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기의 '두 도시 이야기' _개인의 삶, 역사의 울림
프랑스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숭고한 가치를 잉태한다. 인류의 진보에 희망의 돛을 단 것. 하지만 혁명은 흉포함과 맹렬함, 피의 복수라는 맹목적인 광기도 동반한다. 런던과 파리를 배경으로 혁명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온 사람들의 이야기. 혁명의 포연은 묵은 세월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지만, 민중의 울분은 여전하여, “현재의 악행과 그것을 잉태한 예전의 악행이 스스로 속죄할 날”을 오늘도 고대한다.
우리는 매사에 크고 작은 선입견의 지배를 받는다. 어느 틈엔가 만들어진, 사물 혹은 사건에 대한 그림자 밖을 좀체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찰스 디킨스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그랬다. 어릴 때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의 온갖 버전을 접했고, 또 어린이용 버전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었고, 텔레비전 외화 시리즈에서 영화로도 본 기억 때문일 거다. 찰스 디킨스는 아는 작가지만, 위대한 문호라는 생각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소설 《위대한 유산》도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했지만 그저 대중성 있는 이야기꾼이려니 하는, 섣부른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그래서 이 작품,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의 뒤표지에 적힌 글을 읽고 조금 놀랐다.
“톨스토이가 ‘19세기 최고의 문호’로 존경한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이 작품에 대한 명성도 문학 외적인 곳에서 불었던 걸로 기억한다. 뮤지컬 공연이 있었고, 어느 순간 여기저기서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한 말들이 떠돌았다. 그제야 비로소 디킨스의 문학이 궁금해졌다. 소설에 대한 별다른 정보도 없이, 그저 런던과 파리를 무대로 프랑스 혁명기를 다룬 역사소설이라는 단편적 정보만 눈으로 읽고 책장을 열었다.
표지를 열고 첫 문장을 대면한 순간, 톨스토이의 말이 떠올랐고, 그의 문학에, 그의 필체에 압도되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들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작품의 포문을 연 이 기막힌 문장은 소설을 다 읽고 다시 읽었을 때 더 굉장한 감흥을 선물처럼 안겨주었다. 혁명의 소회(所懷)를 이보다 더 잘 포착할 수 있을까.
소설의 진행은 거침이 없다. 마네트 박사의 일생은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떠올리게 했고, 나중에 이 인물들이 혁명의 파고 속에서 사랑을 얻고, 위기일발의 상황을 헤쳐 나가는 과정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의 대서사를 연상시켰다.
명징한 비유를 담은 문체는 작가의 열정적 호흡의 재바른 속도와 맞물려 단박에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호흡이 조금 빠르다 싶은 순간, 한 챕터가 절묘하게 마감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한다. 영리한 형식을 채용한 솜씨에 감탄했는데, 작품해설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작가는 처음부터 이 소설을 새로 창간한 주간지 <올 더 이어 라운드>에 연재할 계획이었고, 1859년 4월 30일 첫회분이 실렸으며, 연재된 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야기는 1775년부터 시작해, 성난 민중들이 무기를 탈취하려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1789년까지 15년 동안의 연대기를 다룬다. 그리고 이 연대기에는 마네트 박사와 루시, 다네이, 카턴 등 주요 인물들과 수많은 이름 없는 존재들이 등장해, 각자 자기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간다. 디킨스는 혁명이라는 역사적 광풍이 개인의 삶과 만나는 접점을 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혁명의 현장을, 그 무시무시한 시대를, 쉽고도 생생하게 후대의 우리에게 전달한다.
