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박 6일 제주도 일정이 끝이 났다. 결혼 16년 만에 처음으로 명절을 탈출했다. 워킹맘이된 이후 6일간 휴가를 다녀온 게이번이 처음이다. 올여름남편과 나, 아이들의휴가일정도 엇갈렸다. 이번 명절만이기회였다.
초6, 중2 두 딸과의 여행은 저학년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어릴 때는 부모가 잡아놓은 일정 그대로 다녀도 그저 즐겁기만 했다. 이번 여행은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과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적절히 배치하였다.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아닌가 보다. 여행은 하루종일 같이 붙어 다닌다. 싫어도 좋아도 같은 공간에 있다. 같이 살지만 학교와 직장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은 만큼 이야기할 시간도 줄어든다. 6일 동안 가까이 있는 만큼 좋아하는 음식과 취향을 알아간다.
바다가한눈에 보이는카페에 들른 날. 맞은편왼쪽 테이블에 네 살로 보이는 남매와 젊은 부부가 있었고 그 옆에 사춘기 자녀인 나의 두 딸, 그 옆테이블엔 성인이 된 두 딸과 앉은 오십대로 추정되는 부부, 그 옆엔 연세가 지긋한 부부가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우리 가족의 과거와현재, 미래의 모습까지한눈에 보이는것 같았다. 당연하게 보이는 장면 같지만 그 모습을 지켜내기까지도 그간 서로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나의두 딸도 성인이 된 후 같이 여행을 한다면 저런 모습이겠지 하며 상상해 본다.
제주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에메랄드빛의바다를 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반나절동안수영하며 온전히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었다. 이제 좀 컸다고 바다수영은 싫단다. 숙소에 수영장이 있지만 뭔가 아쉬웠다. 바다를 보아도 예전처럼 진득이 바라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아쉬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바다 좀 보려 하면 덥다고 빨리 가자며재촉했다.
여행 마지막날 충분히 제주를 느끼며 놀았지만 역시나 돌아서는 발길은 아쉽다. 제주항으로 가기 전 근처 이호테우해변에 잠시 머물렀다. 그늘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고 쉬고 있었다. 뒤에서 우리 모습을 지켜보던 어르신이 말을 건다. 계곡을 추천해 주셨는데 마지막날이라 다음을 기약해 본다 했다. 어르신은 우리 아이들을 보더니 본인에게도 두 딸이 있다며잠시 생각에잠기는듯하였다. 서울에서 40년을 살고 제주에 내려온 지 20년이 되었다고 하였다.부모의 이기심으로 딸과의 사이가 멀어졌다며 10년 전으로라도 돌아가고싶다고 한다.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르신의 과거로 잠시 다녀온듯하다. 배시간이 다가오지 않았다면 두 딸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을 뻔(?)했다. 우리 가족의 모습이 어르신의 옛 추억을소환시켰다. 나도 바닷가에서 어린아이들이 해맑게 물놀이하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몽글해질 때가 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면 같이 행복해진다.
여행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까지 상상케 한다.살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만들기도 한다. 더 잘 살아보고자 하는 잠깐의 욕심과 욕망이 앞을 가릴지도 모른다. 현재를 잘 유지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속엔무엇보다 가족이 있다.
녹동항으로 가는 배안이다. 비바람이 몰아친다. 파도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거친 파도를헤치며 나아가고 있다.객실에서 쉴 수도 있지만 이또한 배를 타고 이동하는 묘미 중 하나다. 날 것그대로의 바다를 직면한다. 예전 같으면 벌써 캔맥주를 따고도 남을 시간이다. 금주한 지 일 년이 다되어간다. 맥주 없이도 이 시간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끝없이 이어지는 망망대해 속을 질주한다.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나 또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하고 싶은 일을 적절히 맞춰가며 할 것이다. 여행의 마무리는 괜히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다시일상이라는 파도를 헤엄쳐야 한다. 파도가 잔잔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 생각해봐야겠다.
이곳에 있으면 그곳으로 가고 싶고 그곳에 있으면 다시 현생이 그립다. 일상이 편안하지 않았다면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오늘을 잘 살아야 할 이유가 다시금 선명해진다.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내 자리로 돌아간다.일상의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