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Apr 17. 2024

밥만 먹는다는 중2 사과만 먹는다는 초6


월요일 아침부터 첫째가 샤워를 한다. 초등 때는 머리 감아라고 해도  듣더니 중학생이 되니 화장실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을 중등엄마가 되니 몸소 알게 되었다. 


큰방에 와서 교복바지를 찾는다. 지난주에 치마를 입고 가서 바지를 입지 않았단다. 그렇다면 그전부터 본인방에 있었을 텐데 왜  방에 와서 찾고 있는지. "네 방에 찾아봤나?" 찾아보니 없단다. 조금이라도 더 누워보려는 어미몸을 일으켜 세우게 만든다. 첫째 방에 들어가자마자 행거에 걸려있는 옷걸이를 꺼냈다. 미안해하는 눈치는 있어 안심이다. 여기만 빼고 다 찾아봤다는 허파 뒤집어지는 소리를 해댄다.




아침은 또 뭐 주지. 달걀 구워줄까 물어보니 어제 먹고 남은 닭갈비를 달란다. 아 맞다. 너는 다 생각이 있었구나. 원래 주려고 했는데 자고 일어난 사이 깜박했다. 사과도 깎고 남편도 줘야겠다.


밥은 어제 다 먹고 안 해놨네. 이럴 때 쓰라고 냉동밥을 준비해 뒀지. 나름 준비성 있는 철두철미함에 흐뭇해진다. 따끈하게 데워진  위에 닭갈비를 올렸다. 첫째야 사과 먼저 먹고 밥 먹어라. 사과 안 먹는단다. 역시나 내 생각대로 들어줄 리 없다. 이게 뭐라고 그냥 하나 먹고 밥 먹으면 되지. 작은 거 하나만 먹어라.


아침 공복엔 사과라는데 사과 먼저 먹고 밥 먹으면 얼마나 좋아. 그렇게 반 강제로 겨우 한쪽 먹었다. 밥은 다 먹었다. 남은 아이 둘째. 사과만 먹는단다. 앤 또 왜 이러니. 사과 먹는 건 좋은데 밥도 먹어주면 안 되겠니? 뭐라도 먹고 가는 게 중요하지만 둘 다 먹어주었으면 하는 건 내 바람이다. 저녁이었으면 사과를 먹든 밥을 먹든 크게 신경 안 썼을 것 같다. 유달리 아침이 그렇다.




내 뱃속에서 나왔지만 이렇게 다르다. 결국 둘째는 사과만 먹었다.  밥은 어떡하니. 어쩌긴 내가 먹어야지. 출근할 때 거의 아침을 먹지 않는 나는 큰아이 덕분에 사과도 먹고 둘째 덕분에 밥도 든든히 챙겨 먹었다. 의도치 않게 효녀들이네 고맙다.


"내 알림장 못 봤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아이들은 왜 찾아보지도 않고 나에게 묻는 걸까. 난 만능엄마가 아닌데. "네 알림장을  내한테 찾노" 방에 들어가더니 바로 "아 저기 있네" 한다. 누가 자매 아니랄까 봐  먹일 때만 나를 찾는다. 




내가 일을 하고부터 친정엄마는 우리 아이들을 봐주었다. 다른 이유로 일 년 정도 함께 살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제 손이 가지 않을 만큼 커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집에 와서 세탁기도 돌리고 빨랫감도 각자 자리에 놔둔다. 하지 마라고 몇 번 얘기해도 안된다. 아이옷이랑 내 옷이랑 구분하지 못해 자주 내 옷 찾아 삼만리 아이방으로 딸은 큰방에 온다. 옷이 없거나 물건이 안 보이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야 시근이 들어 이런 이유로는 찾지 않는다.


시어머니도 몸에 좋지도 않은 과자 머 하러 먹노 하시면서 잘 먹으니 또 갖다 준다. 이모 가게에 들를 때마다 근방에서 꽈배기랑 소라와 고구마과자를 비닐봉지 한가득 들고 오신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 마음 알기에 주면 또 맛있다고 잘 먹는다.




아이들에게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해도 소용없다. 알면서 자꾸 말하게 된다. 안 좋은 거는 하지 마라 좋은 거는 한번 더 권하게 된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우리 엄마랑 닮아가고 있다. 자식이 그런가 보다. 물건 찾아주는 대신 아침은 주는 대로 먹어달라고 협박이라도 하고 싶다. 만만하고 편한 엄마가 되었다. 우리 엄마처럼.




작가의 이전글 달리기에 빠져드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