디킨스는 초판 서문에서 《두 도시 이야기》를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과 나란히 놓는다. “나는 내 소설이 그 무시무시한 시대를 쉽고 생생히 이해하는 데 일조하기를 바란다. 물론 칼라일의 그 훌륭한 저술에 담긴 철학에 뭔가를 덧붙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소설의 첫 장은 어수선하고, 뒤죽박죽이며, 무장 강도가 횡행하는, 혁명 전의 시대상을 그려보인다. 혁명기의 역사적 사건을 구체적으로 다루거나 정치가들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다. 그저 이 을씨년스러운 시대를 살아내야 할 주요 인물을 하나둘 등장시킨다. 소설 전반부는 ‘비밀’에 휩싸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비밀의 중심에 선 인물은 알렉상드르 마네트 박사.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산 채로” 죄 없이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있다가 겨우 목숨을 구한 후 어둡고 습하고 좁은 다락방에서 한 점 빛에 기대 구두를 짓는 백발노인이다. 이 가련한 노인을 구하러 파리로 달려온, 박사의 재정을 담당해온 은행원 자르비스 로리가, 아버지가 죽은 줄만 알고 있는 박사의 딸 루시와 함께 그를 구해 런던으로 향한다. 그 배에서 일행은 젠틀한 청년 찰스 다네이를 만난다. 영국 이름을 가진 찰스 다네이 역시 비밀스러운 개인사를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이들 곁에는 주정뱅이라는 겉모습 속에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는 젊은 변호사 카턴이 있다.
주요 인물들의 삶은 비밀에 가려져 있어 독자들은 조금 어리둥절하다. 마네트 박사는 대체 어떤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었는지, 파리에서 백발 노인을 도운 드파르주 부부는 왜 그를 돕고 있는지, 프랑스 귀족 에브레몽드의 후손인 다네이는 왜 가문과 인연을 끊었는지…. 이 개인들이 자신의 연대기를 살아내는 동안 여러 사회적, 정치적 징후들이 혁명의 정점을 향해 고조돼 간다. 그리고 그 15년에 걸친 비밀들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모든 비밀들을 꿰고 있는 줄기는 ‘에브레몽드 가문’으로, 인물들의 사연은 이 가문과 얽히고설켜 있다. 그리고 종국에는 모두들 혁명의 폭풍우에 휩쓸리게 된다.
런던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런던으로, 다시 파리로. 두 도시를 기둥으로 역사적인 무대가 펼쳐지고, 인물들의 내력이 두 도시를 오가며 드러난다. 개인의 삶은 결코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개인적 연대기에 머물 수 없음을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들 인물들은 역사의 광풍이 휩쓸고 간 그 자리에서 살아내야 할 운명을 타고났으므로, 프랑스혁명이라는 대서사와 별개일 수 없다. 각각의 삶에 아로새겨진 혁명의 역사. 그리하여 더욱 생생하게 전달되는 프랑스혁명을 다룬 역사소설. 이것이 이 소설의 정체성이요, 디킨스의 성취요, ‘성경,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전 세계 독자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이 된 이유다.
소설의 무대인 두 도시, 런던과 파리는 대조적이다. 런던이 “법치주의 아래 그런대로 자기를 통제하고 번영을 구가하는 노동자 계급 덕분에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대도시”(리처드 맥스웰의 해설)로, “군중의 부산한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일시적으로 감정을 발산하고는 갑자기 흩어져버리는 것이” 전부라면, 파리는 혁명의 용광로가 펄펄 끓고 있는, 통제되지 않는, 통제될 수 없는 도시였다.
지독한 굶주림과 지배계급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파리의 민중들은 오랫동안 ‘그날’을 준비한다.
때가 오고 있었다. 또다시 포도주가 거리의 자갈 틈으로 쏟아지고, 그 흔적이 그곳의 많은 사람을 붉게 물들일 때가 오고 있었다.
술집에서 깨진 와인통이 지저분한 파리 거리에 흘러든다. 복선처럼, 붉은 피를 연상시키는 포도주는 피의 그날을 암시한다. 찰스 다네이는 마네트 가족과 가깝게 지내는 데 그 와중에 프랑스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게 된다. 다네이는 그의 변호사 시드니 카턴의 도움으로 무죄로 풀려나고, 이 재판을 계기로 루시와 찰스는 결혼하게 된다.
