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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y 23. 2024

별 거 없는 오늘이 특별하다


당장 내어놓을 글은 없는데 발행은 하고 싶다. 쓰다만 글을 이어 붙이려니 오늘 내로는 가망이 없어 보인다. 무얼 적을까 생각하다 보니  고민 없이 오로지 글감만 생각하는 자체가 감사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단어 하나하나 적어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블루베리, 바나나, 방울토마토 위에 요거트를 뿌렸다. 색이 곱다. 보는 눈이 호강한다. 며칠 전 아침과일로 나를 챙기다 글을 다. 아침도 나도 잘 챙기는 중이다.


점심때 잠시 집에 들렀다. 신호등을 건너는데 아스팔트 위의 열기가 후끈했다. 그럼에도 짧지만 강력하게 고요한 낮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독서를 하려다 이내 졸렸다. 선풍기를 틀고 거실 한가운데 대자로 누웠다. 시원한 마룻바닥과 바람은 이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서늘했다. 소소한 쉼이 스쳐 지나가듯 했지만 이런 날이 매일이라면 마냥 즐겁게 다가오지만은 않을 것 같다.

20분 일찍 퇴근하였다. 손꼽히는 날이다. 내일은 휴무이기에 저녁에 커피를 마셔도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좋다. 금방이라도 기분을 업시켜줄 아이스라테를 샀다. 뚜껑도 닫히지 않을 만큼 가득 채워주었다. 행복지수도 꽉 차는듯하다.

집에 도착했더니 아무도 없다. 배가 고프다. 보통은 다 같이 저녁을 먹지만 왠지 오늘은 먼저 먹고 싶었다. 불과 15분 뒤면 첫째가 도착한다. 저녁은 3분 만에 준비했다. 카레는 두 그릇도 먹을 수 있다. 다양한 야채가 들어가면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속전속결 해결하기로 한다. 시엄뉘표 마늘쫑과 이제 막 맛들어진 새콤한 깍두기를 곁들이니 잘도 넘어간다.

학원 마치고 돌아온 중2 도 카레를 좋아한다. 나와 같이 먹는다고 한다. 준비해 달라길래 알아서 먹으라고 했다. 어려운 게 뭐 있다고 밥만 퍼고 카레 부어 전자레인지 돌리면 끝이다. 간단한 건 직접 할 수 있다. 용가리도 구워 먹는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센 불에 구우면 타니까 살짝 낮추라고 했다. 요리조리 앞뒤로 뒤집어가며 굽는다. 식탁 위에 다 구운 용가리를 올리는데 고장 난 침샘이 다시 돌기 시작한다.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며칠 전 내가 구운 것보다 타지 않고 더 잘 구웠다. 요즘 안 싸우면 다행이다. 칭찬할 일이 없기에 유별나게 오버를 했다.

"와~내가 구운 거보다 훨씬 낫네~진짜 맛있어 보인다. 요리에 소질이 있는데. 다음부터 굽는 건 큰딸 시켜야겠네"   

그러는 찰나 남편이 귀가했다. 큰딸은 본인이 구운 용가리를 얼른 아빠 입에 넣어준다. 뿌듯한가 보다. 칭찬에 혹해서 그렇게 찍어먹던 케첩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쓰다 보니 생각났다. 겨우 끌어올린 칭찬이 녹슬지 않게 기술을 늘려야겠다.




한 그릇 든든하게 먹은 후 마시는 아이스라테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입안 가득 쌉쌀한 커피 향이 머문다. 부드러운 우유까지 더하면 넘기기도 아쉽다. 6인 거실 테이블 끝 블라인드를 등지고 지정석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려했지만 집중은 저리 가라였다. 이럴 땐 필사만 한 게 없다. 꾹꾹 눌러쓰는 한 자 한 자가 마음을 가라앉힌다.


남편에게 9시에 걸으러 나가자고 했다. 저녁 먹고 자주 걷는다. 낮동안 이글했던 더위도 밤에는 수그러들었다. 살랑 불어오는 스치는 바람이 하루의 노곤함도 함께 태우고 간다. 같이 걷는 동안 남편은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언제든 불쑥 생각나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친다. 신경 쓰이지 않는 든든한 길동무다.

걷고 온 뒤 하는 샤워는 더 개운하다. 언제부터 자연스레 해오던 만보인증이 이제는 의무가 되었다. 버겁기도 하지만 버팀목도 되어준다. 해야 할 일을 마친듯하다. 걷고 씻고 글을 쓴다. 내일이 휴무이기에 마음 놓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끼워 넣는다. 스스로가 만족스러우면 된 거다. 만족으로 끝났다면 물거품이 됐을 오늘을 잡았다. 지금의 기록을 1년 뒤 5년 후의 내가 보면 잘했다고 칭찬해 줄 거다. 별거 없는 오늘이 특별하다. 쓰지 않았다면 그냥 흘려보내었을 하루다. 그저 그런 일상을 남기고 싶다. 이마저도 그리울 때가 있을 테니까. 오늘을 놓치지 않아 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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