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큰딸방이다. 요즘 저녁마다 이곳에 앉아있다. 원래 내 자리는 거실에 있는 6인용 테이블구석자리인데큰딸이 다른 자리 놔두고 꼭 내가 앉는 지정석에서 숙제를 한다. 비켜달라고 하면 먼저 앉은 사람이 임자라며 막무가내다. 내 책장과 늘 쓰던 문구류가 큰아이옆에 다 있다. 누가 봐도 내 자리인데 그렇다고 절대 거기 앉지 마라고도 하지 못한다. 옆이나 맞은편에 앉으려 하면 오히려 날 보고 본인방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아무도 없어야 공부가 잘된다나 어쩐다나. 그 마음 이해는 가나 그럼 본인방에 가던가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결국 내가 큰 아이방에 들어오게 되었다. 분명 이사 오면서 각자방에 침대와 공부할 책상까지 넣어주었는데 어떡하다 내 자리를 빼앗겼을까.
딸아이방으로 들어올 때마다 블루투스 키보드와 읽을 책, 노트, 필기류를 주섬주섬 챙긴다. 머 나도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어 좋긴 한데 원래나의 물건이 있는자리가 편하긴 하다. 언제부턴가 큰아이가 내 자리를 계속 탐하더라. 테이블도 넓으니 아무래도 방보다 답답하지는 않다.초등생활도거실에서 모든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사 후 한동안개인방에서 숙제 잘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거실로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야 내 공간 좀 가져보나 했더니 다시 잦은 짐을 싸기 시작한다.
큰아이보고 이제 네 방을 내 방으로 만들어야겠다고 하면 시험기간에는 본인방에 들어와서 공부할 거니 안된단다.요즘 막무가내정신이 박혀있어 물불 안 가리고 자기주장만 내세운다. 두 마디 이상 대화가 이어지기라도 한다면 뚜껑은 나만 열린다. 화내면 지는 건데 늘 진다. 보이지 않는 말장난의 끝은어디까지인지, 이제부터 시작이면 꽤나 여정이 길어질 것도 같다.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훅 들어온 중2의 호르몬과 정면승부 중이다.
딸아이가 큰방으로 자러 들어간 사이 다시 거실로 나왔다. 지금 내 자리는 여기가 맞는데 가끔 진짜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이와 말다툼하는 엄마.안 지려는 엄마.아이에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 보이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된다. 말 한마디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개업식에 흔들리는 공기인형보다 더 요동친다. 눈만 마주치면 시동을 건다.
내일이면 또다시 투닥거리겠지만 엄마도 거실에 앉아 글 쓰니 집중이 잘되는 거 같더라. 너도 여기있으면 숙제도 잘 되고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들어올 거니 천천히 하라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볼 테다.그리곤 조용히 귀 닫고 사라져야지. 딸에게 자리를 빼앗기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엄마니까 내어준 거다. 내 자리도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진짜 내 자리를 지키는 방법임을 쓰면서 알아간다.
저녁이면 옆집아이 보듯 길게 말을 섞지 않으며큰아이방으로 들어간다.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에 마음의 안정을 찾아갈 무렵 6학년 둘째 딸이 들어온다. 연장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