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주신 선물, 오로라
그 전날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이 토요일은 행복하기만 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본 눈으로 뒤덮인 옐로나이프는 밤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낮에 도착해서, 이 풍경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포근하고 아름다웠다. 날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서 오로라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마구마구 솟았다.
우리가 놓친, 원래 예정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사람보다 먼저 도착해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짐을 찾았는데 둘 다 그 전날 캘거리에서 옷가지 하나 없이 너무 고생을 해서 그런지 보자마자 가방!! 클렌징 폼!! 이러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를 마중 나온 가이드 분이 오늘 날도 맑으니깐 오로라 보실 수 있을 거다 하는데 눈물 날 뻔했다. 일주일 넘게 있어도 오로라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라는데 하룻밤밖에 못 있는데 가자마자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난 행운이기 때문이다. 가이드 분은 거기에 덧붙이듯이 날도 따뜻하기까지 해서 돌아다니시는데 좋을 거다 영하 36도밖에 안 된다 하시면서 약간 우리가 그게 뭐가 따뜻해요?!라고 하길 바라신 것 같은데 리딩 위크 내내 퀘벡 주에서 영하 50도일 때 돌아다녔던 우리는 오 되게 따뜻하네요?라고 대답했고 짜지도 않았는데 둘이 동시에 같은 대답을 한 걸 보고 깔깔댔다. 영하 36도 보고 따뜻하다고 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조적 웃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방한복을 입고 돌아다녔던 시내에서도 우리의 웃음은 끊길 줄을 몰랐다. 서점에서는 책 제목을 가지고 웃기 바빴고 기념품점에서도 컵을 하나하나 보면서 농담하기 바빴다. 곰이 캠핑하는 사람을 물어가는 그림에 Canadian Fastfood라고 쓰여있었던 건 자금 생각해도 피식거리게 된다.
둘 다 우선순위도 비슷해서 우리 시간 애매하니깐 올드타운은 가지 말고 저녁이나 먹자!! 하고는 완벽한 생각이라며 손뼉까지 쳤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다.) 현지식을 먹어보자며 시도해 본 elk 고기는 생각보다 맛있었고 생선은 음... 얼마 전에 정체가 뭔지 알게 되었는데 또 까먹었당. (역시 머리가 안 좋은 게 분명하다.) 등 푸른 생선이었는데 맛이 너무 고등어 같아서 둘 다 계속 이거 고등어 아냐? 이러면서 그것조차 즐거워서 계속 큭큭 댔다. 저녁을 먹고는 그 추운 도시에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는 해치웠다. 사실 가장 작은 걸 산다고 샀는데도 너무 커서 다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수다 떨면서 먹다 보니 어느새 바닥을 보여서 이 많은 걸 다 먹었어...? 하면서 우리 자신한테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역시 정점은 오로라였다. 우린 둘 다 그 전날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냥 포기하고 기숙사에 돌아갈까 고민했을 정도로 딱히 오로라에 미련이 없었다. 그냥 캐나다에 교환을 왔으니 온 김에 본다 정도였달까. 그런데 오로라를 실제로 보니 그제야 왜 사람들이 전 세계 각지에서 이걸 보겠다고 날아오는지 이해가 되었다. 살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왜 오로라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고, 오로라 빌리지에서 조성해 놓은 티피들과 오로라가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은 장관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였다. 사진은 노출을 오랜 시간 해놓고 찍은 거라서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초록색 커튼이 굽이치고 막 그러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예쁘다, 아름답다는 말보다는 그냥 경외심이 들었다. 새벽의 여신이라는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이 고귀했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던 오로라는 잠시 자취를 감췄다가 숙소로 돌아가기 직전에 다시 조금 더 선명하게 나타났는데, 그것조차도 하루밖에 못 있는 우리를 여신이 배려한 것처럼 느껴졌다.
유일한 흠은 우리의 자신감이었달까. 분명 방한복 설명서에는 양말을 두 겹 신고 신발을 신으라고 나와있었는데 영하 50도에서 돌아다녔던 우리는 자신감에 차서 불편하다며 한 겹만 신고 나갔다가 막판 가서는 발 동상 걸리는 줄 알았다.
오늘의 교훈: 설명서에서 하라는 대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