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도록 발표할 일이 없었다.학창 시절은 이미 기억 저 편 일이다. 그저 친구들이랑 주거니 받거니 수다만 떨었지.직장도 개인의원이라 늘 하는 말만 한다. 강의는 평생가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그랬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야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 고독을 좀 씹다가도 생각나면 한 줄 적고 하지만 이건 뭐 강의를 해야 된단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 글쓰기가 아닌 말로.
23년 9월 즈음. 브런치스토리에 한창 글을 쓰고 있던 중 어느 날 '글장이'라는 필명이 나를 구독했다.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라 필명부터 눈에 띄었다. 두어 달 동안 글을 매일 읽었다. 글장이 작가는 하루에 한편 또는 세편도 발행하였다.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 글을 계속 쓰고 싶게끔 만들어주었다. 손이 닿지 않는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글쓰기&책쓰기 강의를 하는 강사였다. 두 번의 무료특강을 들은 후 나는 이곳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은 현재 623호 작가를 탄생시켰다. 그중 나는 611호 작가로 출간하였다.
이은대 작가님이 운영하는 <자이언트 북 컨설팅>에서는 출간을 하면 저자특강을 한다. 출간은 어떻게든 했지만 저자특강은 할 수 없는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은대작가님이 두 번이나 권유를 하였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의무는 아니지만 계속 미루는 마음이 더 불편했다. 한편으론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사실 누구보다 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걱정만 앞섰다. 발표 불안이 내 안에 터를 잡고 있었다.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한 번은 넘어야 할 관문이었다. 책 쓰기 수업에서 하루키는 10km 달리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이은대 작가님은 책 한 권 쓰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하여 그때부터 10km에 꽂혀 출간만 생각하고 달렸다. 저자특강 전 10km를 열 번 완주했다. 나는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스스로 세뇌시켰다.
24.10.31
작가님 안녕하세요!! 11월 17일 저자특강 괜찮을까요?
30분 뒤 이은대 작가님에게 연락이 왔다.
출간기념 저자특강 11/17(일) 밤 8~9시!! 확정합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준비해야만 했다.
넉넉히 보름뒤로 잡았지만 그 기간 동안 강의연습만 할 수는 없었다. 머리털 나고 PPT작업도 처음 해보았다. 사진과 글을 화려하게 꾸밀 수는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히 적어두었다. 남편의 말에도 힘이 났다. "처음부터 어떻게 잘하노. 써놓고 보고 읽으면서 하면 되지.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 같이 글을 쓰는 동기들이 있다. 마침 <연봉을 높이는 프레젠테이션 비밀>을 출간한 작가의 책을 읽으며 저자특강을 준비했다.
"떨지 않는 비법은 따로 없다. 그저 경험이 쌓이다 보니 떨지 않게 되더라" 역시 연습밖에 답이 없다. 실제 발표 장소와 최대한 같은 곳에서 연습하기. 특강 당일 둘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11월 17일. 내 생일이다. 의미 있는 날이 되든지 평생 잊지 못할 창피한 날이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되겠구나 싶었다. 생일은 늘 친정에 가서 밥을 먹었다. 남편이 식당예약도 해두었는데 취소하라고 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것 같아서다. 이렇게 하나에 꽂히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낮에 미리 이은대 작가님과 줌화면 공유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며 순서대로 클릭했다. 배웠는데도 몇 번 버벅거렸다.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다. 이런.
특강 시작 8시.
20분 전에 들어왔다. 한 두 사람씩 모이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물을 마시는데 왜 컵이 떨리니.자이언트 작가님이 응원의 말을 해주시는데 들리지 않는다.
자료는 총 17장
화면에 보이는 글만 전달할 수는 없었다. 휴대폰에 덧붙여 설명할 말을 적고 고치고 수시로 읽었다. 천천히 또박또박 읽으려고 애썼다. 하다 보니 조금 재미있는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미세한 느낌을 알아차리는 내가 좋았다. 깊은 내면에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작게 피어올랐다. 글쓰기도 하다 보니 출간으로 이어졌다. 말도 하다 보면 또 다른 꿈이 생길 것만 같아 특강을 진행하기로 했다.
후기 다 올리고 싶다 ㅠ0ㅠ
저자특강이 끝나고 머리도 식힐 겸 근처 공원으로 나왔다. 걸으면서 작가님들의 후기를 읽는데 한걸음 가고 멈추고 걷다가 또 멈추게 되었다. 많이 웃었다는데 작가님들 얼굴 볼 겨를이 없었다. 이은대 작가님이 화면을 캡처하여 보내주셨는데 작가님들 얼굴에 대부분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바깥공기는 차가웠지만 가슴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안 했으면 어쩔뻔했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울렸다. 내 생에 첫 강의(저자특강)였다. 비록 줄줄이 비엔나처럼 어떻게든 한토시도 안 빼먹으려고 따라 읽었지만 나름 곧이곧대로는 안 하려고 강조할 부분과 중간중간 쉼도 주었다. 마지막에는 말할까 말까 생각한 이야기도 전할 수 있었다. 끝나고 나니 후련하면서도 이때 이런 말 할걸이라는 아쉬움도 남았다.
하고 안 하고는 한 끗차이지만 하고 나면 그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느껴보지 못한 일들과 감정들이 내 주위를 배회한다. 그것을 잡는 것은 '나'여야만 한다. 기회는 있지만 보고만 있어서는 내 것이 아니다. 다음에 두 번째 책으로 다시 설 수 있기를. 그때는 오늘보다는 여유가 생기길 바라면서.내 생애 첫 저자특강은 진하게 남았다. 나에게 준 생일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