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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Dec 18. 2019

명품을 대하는 미국 아이들

#69ㅣ

블랙 프라이데이에 아이들과 백화점에 다녀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쇼핑의 즐거움을 점점 잃어가고 1시간이 넘어가면 온몸이 뻐근하고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어 체력이 약해졌음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옷이나 가방이나 내 몸에 걸치는 모든 거에 그리 신경 쓰이지 않음이 솔직히 나이 듦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재미없음의 책임은 분명 우리 아이들의 반응에서 오는 허탈함이다.


특히 우리 13살 사춘기 소년은 이거 살까? 저거 살까? 의 물음에 한결같이 무조건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오로지 신발 그것도 단 한 켤레로 일 년을 버틴 혈기왕성한 소년의 발이 운동화를 격하게 원하기에 할 수 없이 무거운 몸을 끌고 나오신 바람에 우리 모두가 함께한 쇼핑이었지만 역시나 아들의 소화 안됨의 싸인으로 얼렁뚱땅 명품은커녕 중저가의 후드티 하나씩만 겨우 획득하고 그 아까운 1년 중 세일이 가장 많다는 블랙 프라이데이를 우리끼리 조기 마감했다. 

명품으로 빼입으면 눈총만 받는다며 한사코 만류한다


우리 큰아이도 다르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대학원을 다니는 어엿한 숙녀인데도 변변한 가방 하나 없어서 내가 소장한 명품이라 하기에도 오래된 00을 주어도 그런 거 가지고 다니면 욕먹는다며 손사래를 치고  그래도 인터뷰도 있고 가끔 컨퍼런스에도 참석한다니 내 딴에는 번듯한 정장이라도 입기를 원하지만 모두가 그리 옷에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너무 빼입으면 눈총만 받는다며 한사코 그럭저럭 구색만 갖춘 정장을 입는다. 


둘째가 다니는 대학교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아 한국 친구들이 많은데 하루는 이런 말을 한다.

엄마, 나 큰일 날 뻔했어요.
왜?
너무 춥다고 했더니 친구가 자기 쟈켓을 벗어 줘서 걸치고 집에 왔는데..
잘 입고 왔으면 됐지 그런데?
글쎄, 몽 000이라고 크게 적혀 있어서 얼마짜리냐고 물었더니 아파트 한 달 렌트비보다 비쌌어... 그래서 그대로 다시 벗어줬어. 우리 띠오가 모르고 물어뜯으면 어떡해. 그렇게 비싼 게 말이 돼 엄마???


난 속으로 그랬다. 충분히 말이 되고 엄마도 그 시절에 한국에서 그런 옷 나이키나 필라 뭐 그런 종류의 브랜드에 목숨을 걸었으니까... 너희들은 왜 그런 걸 모르니? 그러고 보면 남편도 거의 10년 동안 하나의 배낭가방만을 메고 다녀 직원들에게 농을 받았다 한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의 소비는 엄마인 나만 하는듯하다. 하하


오히려 난 한국의 정서가 아직도 몸에 배어 있는 편이다. 이왕이면 좋은 거 한두 개가 싼 거 여러 개 있는 것보다 낫다 생각하고 명품 한두 개쯤은 소장하고 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생각되고 명품은 살 때는 비싸지만 나만의 만족도 있고 솔직히 남들에게 보여주는 만족도도 높은 편이어서 필요충분조건이 맞아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요즘엔 명품을 좋아하는 층이 점점 낮아져 중, 고등학생의 명품이 따로 있고 젊은 층이 선호하는 명품이 따로 있고 특히나 세계적인 명품도 한국에서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구입한다는 말을 듣고 미국의 아이들은 순진한 건지 너무 개인적인 주관이 강한 건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유명인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동질감이 명품의 과소비를 부추긴다


한국은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이 무얼 하고 나오는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일반인 누구나 그들과 똑같이 입고 쓰기를 원하고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생각을 해서 심한 출혈을 감내한다. 네가 살 수 있다면 나도 빚을 내서라도 살 수 있고 네가 가는 어디든 나도 언젠가는 똑같은 곳에 가서 그걸 사고 그걸 마시고 그걸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하다는 게 문제이다.


특히 아직 어린아이들은 워너비인 스타들을 무조건 따라 하는 무분별한 사고가 더욱 비싼 명품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보니 그들의 행동에 지나치게 관심이 가고 지나친 관심이 병이 되어 구하라 같은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기도 하고 양극화의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스타의 옷차림이 스타를 따라 하려는 아이들에게 과소비를 부추긴다


몇 해 전에 검정 패딩으로 유명한 브랜드를 한국의 학생들이 모두 입어서 그 옷을 안 입으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을 때가 있었다. 강남의 그 큰 사거리에 시커먼 롱 패딩 부대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순간 흠찟 놀랐었는데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처럼 누군가가 입고 이쁘면 누구나 똑같은 인형처럼 빚을 내서라도 입기를 원하는 이유가 바로 뚜벅이 문화에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롱 패딩의 과열로 개성이 없어져버린 아이들의 뒷모습


왜냐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볼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주워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타기도 하지만 고1만 되어도 일인 일차량이다 보니 남을 볼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없어 남과 비교가 안 되는 이유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출산율이 저조하다 보니 내 아이에게만큼은 누구보다 최고로 해주고 싶은 마음에 비싸지만 땡 빚을 내서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클 것이다.



