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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y 25. 2024

일상 속에 모든 감정이 담겨있다


휴무 당일 벽 세시에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곱 시에 일어나야 했다. 중2딸이 며칠 전에 산 양념게장을 오늘 아침에 먹는다고 했다(먹다 말 다했다) 씻고 나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해달란다. 밥퍼고 게장만 꺼내주면 된다. 오렌지랑 참외도 깎아두었다.


아침의 기분을 늘 중요시 여겼거늘. 밥 주고 방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먹고 나서 싱크대에 갖다 두지 않은 그릇과 머리 닦고 바닥에 나뒹구는 수건이 오늘 유독 거슬렸다. 큰아이에게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했지만 시간 없다며 학교 갔다 와서 치운다는 말에 꼭지가 틀어지고 말았다. 폰 보는 시간은 있고 치울 시간은 없다는 게 화근이었다. "그럼 나는 하루종일 이 지저분한 꼴을 보고 있으란 말이가? 지금 당장 치워!" 딸의 눈은 사선으로 치켜세움과 동시에 볼멘소리로 가득했다.  




소리는 질러버렸고 기분은 바닥을 쳤다. 이런 마음으로 계속 있을 순 없다. 하던 건 해야지. 둘째 등교할 때 같이 나왔다. 아침에 하는 운동은 먼가 작정하고 나오는 것 같다. 지난주 5km를 뛰었다. 오늘도 역시 5km 설정을 하려는데 합의되지 않은 손가락은 6km를 지정했다. 첫 도전이다. 살살 뛰기 시작하는데 머릿속은 이미 도착한 뒤 뿌듯한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선명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나 긴 여정이었다. 햇빛 쪽으로 가지 않으려는 꼼수도 부렸다. 그렇게 해야만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스러운 건 팔다리는 멀쩡한데 숨 쉬는 게 벅차다. 숨은 이미 목 밖으로 차올랐다. 지금 나는 편안하다고 최면을 걸기도 했다. 아주 잠시 속는 듯했으나 이내 헐떡였다. 마라톤 하는 이들에게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뛰어?! 다음부터 6km는 뛰지 말아야겠다고 맴돈다. 원래 달리던 속도보다 느리게 뛰면 더 힘들게 느껴졌다. 잠시 걸으려다가도 완주하려면 걸으면 안 되라고 들린다. 수시로 마음을 다 잡는다. 달리는 동안 몇 번이고 포기했다가 뛰기를 마음속으로 반복한다.

생각 따로 행동 따로 6km 목표지점이 다다르는 순간 얼른 누울 곳을 물색하였다. 아무도 없는 그늘 진 곳을 애타게 찾았다.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살 것 같다. 솔솔 부는 바람에 땀이 식어 서늘하기까지 했다. 6.0km라는 숫자가 낯설지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마침 올해 1월에 발행한 <실패도 하나의 권리다>라는 글이 다음 '틈'이란 화면에 올랐다.

달리기도 글쓰기도 같은 마음으로 이어진다. 거창했으면 시작도 못했다. 걷다가 1분 뛰고 걷다가 1분 뛰기의 맛보기였다. 글도 일기로 시작했다. 한 발씩 내디뎌야 하고 글도 단어 하나 문장하나로 이어진다. 써냈기에 가끔 뒷북으로라도 기쁨을 안겨준다. 집으로 걸어오는 발걸음에 힘은 없지만 어깨는 활짝 펼 수 있었다.




동네 새로 생긴 샐러드집을 찾았더니 열 시 전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마침 그 옆 가게에 진열된 빵들이 어서 들어오라고 신호를 보낸다. 마지못해져 주는 척했다. 6km 뛴 것도 장한데 보상을 원했다.

음식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그중 내가 먹고 싶고 좋아하는 메뉴를 찍는다. 나를 위해 한컷 찍는 순간이 즐겁다. 좋았던 감정이나 상황을 글로 적고 눈으로 기억한다.

 



휴무날은 평일 시간의 배속으로 흐른다. 가족들이 모이는 저녁이다. 학원에서 집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도 큰딸은 전화를 한다.

"저녁은 뭐 먹어?"

"딸 나한테 할 말없어?"

"미안해. 근데 왜 미안하지?" 뭔가 찔리는 게 잊긴 한 모양인데 알 수 없다. 어미도 알아서 기분전환을 다했다. 지금 중요한 건 메뉴다.

"두류공원 가서 치킨 시켜 먹을 건데 좋아? 싫어?"

"좋아!" 스피커 넘어서까지 쩌렁하게 울린다.

나도 잘한 건 없다. 정리하는 버릇 고쳐보려다가 되려 속만 탔다. 버럭 하는 성질만 좀 죽였어도 딸의 등굣길이 한결 가벼웠을 텐데 말이다. 아침에 꽁하게 돌아섰던 마음도 일상의 장면이다. 오래 담아두지 않는다. 당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일상 속에 모든 감정이 담겨있다. 하루의 기분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오늘이 달라진다. 끄적이면 돌아보게 된다. 시작은 어긋날지언정 마무리는 변화될 수 있다.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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