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의 처음은 호기심이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내 몸의 타투는 나를 지탱해주는 지렛대가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 몸 어딘가에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단 한 줄의 레터가 굵지도 얇지도 않은 딱 중간 크기의 로마 글자로 조용히 은밀히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한 줄의 글귀는 '이 순간의 행복'이고 이 말을 영어로 쓰려다 누구나 알아보지 못할 로마체를 쓰기로 정하고 타투하는 곳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지인이 근처에서 해 보았다는 말을 듣고 내 성격대로 그날 예약을 하고 곧바로 달려갔다. 여기에서도 타투를 아주 대놓고 한국사람이, 더구나 이 나이에 한다는 건 조금은 비밀스러운 일이라 아주 조심스러운 마음과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을 곳을 고르고 고르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그것 또한 그럼 왜? 라며 살짝 보이는 곳을 찾아 적당한 글씨의 두께로 프린트되어 내 피부에 대고 타투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주홍글씨라는 옛 영화가 있다. 그 시절에 남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 여인에게 낙인을 찍는 유럽의 오랜 관습이 영화의 소재가 되어 화제가 된 영화였다.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노랑머리 여인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가슴에 A라는 붉은 글씨를 새긴 옷을 입어야 하는 불륜의 상징이 된 그 장면만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비들에게 불지짐으로 남자는 '노' 여자는 '비'라는 글씨를 이마에 붉게 새김으로 평생 노비로 살아야 하는 무서운 징표가 되었다.
생각의 사고가 변함에 따른,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인식
그때는 죄지은 이에게 낙인의 고통으로 말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고 계급에 따른 신분의 상징으로 강제로 몸에 새겼다지만 지금 시대는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글씨나 그림을 내 몸에 새기고자 열망하니 시대에 따른 생각의 변화는 그것이 좋거나 나쁘거나의 기준이 생각의 사고가 변함에 따른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투의 시작점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러한 좋지 않은 인식에서 출발되어 현대에 와서의 인식 또한 곱지 않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노비에 이은 어둠 세계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유로 사회 구성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소시민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피해를 주는 오류를 행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아주 오래전에 건강하게 불뚝 튀어나온 남자의 팔에 한 여인의 얼굴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그려진 타투를 보고 깜짝 놀란적이 있다. 자기의 몸에 여자의 얼굴을? 그러면서 팔짱을 낀 옆 여인의 얼굴을 보는데 꼭 닮은 여자였다. 휴~~ 다행이다. 얼마나 사랑하는 여자면 저렇게 자기의 몸에 그것도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평생 지울 수 없는 타투를 떡하니 그려 놓았을까? 행여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믿음으로? 저 젊은 나이에? 에휴~~ 어떡해 사랑이 변하면.... ㅎㅎ 내가 별걱정을 다한다 싶어 혼자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 팔뚝의 여인과 함께 하고 있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 암튼 오지랖이다.
이 나라 경찰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솔직히 내가 가장 많이 흔하게 타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경찰관이다. 여름의 반팔 경찰복 위로 현란한 각양각색의 타투를 안 한 경찰이 없는 듯 굵은 팔뚝에 새겨져 있다. 팔만이 아니라 경찰복 위로 보이는 목이며 가슴께도 있는 듯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의 타투를 버젓이하고 근무를 한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그렇다면 일반 사람들의 타투 사랑은 말을 안 해도 될듯하다. 머리를 일부러 밀었는지는 모르지만 민머리에 멋진 그림을 그린 모습에서부터 타이트한 레깅스를 입은 건지 타투인지 모를 정도의 모습으로 수다 떠는 젊은 여인들도 있고 머리를 묶는 뒷머리로 살짝 보이는 타투는 귀엽기까지 하다.
타투 커플을 본 적이 있는데 둘의 몸은 아마도 타투의 전시회를 방불케 할 것이다. 한국의 타투 사랑도 과히 남다르지 싶다. 예전엔 기도들 즉 주먹깨나 쓰는 어깨(?)들의 타투 사랑은 용 몇 마리 그려 넣지 않으면 요즘 말로는 콘텐츠에 맞지 않을 만큼 용이나 호랑이 그림이 넓적한 등이며 어깨에 거의 화폭 수준으로 그려져 있으니 웬만한 화가의 솜씨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사이즈며 디테일이다.
타투는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다 소소히 아니면 은밀히 잘 나가는 유명 연예인의 팔에 귀밑에 목 언저리 등 조금씩 모자이크 처리해가며 보이더니 요즘엔 자연스럽게 화면에 노출되니 많이 발전했다 싶다. 하지만 아직도 모든 타투가 불법이라니 그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왜? 눈썹 교정을 안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샾에서든 개인집에서든 모든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타투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니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고 오히려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타투이스트는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아야 될 예술인이라고 생각한다.
