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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Dec 16. 2019

한국의 중2 vs 미국의 중2

#68ㅣ

학기초부터 매일 가지고 다니는 학교 종이 파일
아들, 이거 버리고 다른 거 가지고 다니면 안 될까?
No, 안돼요.
버리자,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진짜 찢어질 거 같아!
엄마, 전 이게 좋아요.
아들, 왜 이러는데? $1도 안 하겠구먼...


매일 아침 8학년(한국으로 중2) 아들과 이런 대화를 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매일 묻고 매일 대답하는 사이, 종이 파일은 점점 찢어지고 나달거려 테이프를 붙이다 붙이다 이젠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이름만 파일이고 무늬는 그냥 찢어진 두꺼운 종이에 다른 종이들을 어찌어찌 끼워 넣고 살살 달래 가며 가방에 입성시키는 꼴이 되었다. 이런게 중2의 반란인가?


이번에 아이폰 11이 새로 나왔다는 말을 나는 한국의 내 친구의 아들 때문에 듣게 되었다. 가격은 물론 특이한 사항까지 자세히 듣게 된 계기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신형 아이폰을 원하고 내 친구는 그걸 사줘야 하는 공방에서 결국은 부모가 설득을 당해 아이의 바람대로 아이가 원하는 모델에 원하는 색깔을 구입했다 하고 부모는 그 비싼 신형을 사주기 위해 오랫동안 모아놓은 비자금을 털었어야 했지만 정작 아이는 친구들에게 자랑 한번 하는 것으로 끝이었다고 약간의 허망 섞인 말을 전했다.


그래서 난 내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아이폰 11 나왔다며?
네, 들었어요.
너도 바꾸고 싶지 않니?
No, 지금 가지고 있는 거랑 다른 게 별로 없어요. 크기만 조금 커졌어요.
그래? 그래도 신형이라 좋잖아. 다른 애들도 바꾸지 않았어?
아니요, 모두 쓰던 거 쓰고 있어요. 왜요?


되려 왜 그런 걸 묻냐는 듯 반문한다. 내 아이만 그러는 게 아니다. 도대체 여기 아이들은 남들 눈에 띄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듯하다. 학교 앞에서 픽업할 때 좋은 차를 가지고 가면 질색을 한다.  친구들이 부러운 듯 쳐다보며 그런 차가 없는 친구들은 어떡하냐며 참으로 보통을 좋아하는 아직은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아서 그러겠지만, 그냥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튀어 보이는게 싫다 한다. 새롭거나 색다른 옷도 싫어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들을 정말이지 불편해해서 매일 같은 옷과 같은 가방에 뭐든 변하지 않는 똑같은 것만을 고집한다. 실제로 옷이 몇 개 없고 다 떨어진 신발 하나만 신는다. 중2인 내 아들은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고집해 먹는 것도 피키(Picky 음식이나 뭔가를 까다롭게 할때 미국에선 흔하게 쓰는 말이다)하고 자기애가 강해지며 마치 자기를 찾아가는 첫 관문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단 하나로 일 년을 버티고 있는 아들의 운동화


댄스에 취미를 보이며 힙합 댄스 음악을 들어도 내가 대학교 때 들었던 올드 팝송을 일부러 찾아 옛날 음악을 아빠와 신나게 듣기를 좋아하고 내가 중. 고등학교 때 처음 게임이라는 게 등장한 페트릭스를 어디선가 구입해 재밌다며 지금 봐도 느린 게임을 느리다며 좋아하고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시계를 더 선호하는가하면 지금도 누나와 포켓몬 게임과 포켓몬 캐릭터를 가지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걸 보면 애어른처럼 그저 신기하다.


