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큰아이가 스텝1 시험이 끝났다. 장장 8시간의 시험을 보고 나온 딸은 온몸에 있는 물 세포가 모두 빠져나간 삐쩍 마른 말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시험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차에 타자마자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엄마 정말 시험이 끝났어... 흑...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
무슨 오랜 전쟁에서 승리한 혹은 패한 노장의 회한에 찬 눈물도 아니고,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가 사면이 되어 감격하며 철문을 나오는 비장한 눈물도 아닌 시험 하나 달랑 끝내고 나온 딸이 고개를 푹 숙이고 흐느끼는 모습에 나는 그저 "수고했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밖에 없을만큼 당황스러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는 딸의 엄마로서 교육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개입이 되어 도와주거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안다. 변명도 아니고 내가 만약 미국에서 자라고 공부를 했더라면 알 수 있는 아주 간단한 것들조차 듣거나 보지 못한 결과로 내 아이들이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은 그들이 직접 부딪치고 직접 해결해야만 하는 책임을 준 거에 대한 일말의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예를 들어 이번처럼 의대에서 의무적으로 치르는 시험에 대한 기본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무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그저 아이가 하는대로 뒤에서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저 안타깝다.
아이의 말대로라면 의대에서 스텝 1,2,3을 봐야 하는데 스텝 1이 가장 어렵다 하고 그나마 2와 3은 점수와 과목이 조금 다르며 순위가 높아진다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제 의대 2학년인데 앞으로 10년 이상을 이 같은 시험과 씨름을 해야 한다니 미국에서 의대를 다니고 졸업해서 정말 사회에서 의사로 활동하려면 멀고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의대생 배출의 숫자에 의심을 금할 길이 없지만, 우리 아이가 전공하는 성형외과를 한 해에 뽑는 학생수가 미국 전 지역에서 150명이라니 믿어도 될 숫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적은 인원으로 미국의 수많은 환자를 치료한다니 지금처럼 의사사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소수의 숫자인 만큼 의사의 절대권력이 예상되고 그만큼 어렵게 공부한 의사들의 연봉이 과히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암튼 시험이 끝났다고 이리 서럽게 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왜 마이애미에서 엄마가 있는 이곳까지 와서 굳이 시험을 쳤는지 이해가 되었다. 미국의 국가고시 시험은 미주 어디에서 보든 상관이 없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고 집중을 요하는 내용이므로 만약 미국의 SAT나 대학원 시험인 GRE 등 각종 국가시험인 부동산이나 회계, 헤어나 네일 등 미국 라이센스를 딸 때 필요한 시험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다음 글을 생각하면서 읽어주기 바란다.
미국의 시험 시스템 중 가장 좋은 것 중의 하나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운명이 바뀌는 한국의 대입시험과는 다르게 여러 번에 걸쳐 내가 원하는 날 볼 수 있고 모든 시험은 아니지만 SAT같은 경우 그 중 제일 높은 점수를 학교에 제출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한국은 마치 군대에서 일렬종대로 행진하다가 낙오자가 생긴다 해도 모두가 끝까지 행군해야 하는 것처럼 딱 하루를 정해서 모두가 일사천리로 시험을 본다.
예를 들어 SAT 경우 일 년에 6-7번의 기회가 있어서 내가 원하는 날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단 SAT는 일년에 COLLEGE BORDE 가 정해놓은 날짜가 있어서 각자가 원하는 날을 선택해서 보면 된다.
그 밖의 다른 국가 자격시험을 볼 때도 각자 원하는 날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시간이 맞는 날과 장소를 골라 시험을 선택하고 개인 정보를 입력하고 돈을 결재하면 된다. 한 번만 봐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각자가 할수 있는 여력이 되는 데로 여러 번 시험을 보고 합격할 때까지 볼 수 있다. 운전 면허시험처럼 면허증을 받을 때까지 도전하면 된다.
꼭 고3이 아니어도 된다. 정확히 정해진 학년도 없다. 꼭 고3이 되어야만 SAT 시험을 치르는 게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7학년 그러니까 중1에 SAT를 본 적도 있고 중3에 시험을 보고 썸머스쿨에 간 적도 있다. 학교마다 기관마다 학생들의 객관적인 점수를 원하는 기준적인 점수를 제시하고 상응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돈을 내고 시험을 본다. 물론 학년에 맞는 점수 커트라인이 다르기 때문에 불공평하지는 않다.
지금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미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나와 미국에 대한 동경은 커녕 의료의 미개함이 드러나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미국의 위상이 땅에 곤두박질쳐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교육에 대한 시스템은 붕괴되지 않았고 한국에서 이런 미국 교육 시스템은 지향하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이것은 유치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답이 나오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레벨에 차등을 두어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말이 되는가?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에게 차별을 두고 레벨을 나눈다면 인성에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며 부모들의 원성이 꽤나 높을성 싶은데 이는 문화의 차원으로 접근해야 이해할 수 있다.
교육에서만큼은 모든 아이가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국이나 미국 아니 지구 전체의 소망이고 그에 따른 시스템이 구축되고 또 지금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본다. 그 점은 공통적인 생각이겠지만, 그 생각의 시스템 방식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미국과 한국의 다른 점이다. 미국은 차별을 두는 방식으로 내가 속한 그룹에서 누구든 차등없이 공부를 해야 모두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한국은 차별 없는 교육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수학 과목을 먼저 보자. 내가 사는 메릴랜드 같은 경우 7단계로 나누어 수업한다. 미국은 주마다 주의 법이 다르므로 주마다 다르고 카운티마다 다르다. 매년 시험을 치러 열심히 하고자 하는 아이들은 레벨이 올라가면서 기쁨을 누릴 것이고 수학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낮은 그룹에서 같은 레벨끼리 즐겁게 수업을 한다. 모든 아이가 다른 그룹에서 자기의 레벨에 맞는 수업을 한다. 한국처럼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같은 반에서 똑같은 수업을 하지는 않는다.