남편도 나랑 같은 나이이고 몸에 무언가를 평생 동안 남긴다는 거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고 또 한편으론 부부지만 내 몸이고 내 뜻이 그러하면 그런 거지 만약 반대를 한다한들 뭐 어쩔 거야?라는 약간은 어릴 때 아빠에 대한 반항인양 살짝 긴장하며 물었다.
타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타투? 왜?(아무렇지 않게 아무 생각 없는 반응이다)
아니 그냥... 애들이 한다면 어떨 거 같아?(일단 나라고 밝히지 않고 아이를 핑계로 물었다)
뭐... 18살 넘었는데... 남자 친구가 허락하면 할 수 없지.
헐...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남자 친구 허락을 받아야 해? (내가 더 발끈했다. 남자 친구 허락이라니. 그럼 부부인 우리는??)
남자 친구가 좋다면 난 뭐라 할 수는 없지.
그럼 내가 하면?
음... 그건 안되지 난 싫어 타투
...... 나, 했는데...
뭐라고!?
이렇게 일단락 되었는데 사실 남편은 나의 살짝 귀여운 로마체 글씨의 작은 타투를 보더니 금방 좋아라 했다. 만약 나비나 호랑이라면 정말 싫었을 텐데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이고 쉽게 드러나는 곳이 아니니 오히려 섹시하다나 뭐라나..., 이러한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큰딸은 한국에서 한글로 '이 순간의 행복'을 자기 몸 구석에 새겨 넣었다.
의사는 환자를 진료할 때 의사의 몸 어딘가 보이는 곳에 타투를 할 수 없다는 무언의 룰이 있다 해서 쉽게 보이는 않는 곳에 했음을 아쉬워하긴 했지만 엄마인 나의 개인 철학을 존중해주고 자기의 철학으로 해석해 지금도 그 뜻을 지렛대 삼아 살아가고 있음에 같은 여자로서의 동질감 같은 무언의 공감대에 감사한다.
기억을 기억하기 위한 장치로 여러 가지가 있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사진첩에 남기고 글로 써서 활자로 남기고 아니면 비디오 영상으로 그 순간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자유롭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남겨지길 원한다. 모두 기억을 붙들기 위한 장치로 누가 더 붙들 수 있는지의 경쟁으로 IT 업계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게 강력하게 유지될 수 있는 평생의 기억장치로서 내 몸에 새기는 타투보다 더 강력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누구는 그런다. 뇌의 주름에 새기듯 한 자 한 자 기억을 새기라 하는데 누가 나의 철학과 기억을 죽을 때까지 아무런 훼손 없이, 아무런 기계장치 없이 영원히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
옛 추억을 기억하려 옛사람을 만나 추억의 기차를 몇 바퀴 돌아야 차창밖의 옛 생각이 나고 사진도 바래 그 기억의 끈이 지워질 수 있으며 컴퓨터에 저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패밀리 크라우드로 묶어놔도 전기 파워가 나가버리면 혹은 컴이 깨져버리면 아무 쓸모없는 휴지가 되어버린다. 물론 그런 기억을 일일이 다 새길수 있는 타투는 없다. 다만 내가 한 세상 살면서 하나를 기억하고 하나를 가슴에 안고 그 하나로 험한 세상을 살 수 있는 힘이 되는 하나가 있다면 난 내 몸에 새겨서라도 평생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다.
평생을 살면서 한 가지 신념이 어찌 바뀌지 않겠는가? 우리가 신도 아니고 하루 앞도 알 수 없는 개미 같은 인간이 아닌가? 쉽게 생각해서 쉽게 해치우는 스피드 한 결정은 금물이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각오를 가지고 선택해야 하고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돈이든 물건이든 철학이든 넘치면 병이 되고 독이 되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나는 한점 망설임 없는 결정이었지만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평생 붙들고 가야 하는 하나였고 내가 흔들릴 때마다 몸에 새긴 글로 힘을 얻고 있다. 그뿐이면 되지 무얼 더 바라겠는가?
이번엔 우리 둘째 딸이 자기가 좋아하는 강아지를 팔에 새기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 그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말이다. 차라리 '동물사랑'이라는 글귀는 좋다 했다. 100세 시대인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을 키울 예정인데 그때마다 타투로 남긴다면 아마 온몸이 사랑하는 동물들로 넘치리라... 그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