때마다 플래너를 적는 큰딸. 오늘 뿐만 아니라 어제도 며칠 전에도 그랬다. 명 다른 해야 할게 더 많을 것 같은데 나만 알고 있는가 보다. 볼 때마다 플래너만 적고 있으니 내 속만 타들어간다.(학교숙제란다) 물론 폰도 본다. 그래 하는 건 괜찮다.(안 괜찮으니 쓰면서 푸는가 보다)


나: 우리 딸 어머니가 볼 때마다 플래너 적고 있네?


딸: 내가 플래너 적고 있을 때만 어머니가 보고 있네~~?!



하하.. 그렇다. 서로의 입장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르다. 신기하고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타이밍이 연이어 가능한지. 서로 묘한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결론을 지으면 마음이 편할까? 너와 나의 연결고리?


그리고는 이내 인강탭을 꺼내 잠깐 듣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화상영어시간이 다가왔다. 이건 아주 귀여운 에피소드일 뿐이다. 사춘기의 뇌를 아니 우리 딸의 머릿속을 여행하고 싶다. 신비한 스쿨버스나 인체에 관한 보물찾기 책엔 사람 몸 안에 잘만 드나들던데.


나뿐만 아니라 사춘기가 온 자녀들의 부모님들은 알약만 한 비행기에 몸을 실어 자녀의 뇌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것 같다. 우리 딸은 그런 생각조차 없겠지. 엄마인 나의 생각이 궁금하긴 할까? 그냥 엄마가 이상한 거라며 단정 지을게 뻔하다. 내가 중학생일 땐 크게 애먹이는 일이 없어(?) 딸이 더욱 탐구대상이다.




먼저 화상수업을 끝낸 둘째가 큰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20분째 나올 질 않는다. 거실에 앉아있던 나는 부스스 움직이는 소리에 대충 어림잡아 "둘째 춤추고 있는 거 아니야?" 했더니 어떻게 알았냐며 바로 되묻는 아이다. 한창 춤출 나이(?)이다. 갑자기 본인 할 일 다 하고 노는가 궁금했다.


수학 두 장 풀었어?
독서 30분 했어?
사자소학 두 장 읽었어?


돌아오는 대답 하나 없이 질문만 무수히 해댄다. 에효... 차라리 질문을 하지 말 걸. 분명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닐 텐데. 이것 또한 내 생각이다.

매일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묻지도 말까?
그래서 한다고 안 한다고?


언니에게 향한 꽁한 마음이 더 보태어져 답답함에 그만 따발총으로 연이어 쏘아붙였다.


우리 둘째가 해야 할 일은 묵묵히 했으면 좋겠어.



나 혼자 고요 속의 외침 중이다. 둘째에게 하는 말이겠지만 이건 분명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일기장을 가지고 나오는 둘째. 내 앞에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가며 일기를 써 내려간다. 너도 무언가 쏟아내고 싶었구나. 다른 할 일 다 제쳐두고 브런치에만 빠져있는 나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에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둘째야, 어머니도 일기 쓰고 있는 중이었다며 방금 너에게 말한 내용을 읽어주었다. 본인도 어이없겠지. 이런 걸 일기로 쓰다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었던 일을 고이 적는 둘째에겐 전혀 이해되지 못할 내용에 고개를 절로 흔든다.




우리 세 모녀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제 각기 다르다. 각자의 취향은 존중해야겠지만 전히 볼 때마다 플래너를 적는 모습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같다. 비록 학교숙제지만 플래너를 적는 동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각인되는 그날까지 조금 더 기다려보도록 할게. 그러니 너의 안부가 궁금한 날 언제든지 볼 수 있게 지금처럼 방문만은 활짝 열어놔 주길 바랄게. 이 시기엔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되겠지?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