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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펄블B Apr 20. 2016

나의 캐나다 여행기 Day 6

날씨, 너 나한테 왜 구대ㅠㅠ

그 전날 밤부터 눈이 왔다. 캐나다 처음 왔을 때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건 장관이라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는 도서관 창문에서 즐겁게 감상하곤 했지만, 그것도 첫 한 두 주지, 그때쯤 되면 별 감상도 없었다. 그저 캐리어를 끌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녹기만을 바랄 뿐.


문제는 킹스턴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쌓여있는 눈의 깊이였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캐리어가 눈을 청소하다 못 해 더 이상 끌 수 없는 상태를 경험해 보았나요? 굽이 10센티인 세미 부츠를 신었는데도 발은 내딛을 때마다 양말 안으로 눈이 들어오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이러다 발이 얼어서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는 위협을 느껴본 적 있나요??!!!!


5일간의 패키지 투어가 끝나고는 UBC에 교환을 와있는 같은 반 언니, 그리고 언니 친구들과 2박 3일 간 함께 여행을 하기로 해서 킹스턴에서 만났는데, 언니랑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고 방방 뛰다가도 눈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우리... 오늘 하루 킹스턴에 있는데... 이 날씨에 뭘 보러 다닌 수 있을까...? 허허 숙소에서 그냥 쉴까.... 이 날씨에 버스를 탔다간 숙소 가는데만 하루 온종일 걸릴 거라며 택시를 탔는데.... 택시가.... 호호 골목에 진입을 못해..... 호호      


에어비앤비 숙박 주인아주머니가 우릴 안타깝게 쳐다보셨다. 택시에서 내려서 숙소까지 딱 50미터 걸은 것 같은데 그걸로도 우린 숙소에서 쓰러졌다. 신발은 말린다고 벽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아놓고 한 명은 침대에, 한 명은 소파에, 한 명은 또 다른 침대에, 나머지 한 명은 의자에 엎어져 있는 광경은 흡사 무슨 시체 놀이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왔는데 나가봐야지라는 말만 두 시간을 하다가 드디어 우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다시 들어가고 싶어 졌다. 엄마 이 나라 이상해.

     

버스 정류장까지 길에 차도와 인도의 구분은 없었다. 오히려 차가 다녀서 바퀴 자국 덕분에 눈이 조금이라도 더 쌓인 그 두 개의 직선이 모든 사람들의 길이었다. 눈이 너무 와서 버스는 다 취소되고 익스프레스 버스밖에 안 다니고 있었다. 호호. 날씨 너 너한테 왜 그래!! 근 20년간 가장 따뜻한 겨울이라며!!! 왜 갑자기 리딩 위크 되니깐 추워지는데!!!     


우린 참 단순하기도 하지. 버스가 익스프레스 버스밖에 안 다니는 덕분에 원래는 안 서는 정류장에서도 서서 잘못 내리는 바람에 걸어가야 하는 거리가 길어져서 추워!!! 하고 절규하던 게 10분 전이면서 밥을 보고는 바로 기분이 좋아지다니. 아니 나만 그랬던 건가. 음... 여하튼, 돼지고기 요리를 전문으로 한다는 식당의 식사는 너무 맛있었고 (사실 그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뭐가 맛이 없었겠느냐마는) 예쁜 서버 언니가 친절하기까지 해서 더 감동적이었다. 캐나다 여행 다니면서 먹은 밥 중에 가장 맛있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맛있었다
점심 먹어서 원기 충전했는데도 눈 때문에 지친 우리들


시내 스케이트 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서자마자 저녁거리 사서 숙소로 돌아가자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날 이 머나먼 타국의 숙소에서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면서 본 ‘그날의 분위기’는 진짜 재밌었다. 여자 셋은 전부 유연석에 환호했고 오빠 한 명을 더한 네 명 전부가 문채원의 미모에 박수를 보냈다.


누가 봐도 제대로 된 킹스턴 여행은 아니었다. 숙소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봐야 한다는 곳은 식당 가는 길에 힐끔힐끔 쳐다본 게 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만 2주 가까이 다닌 캐나다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돈 들여 여행 보내준 보람이 전혀 없는 소리하고 있다.) 였던 이유는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나의 신념 때문일 것이고, 새로 만난 일행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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