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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r 29. 2024

어머니는 열심히 살잖아


초6 둘째 딸이 등교준비를 하고 있다. 어제저녁 거실에서 문제집 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 지우개가루가 흥건하다. "누고? 누가 안 치웠노?" 바로 언니라고 말하지 않는 걸 보니 범인은 앞에 있는 둘째였다. "공부해도 난리야"  방심한 사이 훅 치고 들어오는 말 한마디에 정신이 휘청거린다. 아침부터 뒷골이 삐죽 섰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조신히 대화를 이어간다.

"부는 널 위해 하는 거지 날 위해 하나? 너는 널 위해 열심히 살아. 나는 날 위해 열심히 살 테니"라고 했더니 한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화를 이어간다.

"어머니는 열심히 살잖아" 여러모로 놀라게 한다. 아침부터 를 들었다 놨다 한다. 뭘 보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나쁘진 않은 나대는 입꼬리를 잠재우고 무심한 척 물어본다.

"00, 어머니가 열심히 사는 거 같이 보이나? 그럼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안 사나?"

"다른 사람들은 회사만 다니는데 어머니는 집에 와서 글도 쓰고 하잖아. 열심히 살아서 배도 아프고(?)"이틀 전 아팠던 배가 글과 연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경은 쓰였나 보다.


청소와 설거지 미루는 게으른 엄마로 안 봐줘서 고마웠다. 딸에게 인정받은 것 같았다. 허투루 살고 있지만은 않은 것 같다. 괜스레 현관문 앞까지 배웅을 한다. 신발 신고 나가기 전 두 팔을 활짝 펼쳤더니 나를 앞으로 끌어당긴다. 집에 오면 아이스크림 사다 놓으라는 말조차 시크하게 들린다. 






온 세상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 내리는 아침이다. 오매불망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꽃봉오리가 있다. 바깥에 내리는 빗방울이 꽃망울에 떨어져 물기를 머금는다. 마른 입맛을 다시던 꽃봉오리는 빗물 한줄기에 아름다운 꽃잎을 펼치려 애쓴다.


어디로 튈지 모를 딸의 한마디는 나에게 태풍을 몰고 오기도 어느 날 이슬비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부딪히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성장하는 것 같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둘째다. 사춘기의 문을 두드리는 중 이래라저래라 하면 할수록 튕겨져 나간다. 요즘 더욱이나 오는 말이 곱지 않아 가는 말도 험악하다. 목이 마르지 않도록 필요할 때 마음 적셔주는 봄비 같은 말 한마디 건네주고 싶다. 언제 불시에 전투태세로 돌아설지 모른다. 엄마는 펀치 하면 다시 돌아오는 오뚝이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처럼 꽃망울 터지듯 살살 다뤄주었으면 좋겠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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