다양한 인종에 개성이 넘쳐 획일화된 명품에 열광하지 않는다


한국에 비해 미국은 지나치다 싶게 개인적이다. 사진처럼 연예인에 자식까지 명품으로 휘감고 나오는 모습들이 가끔 인터넷에 뜨지만 연예인이 입었다고 감히 넘보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는 것이 일차적이겠지만 그들의 옷이나 액세서리를 일반인들은 감히 살 수 없는 가격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마 상위 몇 프로를 위한 명품이겠지... 빚을 지면서까지의 소비형태가 형성되어있지 않고 남에게 신경 쓰지 않으니 그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별 관심이 없고 서로가 딴 세상에 살고 있어 그들을 엿볼 생각도 안 하는 모양이다. 그저 눈팅이고 눈요깃감이다. 


오히려 너무 다양한 인종에 개성이 넘쳐 지금이 겨울인지 여름인지 혹은 가을인지 모를 정도의 다양성으로 사람에 따라 온도도 개성이 있나 싶을 만큼 재미나게 마음껏 입고 자기를 즐기며 사는 나라이다. 그러니 명품을 알 수도 없고 설사 누군가 명품을 하고 다닌다 해도 명품을 모르는 사회이니 굳이 큰돈 들여 구매할 이유가 없어진다. 누군가가 명품을 알아봐 주어야 너도나도 재미있을 텐데 아무도 모르니 왜 구매할 것인가? 하다못해 명품차를 타고 다닌다 해도 누구 하나 쳐다보지 않고 관심도 없으니 그저 자기만족에 소유하고 비싼 보험금과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공부도 1등부터 꼴등까지 해야 하듯이 명품도 돈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어리건 나이가 많건 누구나 가져야 하고 가질 수 있다는 사고가 있는듯하다. 오죽하면 명품의 시연을 한국에서 제일 먼저 한다고 했을까? 명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패션피플이  많은 이유겠지만 경제지표는 낮아도 명품 소유의 지표는 세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내가 운영하는 샾의 건물주는 이 타운에서 손꼽히는 갑부이다.

어느 정도의 갑부냐면 번화가 길의 어디까지가 그의 빌딩인지 아무도 모르고 임대를 받는 가게만 적어도 200개도 아닌 2,000개가 넘고 이 사회에 기부한 빌딩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중 가장 크고 멋지게 지어진 도서관도 사비로 지어 도서관의 이름이 보통은 동네 이름을 따서 짓는데 이곳은 그의 이름을 붙일 정도의 엄청난 갑부이다. 하지만 그의 행세는 돈이 많다고는 절대 믿기지 못할 옷차림에다가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과하게 정중해 갑부가 아닌 그냥 동네 어르신 같은 분이다. 


건물주의 이름을 따 지어진 동네 도서관 모습

명품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고 사람이 명품을 만든다


그런 건물주가 하루는 캐나다 00 패딩을 입고 샾에 들어왔다. 난 한눈에 어느 브랜드인지를 알고 따뜻한 옷을 입고 왔다고 말하니 아주 쑥스러운 듯 아내가 사줬다며 슬쩍 웃는 겸손한 미소에 명품을 입고도 거창해 보이지 않는 소박함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명품 또한 누가 입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고상하게도 사치스럽게도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아마도 그는 나에게나 길거리 행인 아마도 홈리스에게 아니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도 똑같은 표정과 똑같은 태도로 대할 거 같은 강직함과 정직함이 그대로 묻어있는 사람이다. 명품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고 사람이 명품을 만든다는 걸, 몸에 배어있는 그 사람 자체가 명품이었다. 아마 명품이 아닌 가품을 입었을지도 모르나 사람이 명품이니 걸친 옷이 명품이든 가품이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분에게 자식이 없어서 슬픈 일이지만 자식이 있다면 아마도 부모를 닮아 인간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물림 아니겠는가? 돈의 대물림만 대물림이 아니다. 사람의 이미지는 그 사람의 몸짓과 태도에서 풍겨 나오는 것이라 누가 시켜서도 따라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몸에 밴 습관이기에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어릴 때부터의 예절이며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인간적인 교육을 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부모의 행동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내가 이 사회에 살면서 정말 딱 하나를 닮고 싶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태도이다. 내가 한국에서 큰아이를 7살까지 키웠지만 나 또한 아이에게 백화점 옷을 자주 사 입혔다. 아이에게 명품을 입히면 부모도 명품이 되는 양 모두가 그렇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아주 당연히 비싼 옷을 매일 크는 아이에게 거액의 돈으로 치장했다. 결국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특별하다는 인식에서 출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내가 인식하고 바뀌지 않으면 절대 고쳐지지 않고 내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내 아이의 또 아이에게 전수된다. 


어른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어른들이 내 가족에게 대하는 모습과 일관된 행동으로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고 남들이 하면 나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내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명품 따위의 보여주기식 치장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한 사회의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그렇게 남들의 눈을 의식하고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하는 이상한 엘리스의 나라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부터 나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오늘 하루 열심히 살면 될 것이다. 분수 것 말이다. 그래도 이번 빅 세일에 동참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으니 사람이 명품을 만드는 그분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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