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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Jan 03. 2024

사춘기 두 딸과 일박이일 가족여행


어제오늘 머가 제일 기억에 남았어?



새해 첫날 일박이일 거제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 도중 남편이 두 딸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무얼 바라는 건지 눈에 기대감이 차있. 중1 첫째 게임, 초5 둘째는 돈코츠라멘 먹은 게 제일 좋았단다. 쩝. 이내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남편은 다음부터 펜션은 없고 당일치기만 다녀오자며 으름장을 놓는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 이런 결과도 슬슬 받아들여야 할 텐데 아직 미련을 못 버리는 건지. 같이 따라와 주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펜션에 가고 싶다고 요란스럽게 떠들어던 둘째를 위해 복층으로 잡았건만 먹는 거에 밀렸다. 복층이 다가 아니겠지. 바다가 보이는 뷰 따윈 아이들에겐 긴 여운을 주진 못한다. 몇 번 다녀오면 처음과 같은 반응을 기대하는 건 금물이다.






일박하 여행 중 여섯 시 전에 집에 도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은 그 어떤 장소에 가더라도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어두워지면 그제야 출발하였다. 아이들이 좋다면야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라도 생전 가보지 않은 놀이터가 있으면 꼭 들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반응도 시원찮아 열정도 같이 시들어버린 건지 이번 여행은 예전에 비해 파이팅 하지 못하였다. 그저 딸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힘입어 더 열심히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분명 잘 크고 있다. 언제까지 싫은 내색 없이 밝은 모습만 볼 수 있을까. 늘 기대하는 마음이 같을 순 없다.



그렇게 잘 먹고 어딜 가더라도 잘 웃던 아이들이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메뉴가 나오면 표정에서 드러난다.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들리면 사진도 시큰둥이다. 예전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 한번 더 보려고 빡빡한 일정을 잡았다. 한 군데라도 더 보여주고 실컷 놀게 해주고 싶었다.






남편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터인데 아니면 본인만 속상해질 뿐이다. 애착이 아닌 집착이 되어선 안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백 프로의 마음을 내어준다고 백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다. 여행의 계획을 세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네 명의 만족도가 다 같을 순 없다. 어느 정도 포기할 건 하고 여행 중 자기만의 기억으로 간직하고픈 것만 남긴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다. 그만큼 자기표현에 솔직해졌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한다. 갈수록 사진 찍는 횟수가 줄어들지만 그래도 충분히 남겼다. 큰아이에게서 이제 많은 걸 바라면 안 되는 순간이 왔다. 그 와중에 활짝 웃는 모습 남겨주어 고맙다. 언니의 상황을 지켜본 둘째는 아직까지 사진 찍을 맛이 난다. 이마저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을 예감다.

 


남편아 나는 좋았다. 그러니 이제 아이들 기분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우리 둘 기억에 남는 추억 더 많이 쌓도록 하자. 아이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할지라도 다음 여행을 원한다면 남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장소를 검색할 아빠다. 갈 수 있을 때 가고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 한번 더 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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