수학은 7단계로 나뉘지만, 그 이외의 과목은 2,3개 레벨로 나누어 그 과목 또한 흥미가 있으면 열심히 해서 더 높은 반으로 가던지 아니면 또 다른 과목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잘하는 그룹은 자신의 학교보다 2학년 높게, 한마디로 선행을 하는 반도 있다. 즉 2학년 학생이 4학년 수업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자, 이렇게 어릴 때부터 레벨이 나뉘어 오르락내리락하며 고등학생이 되면 마치 대학생들처럼 학년과는 상관없이 고1 학생이 고3과 함께 수업을 같이 듣고 각자의 레벨이나 스케줄에 따라 대입시험을 고1이나 중3에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각자 준비가 되는대로 시험을 보면 되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그 아이가 중3에 보았는지 고1에 보았는지 알 필요도 없고 굳이 알아야 될 일도 아니다.
미리 대입시험을 본 아이들은 남은 시간과 학년에 자신에 맞는 스펙을 쌓는 일에 집중하게 되고 대학에서는 그렇게 집중적으로 대비되는 다른 새로운 스펙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어차피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넘쳐나고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대학을 빛내줄 인재를 찾는 게 대학의 목표니까 말이다.
한국을 예로 들면 한겨울의 어느 날을 정해놓고 그날 학생의 컨디션이 어떻게 되든 말든 하늘이 무너져도 정해진 한날한시에 지정된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게 된다. 화장실도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하고 그날 몸이 아프면 1년을 죽음의 시간으로 기다려야 한다. 오죽하면 대입 시험날 모든 직장인의 출근 시간이 미루어지고 비행기 시간도 늦춰진다는 말도 있을까? 정말 군대식이라고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국가시험을 보는 장소가 국가기관이 정해놓은 장소가 아닌 개인 사업장이다. 그래서 시설과 위치가 좋아야 한다. 마치 프랜차이즈 같다. 한마디로 시험을 보는 장소가 국가기관이 아닌 사설 기관이다. 한꺼번에 동시에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이 아주 클 필요도 없고 미리 자신이 볼 시험을 자기가 원하는 곳에 예약하고 각자 돈을 내고 (시험마다 시험료가 다르다. 스텝은 약 $600) 그 장소에 가면 경찰관이 있고 자신 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고 곧장 작은 룸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서 컴퓨터로 내가 예약한 시험을 보고 나오면 끝이다. 국가시험을 보는 어떤 시험이든 이런 장소에서 각종 시험을 관할한다.
시험을 보는 과정이 한국처럼 복잡하지 않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부동산 시험을 본다고 치자. 부동산 시험도 일 년에 단 한 차례만 정해져 있고 동시다발로 똑같이 치르는 시험이다 보니 일단 규모가 큰 장소를 섭외해야하고 시험감독관을 뽑아야 하고 시험지 유출에 대비해 경찰관이 배치되어야 하고... 그 비용과 인원을 감수하며 왜 동시에 시험을 봐야 하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그것도 정부가 정한 그 시간만 유효하다니... 그것도 종이 시험지로만 봐야 한다니... 한국처럼 IT 강국에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보는 시기와 보는 장소는 다른 어떠한 국가시험과는 다르다. 마치 내가 말하는 미국 시스템과 같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미국에 살아서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면 정정해 주시기를 바라고 내가 알기로는 서울이나 지방 곳곳에 운전면허 실기 시험장이 있고 필기시험 또한 한 장소에 있으면서 컴퓨터 화면으로 본다고 들었다.
딱 그런 장소만 있으면 해결이 될 것 같다. 각종 국가시험을 운전면허 시험 보듯 내가 원하는 날짜를 정해서 시험을 보고 원서를 내는 날짜는 동일하게 정해져 있어서 언제 보았든 어디에서 보았든 상관하지 않고 서류검사를 한다면 자기가 원하는 날에 했기에 불만이 있을 수 없고 그렇게 요란하게 대대적으로 동시에 보는 수고로움과 그에 따르는 경비를 나라에서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시스템은 고려 시대의 과거시험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싶고 또 일제시대의 잔재로 봐야 하는데 개인주의에 촛점이 맞추어진 21세기에 아직도 한날한시에 동시다발로 시험을 치른다는 건 개인의 상황을 무시하는 처사이고 이는 선진국 대열에 일찌감치 들어가 있는 발 빠르고 영민해 세계를 주무르고 있는 우리 한국의 위상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여야 한다. 하루아침에도 이거다 싶으면 바꿀 수 있는 대단한 한국임을 나는 미국에서 너무도 잘 알고 느끼고 있다.
다시 내 딸이다.
시험을 볼 때마다 장염을 앓았던 딸은 혼자서 이렇게 큰 시험을 치를 자신이 없었나 보다. 학교가 있는 마이애미에서 보는 게 당연한 일일 텐데도 밥 먹을 시간도 없다던 아이가 무시무시한 코로나 시대에 비행기를 타고 가족이 있는 메릴랜드까지 와서 시험을 본다는 건 그만큼 시험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이야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이 늘 한편에 묻어둔 아련한 돌덩어리인데 그 덩어리를 그나마 내려놓을 수 있게 해준 딸이 또 고맙게 생각된다. 혼자 한 달 동안 공부만 해서인지 너무도 마른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단 3일동안 엄마의 정성이 깃든 한국밥을 먹어서인지 조금은 살이 오른듯해 내 소임은 또 여기서 끝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