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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Oct 26. 2023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린다

나갈 수밖에 없는 계절


빨강 노랑 초록 연두 화려한 색동옷을 뽐내는 가을이 한창이다. 가을만의 강력한 무기를 자랑하는데 모른 체할 수 없다. 이 찰나의 순간을 몸소 느끼기 위해 공원으로 나왔다. 어서 오라며 팔을 크게 벌려 반가이 맞이한다. 펼쳐진 풍경을 한 아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한껏 충만해진다.






알록달록 단풍나무를 배경 삼아 어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내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유치원 졸업앨범을 찍으러 나온 자태가 제법 늠름해 보이면서도 아가들처럼 느껴졌다. 졸업복을 맞춰 입고 앞뒤로 줄을 선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학사모를 있는 힘껏 던져 보이는 모습이 이내 마음 한편이 뭉클해진다. 내가 하지 못한 경험이기도 하며 이내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겹쳐 보여서였다. 7년 동안 폭풍 성장하는 시기.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시기이다. 크느라 고생했네.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이 문장을 쓰다 보니 이내 입술을 꼭 깨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들이 내 마음처럼 따라오지 않을 때, 특별나게 해 준 거 없이도 잘 자라고 있을 때, 몸이 지칠 때 꼭 다시 들춰보는 사진이 있다면 이때가 아닐까 싶다. 어린이집 유치원 다닐 때가 제일 좋을 때다. 앞으로 더 넓은 세상 잘 싸워내리라 믿는다. 혼자 중얼중얼 남의 집 아이들을 속으로 응원하며 기억 속에 한 장면 찰칵 저장하고 뒤를 돌았다.






15분 러닝크루 앱을 켜고 시작버튼을 눌렀다. 이내 공원 입구를 진입하려는데 딱 봐도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 한분이 한쪽 다리를 절둑거리며 한 손으로는 전동차를 끌고 오시는 게 아닌가. 여태 공원을 걸으며 전동차를 타는 사람은 봤어도 끌고 가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집과 공원을 오가는 사이 전동차에 몸을 실어 이동은 하시겠지만 이렇게 공원에서라도 한발 한 내딛으며 몸과 다리를 인다. 내 뜻대로 걸어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괜히 같이 더 힘이 난다. 오늘도 15분 완주할게요!! 또 속으로 외친다.



23초를 남길 무렵 드디어 끝. 난. 다. 라며 종료 진동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 울리지. 뜨헉. 이런 중요한 순간에 서버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하필 이때. 인증에 목마른 나는 몹시 당황스럽다. 눈으로 한번 보면 끝인 인증이지만 이 역사적인 순간(?)을 남겨야 하는데 아쉽지만 나만 아는 뿌듯함은 그 어떤 인증으로 내비칠여가 없다. 두 번은 절대 뛸 수 없지만 앞으로도 계속 뛰는 게 더 중요하기에 더 이상 미련은 갖지 않기로 한다.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 걷든 뛰든 쓰든. 다시 속으로 되뇐다.





산책로를 걷다 보니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린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동네에 놀이공원이 있다. 마침 부메랑이라는 놀이기구의 맨 꼭대기에서 떨어지기 바로 일보직전인가 보다. 변성기가 온 듯 아닌 듯 꽤나 높은 옥타브를 가진 춘기남자아이의 목소리가 옆 공원까지 들린다. 아주 잘. 비명에 가까운데 지금 나 너무 행복해 재밌어라는 소리로 들린다. 우리 아이도 다음 주에 놀이공원으로 체험학습을 간다. 가을,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놀기 좋을 때다.



나도 예전엔 바이킹을 워밍업으로 시작해 공중에서 360도 빠른 회전을 하는 탑스핀을 연속으로 타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그럴 의지는 사라졌다. 매 순간마다 느껴야 하는 일과 느꼈어야 하는 시기와 때가 있다. 가장 행복하고 기쁨을 만끽해야 할 순간을 모르고 지나칠 때가 허다하다. 지금에서야 더 누리지 못했나 싶다. 머 다 알고 시작했으면 스님 아니 신이게. 지금의 나는 가을에 산책을 하며 조용한 음악과 함께 타닥타닥 거리는 키보드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공원 안은 사계절의 변화만 담고 있는 게 아니다. 어린아이부터 내 몸을 지키기 위한 어르신의 노력까지 알게 모르게 각자의 자리에서 선을 다한다. 내가 모르는 광경을 놓칠세라 반팔을 입을 때도 패딩과 장갑을 낄 때에도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에도 나올 수밖에 없다. 가을과 공원 안의 풍경 속. 그들의 콜라보에 흠뻑 빠져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끄적인다. 이 순간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하다. 이렇게 눈부시게 밝은 햇살을 찾아다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밝은 곳을 바라보려는 지금의 내 마음과 미래의 내가 이 글을 통해 다시 만날 거라 믿는다. 오늘도 내 머리 위의 햇살과 같은 조명은 나를 향해 비춘다.






나갈 수밖에 없는 계절. 가을이 이끈다.


그런 가을이 참 좋다.









사진출처: 햇님이반짝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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