한편 파리의 생탕투안 거리에서 술집을 하는 드파르주 부부는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민중을 대변하는 전형적인 캐릭터(이들 역시 에브레몽드 가문에 원한이 있다). 마침내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 일어나고 민중들이 무기를 손에 쥐었을 때 주요 인물들은 몸을 빼지 못하고 격랑 속에 휩쓸린다. 민중봉기와 함께 피의 복수가 시작된다. 귀족들이 분노한 민중들의 손에 살해당하는 그 시점에 에브레몽드 후작 가문의 하인 가벨도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고, 다네이는 그를 구하러 파리로 향한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미래를 모른 채.
기요틴이 얼마나 많은 머리를 벴는지, 그 아래 땅은 오염되고 부패하여 붉은색을 띠었다. 기요틴은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처럼 분해했다가 원하는 때 다시 맞출 수 있었다. 기요틴은 달변가를 침묵시켰고, 권력자를 때려눕혔으며, 아름답고 선량한 사람들을 제거해버렸다. 어느 날 아침에는 산 사람 스물한 명과 죽은 사람 한 명을 포함해 스물두 명의 고관대작이 일 분에 한 명꼴로 목이 베였다.
프랑스 혁명은 분명 인류에게 고귀한 가치를 선사했다. 만인이 평등하며 만인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 받기 위한 권리가 있음을, 어떠한 권력도 이를 압제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가치를, 세상에 천명했다. 프랑스 혁명은 이처럼 ‘아름다운’ 혁명이었다. 하지만 실제의 혁명은 흉포했고, 맹렬했으며, 극단적이었고, 가차 없었다. 피의 복수를 부르는 폭력은 어떠한 동정도, 연민도 허용하지 않았고, 폭주(暴注)했다. 그리하여 피의 대가를 원하는 민중들은 자신의 가문과 결연했지만 그 집안의 하인을 구하러 위험 속으로 뛰어든 다네이를, 잔인한 악생을 일삼는 가문과 절연한 다네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기요틴에 희생되어야 마땅한 인물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다. 프랑스 귀족 에브레몽드 가문의 일원이므로. 드파르주 부인의 사뭇힌 원한을 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피의 복수뿐이다.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혁명의 이면(裏面)에 도사린 광기와 무자비함을 마치 눈앞에서 본 것처럼 겪게 해준다.
그렇다면 디킨스는 이 혁명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걸까.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디킨스는 혁명의 광기, 흉포함, 맹목성, 폭력성을 드러냈지만, 이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소설 전반에 거름처럼 깔아두었다. 악행을 촉발한 것은 앙시앵 레짐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이었다.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드파르주 부부 같은 처참한 상황에 처한 민중이었고, “애초에 모든 법과 형식, 정부의 행사를 무분별하게 남용하지 않았으면 이런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혁명 전 성직자와 귀족들은 모든 것을 누렸고,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으며, 노동자, 농민들은 참혹한 탄압 아래 짓눌려 있었다. 드파르주 부부가 압제받은 민중의 전형이라면 이들을 압제한 귀족계급의 전형은 다네이의 숙부인 에브레몽드 가문의 후작이다. 다음과 같이 사고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우리의 철학은 탄압뿐이다. 이 지붕이 있는 한 우리를 두려워하고 노예근성에 젖은 개들은 우리의 매질에 복종할 것이야.”후작은 이렇게 말하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가려주는 저 천장 말이야.”
혁명 전의 이 악행은 결국 혁명기의 악행을 초래한다.