일부러 오래된 게임기를 어렵게 구해서 느린 게임을 즐긴다

새벽에 자는 아이의 스케줄을 나는 잘 모른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3시, 엄마의 부재를 강아지 동생의 레슬링으로 대체하며 한참을 놀다가 5시쯤 퇴근해 돌아온 나와의 짧은 재회로 기뻐하고 저녁을 먹은 후부터  아이의 개인 스케줄이 시작된다. 첼로를 켜고 좋아하는 댄스를 하고 친구들과 화상으로 게임을 하고 샤워한 후에 책상에 앉는 시간이 9시 즈음 그때부터 숙제를 하고 11시쯤엔 취침을 한다. 하지만 시험이 있는 날은 언제 자는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새벽 두 시나 세시에 자는 날도 있다고 아들이 말하지만 난 구태여 알려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엄마의 무관심으로 들리겠지만 난 자립심이라 말한다. 어디까지나 아이의 일이니까.... 이게 우리 집 중2의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절대 전쟁이 나지 않을 거라 말해서 한참을 웃었다. 그 이유가 중2를 그들도 무서워한다고... 가장 무서운 병이 중2병이라던가 거리에서 중2를 만나면 피해 가야 한다던가 아무리 힘들어도 중2만 넘기면 된다고도 하고 한마디로 도대체 중2가 뭐길래? 생각해보면 중2는 사춘기의 시작점이다. 여기서도 중2는 사춘기의 시작점으로 같을 것이다. 뭐 세계적으로 무서운 사춘기의 반열이 나라가 다르다고 그 생리가 다를까마는 나라마다 느끼는 사춘기의 온도가 다를 뿐일 게다.


난 그 다름의 온도가 교육환경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미국은 한국에서는 생각지 못하는 철저한 성적의 단계별 교육을 모두가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우열반으로 나눈 차등교육이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우와 열만 있는 게 아니고 세밀하게 조직적으로 나누어 동일한 나이에 맞는 일률적인 교육이 아닌 나이와 관계없이 성적에 맞는 교육을 함으로써 나이는 다르지만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스템이라 특별한 열등의식이 없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특히 수학 같은 경우는 7단계의 개개인의 수준에 맞는 단계를 철저한 테스트로 분리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함으로써 공부에 뜻이 있는 아이들은 높은 단계의 반에 열의를 다하고 미술이나 다른 공부에서도 3,4 단계로 나뉘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기 때문에 어느반에 있든 각자 좋아하는 파트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어 경쟁이 심하지 않다. 땅의 넓음이 주는 대륙 기질이 있어서인지 다른 나라에게 피해를 당해보지 않아 열등의식이 없는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히 하나의 다름을 말하자면 공부만 잘난 게 아니고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걸 모두가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회가 한국과 다른 점이라 할수있다. 아마 한국에서 이 같은 차등을 두어 수업을 한다 하면 학교와 학부모 사이의 비리로 모두가 데모하다 쓰러질 것이다.



1등 만연 주의가 주는 다수의 상실감

일단 우열반에 대한 심각한 트라우마가 한국인 전체가 가지고 있는 강박관념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까지의 신분계급 사회에서 주는 열등의식이 한편으론 갑질 문화로 변질되어가고 또 한편으론 열등감을 깨지 못해 너를 밟지 않으면 내가 올라갈 수 없는 수직관계가 팽배해져 1등이 아니면 도태되는 1등 만연 주의가 주는 다수의 상실감으로 차등교육까지는 받아 들일수 없는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의 결여라고 본다.


반면 미국의 교육은 노예제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신분제도와 비슷해 교육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음은 같지만 굳이 대학 교육을 받지 않고 고등학교까지의 교육만으로도 비슷한 수준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복지 차원에서 지원해줌으로써 고학력 교육에 대한 심각성과 누구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살기가 힘든 한국 같은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게 틀린 점이라 할 수 있다.


