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렇다. 아이들이 등교할 때까지도 이불속에서 꼼짝도 안 하던 어미가 머리를 감고 나온 것이다.
어제저녁 뼈찜을 먹고 남은 양념에 큰아이는 다음날 밥을 볶아달라고 했다(중요한 일)첫째가 씻는 동안 아침을 준비했다. 보통 같으면 아침밥을 주고 바로 이불속으로 직행해도 모자랄 어미가 노선을 바꿨다. 등교도 하기 전에 머리를 감고 나왔더니 두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 거다. 무슨 심경에 변화가 있었던 걸까.
둘 다 밥을 남겼다.작은 밥그릇에 가득 담아주었는데 저녁 같으면 그 배를 먹어도 시원찮을 아이들인데 아침은 그다지 입맛이 없는가 보다. 맵기도 했다. 아침부터 매운 걸 주면 뒷감당이 두려워 다른 메뉴를 먹길 바랐지만 큰아이가 완강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걸까. 원래 아이들이 먹다 남은 밥은 먹지 않는데 오늘은 먹었다. 그냥 그런 날이었다. 볶은밥이 아깝기도 했고 딱 내가 먹을 양이었다.
7시 반에 큰아이가 나가고 8시에 둘째가 집을 나선다. 둘째가 등원을 한 뒤에도 늘 10분만 15분 만을 더 외치며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늦지 않을 정도로 일어나 머리를 감고 시간 맞춰 출근을 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아침에 어미의 머리감은 모습이 의아해 할 수밖에. 그런데 그 놀라워하는 반응이 꽤나 흥미롭다. 어미의 변화를 감지했다는 것 아닐까.
나에겐 알게 모르게 이미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가족들을 자주 놀라게 해주고 싶다.
아침의 여유를 다시 찾았다. 이거다. 내가 찾던 시간은 별게 아니다. 잠시나마 앉아서 커피 향에 취해 한 문장을 곱씹어 보는 시간. 아침에 머가 그리도 바빠서(잠이 고파서) 이 귀한 시간을 누리지 못했는지. 숨 쉬듯이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얻기까지는 충분한 게으름과 후회를 겪어봐야 알 게 되는 건지. 백날 옆에서 이야기해 봤자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변화는 어렵다.
어제 막 배달 온 커피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쪼르륵 내렸다. 이것도 한 몫했던 걸까. 모든 것은 나로 하여금 의미 부여하기 나름이다. 어느새 눈과 코가 행복한 향기에 스며든다. 출근 전 지은 미소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커피잔만큼이나 따뜻해졌다.아침밥을 주었더니 여유까지 생겼다. 이 시간으로 하여금 앞으로 이불속이 아닌 나에 대해 더 파고드는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