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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Apr 07. 2024

믹스커피가 당겼던 이유


달 전 믹스커피 끊기라는 글을 쓰고 안 마신 지 38일이 되었다. 매일 하루 두세 번은 달고 살았던 내가 무언가 마음을 먹었다. 일단 한 달이었다. 아침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우엉차를 우린다. 500ml 텀블러에 채웠다. 텀블러에 뜨거운 물만 부었다간 언제 마실지 모르기에 찬물도 같이 태운다. 마시기에 부담이 없다.




믹스커피가 당겼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느낌이다. 뜨거우니 바로 마시지 못한다. 달달한 에 취해 정성스럽게 기다리는 찰나의 시간을 좋아한다. 몇 번의 입김으로 밀려나가는 진한 갈색물결이 나의 입술과 밀당을 한다. 마실까 말까 방심하다 자칫 정신 번쩍 드는 순간이 만남을 더 지연시킨다. 입천장이 무사하도록 대어 보는 첫 모금이 조심스럽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주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오랜 만남을 가지려면 한봉으로는 턱도 없다. 두세봉 뜯었다간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믹스커피 처음 마실 때의 느낌이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열정과 같다. 달달한 향이 은은하게 훅 파고든다. 당장 마셔야 할 것만 같은 마력이 다. 계속 생각난다. 향기, 온도, 장소. 시간의 타이밍에 따라 더 구미가 당긴다. 다른 커피에 비해 저렴해서 부담 없이 자주 즐길 수 있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하니 문제다.


  

그 느낌 그대로의 중독성을 고스란히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니 시행착오를 겪는다. 몇 번이고 헤어지려 노력했지만 실패를 봤다. 믹스커피 대신 마실거리는 넘쳐나지만 마음까지 내어주려니 힘든 거다. 마의 구간을 무사히 지나 한 달이 지났다. 아직도 생각은 나지만 선 듯 손이 가지는 않는다. 생각과 행동이 같이 따라가지 않는다.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된 거다.  




어떤 일이든 해도 그만 안 해도 누구 하나 머라 하지 않고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은 일이 있다. 시도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에도 개인적인 핑계는 늘 따라오기 마련이다. 느 곳에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만족감이 달라진다.



거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 식게 마련이다. 정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의지를 불어주지만 한번 식어버리면 다시 시도하기에 시간이 걸린다. 열기를 유지하는 데에도 꽤나 에너지가 소모된다. 지쳐버린다. 언제나 뜨거울 수만은 없다. 하마터면 손 델뻔한 열정에 주의해야 한다.



이제는 믹스커피의 달콤한 자극을 원하지 않는다. 어차피 몇 번 마시면 사라질 여운이다. 열정이 다가 아니다. 글쓰기도 열정만으로는 이어나가지 못한다. 꼭 무언가 마음먹고 해야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싶다. 내 옆에서 금방 수다 떨고 가버리는 믹스커피 말고 묵묵히 내 이야기 오래 들어주는 부드러운 라테가 좋다. 작디작은 종이컵이 아닌 뭉근한 따뜻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텀블러에 고이 담아 본다. 각 잡고 노트북을 꺼내야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닌 언제든 볼펜을 꺼내 끄적이는 내가 되고 싶다. 수첩이 늘 내 손안에 있는 것처럼. 한 모금만 마셨을 뿐인데 입 안에 강렬한 믹스커피보다는 부드러운 라테를 머금은 채 글며들고 싶다. 글쓰기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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