고학력이어야 살 수 있는 한국은 중학교도 아닌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만이 살길인 것처럼 공부에 흥미가 없는 꼴찌에서부터 댄스에 관심 있는 댄스천재까지 전교생 누구나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고 공부가 아니면 다른 길은 전혀 없다는 듯 하나의 길만을 모두가 가려하니 길은 하나요 가는 사람은 가득 메우고도 넘쳐나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데도 어른들은 그 길로만 밀어 넣으니 모든 게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사춘기 청소년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친구와 영상통화로 같이 있는듯한 착각으로 우의를 다진다니
새로운 문화충격이고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학교 공부뿐 아니라 학원에서의 공부로 개인 시간이 전혀 없고 좋아하는 음악, 댄스, 운동은커녕 마음껏 게임도 못하고 그저 새벽까지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혈기왕성한 사춘기 아이들에게 자유가 없으니 영상통화로 그저 친구끼리 틀어놓고 같이 있는듯한 착각으로 산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그나마 이런 친구라도 있어 대화할 시간이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혼자만의 행동을 분출할 곳이 없어 부모와 가족에게 나아가 사회에게 소리없는 무음으로 소리치는 그저 어린 반항집단이 되어버렸다. 하고 싶지 않은걸 억지로 하는 것만큼 억지스러운 게 없는데 중2가 한국에서 무서운 병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과부하에 걸려 어디로도 갈 수 없는 힘없는 양들이 할 수 있는 건 땅을 치고 소리치며 성내며 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이는 성내며 무조건 떼를 쓰고 부모는 자식이 공부만 할 수 있다면 뭐든 받아주게 되어 부모를 대하는 태도도 볼썽사나워지는 돌고도는 악순환의 쳇바퀴가 되어 악으로 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무서운 중2병은 부모와 사회가 만들어낸 신종 희귀병이며 반드시 퇴치해야 할 병으로 우리 모두가 새로운 눈으로 교육을 바라보아야 고칠 수 있다 생각한다. 중2병이 고3병을 만들고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에 적응 못하는 부적응자가 되고 부모가 되어 또 그 자식은 더 무서운 중2병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기여하는 기여도를 먼저 생각하는 미국 교육

그런 의미로 본다면 미국은 공부하려는 아이와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 미술에 소질이 있는 아이 책 읽기를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하고 하다 못해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타이틀을 줘서라도 나름의 다양성과 독창성에 의미를 부여하고 칭찬하고 공부만 잘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중요한 그런 사람을 칭찬하고 좋아하는 사회이다 보니 모두가 행복하다. 풋볼을 잘하고 축구를 잘하고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는 아이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만 공부만 잘하는 아이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공부하는 법을 알지 못해 아마도 부모와 사회를 부정하며 그 누구보다 중2병도 심하게 앓았을 것이고 고3의 위대한 공주가 되어 물 불 못 가리는 갑질 학생이 되었을 것임을 나도 알고 우리 아이들도 알고 있다.


지금 내 아들은,

중2 정확히 사춘기 반열에 올라 얼굴에 보송하게 솜털이 나고 팔다리에 제법 굵은 털들이 자라고 목소리는 거의 중저음으로 누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여자 친구의 '여'자도 입에 올리기 쑥스러워하고 가끔은 엄마를 자기가 챙겨야 하는 여자로 보는 행동을 한다. 예를 들어 무거운 마트 백을 내가 들라치면 심하게 손사래 치며 자기가 한다며 무거움을 참아가며 당당하게 들고 들어갈 때, 그럴 때 난 당황스럽다. 이렇게 컸구나! 나를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이만큼 컸구나..


그렇지만 이번 겨울 방학이 끝나면 제발 저 나달거리는 종이 파일을 새로운 파일로 바꾸길 간절히 바란다.

이 또한 관심병이다. 뭐 어떤가! 나달거리는 파일이 너무 좋고 다 헤어진 운동화가 좋다는 우리 아들을 내가 왜 매일 상관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찢어져 없어지고 결국엔 새로운 걸로 바꿔 끼면 그뿐인걸... 중2가 지나가길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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