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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Sep 21. 2021

Schmerzlich...마음이 쓰려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요?

최근에 독일 여성분을 가르치게 됐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고 고운 음성의 소유자다. 또한 성격은 어찌나 쾌활한지, 덕분에 나는 레슨하는 1시간 동안 일주일 분량 정도를 박장대소할 수 있다. 그녀의 노래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지만 아마추어이기에 나는 그 열정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을지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오늘 우리 이거 하나만을 고쳐보기로 해요. 이게 오늘 내가 이 시간에서 바라는 전부예요!"


그녀는 평소에는 반주 CD를 들으면서 연습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연습이라는 것이 우리가 노래방 반주로 노래하는 것처럼 그냥 흘러가는 음률에 나의 소리를 얹는 것일 뿐이다. 어떤 경우든 기술 향상은 지독한 자아비판과 반복 연습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그녀의 연습은 스스로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다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의 결과물을 이뤄내기는 힘들다.


"지나, 고마워요. 나는 이제까지 노래를 많이 부르고 또 레슨도 많이 받아봤지만, 알고 있어요. 칭찬만 하는 건 결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요. 물론 내가 부족한 걸 인식하는 것은 마음이 쓰려요(Schmerzlich). 하지만 나는 이게 나에게 더 좋은 길이라는 걸 알아요. 정말 고마워요."


내가 오히려 더 고맙다. 내 진심을 알아주니까.


내가 그녀에게 한 시간 동안 칭찬만 하다 보내면 나에게 배우기 위해 먼 길을 오는 그녀를 기만하는 것이 아닐까. 뭐든 새로운 거 하나라도 가르쳐서 보내야겠다는 게 나의 마음이다.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부족한 점을 건드려야 한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다.




나이가 들면 나의 결점에 대한 직언을 해주는 사람도 드물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기 쉽지 않다. 상대방과 충분한 신뢰관계가 쌓이지 않으면 충고를 말하기도, 듣기도 정말 쉽지 않다. 나도 예전에는 상대방이 잘되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충분히 신뢰관계가 쌓였다는 오해 하에 오지랖을 부려서 나의 선의가 왜곡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다행히 나는 귀한 조언을 해주는 언니들이 있다. 노래에 관한 지적이든, 유튜브에 관한 지적이든, 심지어 재테크에 관한 것이든, 그들은 오랜 시간 나를 봐왔기에 객관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지적을 해준다. 그중에는 돌려 말하는 이도 있고, 직설법을 구사하는 이도 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나의 결점을 깨닫는 그 순간은 정말 매우 쓰리다.


최근에 나의 멘토님 중 한 분과 녹음을 진행했다. 우리의 인연은 어느덧 14년이 돼간다. 그만큼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아껴주는 언니다. 이 날을 위해 나는 3시간을 운전해서 갔고, 2박 3일 동안 그곳에서 머무른 채 오로지 녹음에만 전념했다. 녹음은 3일 동안 이루어졌는데, 저녁에 녹음하면, 그다음 날 오전과 오후 내내 음원을 듣고 좋은 부분을 추려내면서 편집을 했고, 부족한 부분은 다시 저녁에 녹음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날에 벌써 스스로 만족스러운 곡이 나왔다. 그래서 그 곡은 세 번째 날에는 아예 녹음하지도 않았다. 나머지 곡들도 상당히 완성도를 갖췄다고 생각했기에, 세 번째 날에는 사소한 부분만 고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세 번째 녹음 전에 언니가 자신의 귀에 들리는 나의 특정한 결점을 언급했다. 그렇지만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가 문제인지, 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집중력 면에서도 방전 직전이었던 세 번째 날이었기에, 나도 날이 선 상태로 대응했다.


"언니,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 지적을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어요.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일단은 넘어가고 지금은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정확히 48시간이 걸렸다. 언니가 지적한 사항을 인식하게 되기까지. 집에 도착해서 녹음 파일을 정리하며 들어봤더니,  둘째 날에 그토록 스스로 만족해서 셋째 날에 아예 녹음조차 하지 않았던 그 곡에서 언니가 지적한 결점이 또렷하게 들렸다. 이게 과연 이틀 전에 그토록 내가 흡족해하던 곡인가 싶었다. 이제 알아버린 이상 이 녹음은 절대로 세상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작업의 완성도에 의기양양했던 나의 자신감은 한순간에 추락해버렸다.


"언니 미안해요, 언니가 말한 게 다 맞았어요.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게 언니라는 게 너무나 고마워요."


사람 좋은 언니는 나를 위로하며, 이번 녹음을 통해 자신도 얻은 게 많다고 했다. 나와 작업하는 게 즐겁다는 진심 어린 말도 해줬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재녹음 일정을 짰다...... 아흑....ㅠ.ㅠ


잔인하다. 억장이 무너진다. 무언가에 열정을 갖고 매진하면, 그 과정에 쓰라림이 반드시 동반된다. 그가 나를 정금과 같이 단련하시리니....라는 문구는 20대 때나 위로가 됐지, 지금은 '아이 C, 또!'이다. 그 쓰라림이 나를 더 성장시키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충분히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픈 건 아프다.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생리통은 진통제를 먹어서 통증을 감할 수 있지만, 열정의 대가로 생기는 쓰라림에 대한 진통제는 도통 구할 수가 없다. 오로지 혼자 삭힐 수밖에....


코로나 기간 동안 내 열정이 강제로 거세되어 한편으로는 참 좋았다. 아플 일이 없었으니까. 이제 슬슬 기지개를 켜니까 쓰림도 같이 찾아온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요? 제가 아직 청춘인가 봅니다.


"인간에게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알프레드 아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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