술집이든 거리든 모두 누추하고 비침한 행인들이 무리지어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의 초라함 대신 명백한 권력의식에 취해 있었다. 불쌍한 머리에 비뚜름하게 쓴 누더기 나이트캡에는 이런 뒤틀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 모자를 쓴 내가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지만 이 모자를 쓴 내가 이제 너희 목숨 하나 날려버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그러나 혁명은 결코 피에 굶주린 인물들이 일으킨 것도, 스스로 대단하게 여기지만 통제력을 잃은 소인배들이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밟으면 무엇도 꿈틀한다고, 귀족들, 지배계급 아래서 비천한 삶을 이어온 드파르주 부부 같은 노동자 계급이 일으킨 것으로, 곪은 상처가 터지듯 역사의 필연이었다고 디킨스는 말한다.
그리하여 디킨스는 이 극단적인 시대, 혁명의 한가운데서도 삶은 계속되었고, 사랑은 지켜졌음을, 역사의 주인공임에도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목숨을 내놓은 카턴의 전언처럼 기필코 현명한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어낼 것이란 희망도 내비친다.
나는 알고 있다. 바사드와 클라이, 드파르주, 방장스, 배심원, 판사 같은 옛 체제가 붕괴된 후 생겨난 기나긴 대열의 새 압제자들이 더는 지금처럼 사용하지 않아도 결국 이 보복적인 도구에 의해 멸망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깊은 구렁텅이에서 솟아난 아름다운 도시와 현명한 사람들이, 시간이 걸릴지언정 진정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승리와 패배를 겪음으로써, 현재의 악행과 그것을 잉태한 예전의 악행이 스스로 속죄하고 사라지리라는 것을.
독자에게 들으라는 듯한 카턴의 마지막 전언은 그래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역사 속에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건져올린 디킨스의 열정적인 민중애에 힘입어, 이 소설은 여전히 영화로, 드라마로, 뮤지컬로, 오페라로 지금껏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끝)
>>토마스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사》
“2500만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굶주림, 추위, 가차없는 억압, 이것이야말로 철학을 즐기는 변호사나, 돈 많은 장사꾼이나, 지방 귀족의 금간 허영심이나, 대립적인 철학 같은 것보다도 프랑스혁명의 원동력이었다. 동일한 이치는 국가 여하를 막론하고, 그러한 모든 혁명에 대하여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_토마스 칼라일, 《프랑스 혁명사》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역사가이자 비평가 칼라일의 대표적인 저서. 1833년부터 4년넘게 걸려쓴 대작으로, 프랑스 왕정의 실패를 낱낱이 밝히면서 혁명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칼라일은 프랑스 혁명에서 혁명을 지배계급의 악한 정치에 대한 천벌이라고 혁명을 지지하면서 영웅적 지도자의 필요성을 제창했다.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1789년 프랑스 혁명 전의 절대 군주 정체를 가리키는 말로, 구체제(舊體制)라고도 한다.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새로운 체제와 비교해 이전 제도의 낡은 특징을 일컫는 때도 있으며, 또한 어떤 정치적·사회적인 현상으로 타도·변역하려는 무리가 그 대상을 이르기도 한다.
앙시앵 레짐 하에서 전 인구의 2%인 제1신분(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은 세금 면제의 혜택을 받으며 연금 수령, 관직 독점, 토지의 약 30%를 소유하지만, 전 인구의 98%인 제3신분(시민 계급, 농민, 노동자)는 혜택은커녕 많은 세금만 부담하게 된다. 혁명 전의 프랑스에서의 특권계급은 농민에 대해서 여러 가지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의 농민은 농노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영농민화되고 있었으나, 영주권(領住權)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서 현물 지대 외에 여러 가지 의무 부담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관습적으로 경작권을 인정받고 있는 데 불과하고, 토지의 상속·양도에 있어서는 많은 허가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주는 농민에게 반강제로 수차(水車), 빵구이 가마 등을 사용하게 하여 사용료를 징수했다. 기타 도로세 · 교량세 · 운반 부역 등이 과해졌다. 농민은 다시 교회에 대해서 10분의 1세를 지불하고, 11세기에는 다시 새로운 국세가 부과되는 상태에 있었다. 이로 인해 시민 계급은 이러한 구제도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나아가 혁명으로 전개되었다._<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