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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r 28. 2020

72회 - 레퀴엠(Requiem)

우리를 위한 진혼곡

https://youtu.be/HdEvVz2NnlM

해설 + 한글 자막과 함께 베르디 "레퀴엠"을 입체적으로 느껴보세요!


가톨릭 미사에는 라틴어 기도문이 있어요.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퀴리에, 글로리아,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뉴스데이... 이 말들은 평상시 드려지는 미사의 기도문의 첫 단어들이에요. 그런데요. 죽은 사람을 위해 드리는 미사는 기도문이 좀 달라요. 첫 시작은 이렇습니다.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레퀴엠 에테르남 도나 에이스 도미네: 주여,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그래서 이 기도문을 가지고 작곡된 미사곡을 <레퀴엠>이라고 부른답니다.


레퀴엠 중에 가장 유명한 곡은 아마도 이 곡이 아닐까요?

이 곡은 바로 베르디의 레퀴엠 중 “진노의 날”이라는 곡입니다.

https://youtu.be/jGvYaMIXuxU

Dies irae, dies illa  진노의 날 바로 그 날

Solvet saeclum in favilla: 온 천지가 잿더미 되는 그 날

Teste David cum Sibylla. 다윗과 시빌라가 예언한 날

Quantus tremor est futurus, 얼마나 떨며 두려울 것인가

Quando judex est venturus, 심판자가 당도하실 그때

Cuncta stricte discussurus! 모든 행실을 엄중히 저울질하리라.


베르디가 이 <레퀴엠>이라는 명작을 쓰게 된 건 다름 아닌 작곡가 1868년 로씨니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부인 올랭프 펠리시에와 로씨니는 금요일 밤마다 자택에서 음악파티를 열었어요. 그리고 베르디는 거기 단골손님 중 한 명이었고요. 그렇게 각별했던 로씨니가 사망한 후, 그를 위해 당대 최고의 작곡가 13명이 공동으로 레퀴엠을 작곡하는 프로젝트가 계획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실현되지 못했죠. 그러던 중 1873년 이탈리아의 국민 작가 알레산드로 만초니가 사망합니다. 만초니가 얼마나 이탈리아에서 중요한 작가냐면요, 독일 학생들이 괴테의 "파우스트"를 무조건 배우듯이, 이태리 학생들은 만초니의 “약혼자들”이라는 작품을 반드시 공부한답니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도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만초니를 베르디는 매우 존경했어요. 그래서 그의 사후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레퀴엠을 작곡합니다. 이전에 로씨니를 위해 썼던 부분을 기초로 해서요. 그럼 베르디의 <레퀴엠> 중 한 곡을 더 들어볼까요? 테너들이 사랑하는 아리아 "Ingemisco"입니다.      

            

Ingemisco tamquam reus, 죄인으로서 간구하옵나이다
culpa rubet vultus meus, 저의 잘못 때문에 얼굴이 붉어집니다
supplicanti parce, Deus. 바라옵건대 용서하소서, 주님.
Qui Mariam absolvisti, (막달라) 마리아의 죄를 사하신 분이시여,
et latronem exaudisti, 그리고 강도에게도 귀 기울이셨던 분이시여
mihi quoque spem dedisti. 저에게 희망을 주신 분이시여
Preces meae non sunt dignae, 제 기도가 부족하오나

Sed tu bonus fac benigne, 선하시고 온유하신 당신께서

ne perenni cremer igne. 저를 영원한 불속에 타지 않게 하소서
Inter oves locum praesta, 양 무리 사이에 제 처소를 마련하시고
et ab haedis me sequestra, 염소들 무리에 있게 마옵시고
statuens in parte dextra. 당신의 오른편에 서게 하소서


https://youtu.be/L8btovG9Fgk


영화 <아마데우스>에 보면, 검은 옷에 가면을 쓴 사람이 <레퀴엠> 작곡을 모차르트에게 의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차르트는 이 <레퀴엠>을 자신의 죽음을 위한 작품이라고 믿으며 쓰게 되죠. 당대의 라이벌인 살리에리가 뒤에서 사주했다고도 나오고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요?

영화 <아마데우스> 중 가면을 쓴 의문의 남자 (사진 출처 https://www.dga.org)

모차르트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한 사람은 프란츠 폰 발제그 백작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실존인물이고요. 음악과 연극 애호가였으며, 작곡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1791년 2월 14일에 겨우 20살의 나이로 발세그 백작의 부인이 죽게 됩니다. 발세그 백작은 부인의 사망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중개인을 통해 익명으로 <레퀴엠>을 의뢰하죠.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기 위해서요.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긴 하지만, 감히 모차르트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할 생각을 하다니요. 아마도 훗날 모차르트가 이렇게 전설이 될지 모르고 그랬겠죠. 실제로 발제그 백작은 1793년 빈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이 작품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알만한 사람들이 다 그 작품은 모차르트의 유작이라는 것을 다 알았겠지만요.


아무튼, 발세그 백작부인이 죽은 1791년에 모차르트도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12월 5일에 죽고 맙니다. 그 해 가을에는  이 <레퀴엠> 말고도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 <마술피리>가 줄줄이 초연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모차르트가 얼마나 과로했을지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건강이 위독해진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다 완성시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과부가 된 콘스탄체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어떻게든 완성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이미 받은 선수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되고, 또 나머지 돈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가의 미완성 작품을 건든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에요. 우리는 20세기 초반에 푸치니의 미완성 오페라 <투란도트>의 이야기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보게 되거든요. 어쨌든 모차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냅니다. 그럼 여기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에 “라크리모자”를 감상해볼까요?     

               

Lacrimosa  dies illa, 그 눈물의 날
qua resurget ex favilla, 죄인들은 심판을 받기 위하여
judicandus homo reus. 재 속에서 다시 일어나리라
Huic ergo parce Deus. 그러므로 하나님 그들을 용서하소서

Pie Jeus Domine, 자비로우신 예수여

Dona eis requiem! Amen.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아멘.


https://youtu.be/Ym8b3bC_Fq4



   
위의 라크리모자 뒷부분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Pie Jesu Domine, dona eis requiem! 자비로우신 예수님,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이 짧은 가사를 가지고 많은 작곡가들이 주옥같은 곡을 남겼습니다.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이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레퀴엠>에도 정말 아름다운 “피에 예수”가 있는데요. 이 곡들은 제가 꼽는 3대 피에 예수예요. 듣고 있으면 영혼이 정화된답니다.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 중 "피에 예수"

https://youtu.be/_VLY2bd5w8k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레퀴엠> 중 "피에 예수"

https://youtu.be/31oAcmBz044


나머지 한 곡을 오늘 소개하고 싶어요. 앞서 말씀드린 2개의 곡보다 조금 덜 유명하지만,  마찬가지로 너무나 아름다운 곡입니다. 영국 작곡가 존 루터의 <레퀴엠>에 나오는 "피에 예수"에요.

존 루터 옹은 아직 살아계셔요. 1945년 생으로, 올해 나이 74세입니다. 인생은 60부터니까 아직 한창이시죠. 1981년에 자신의 합창단 캠브리지 싱어즈를 창단하고 많은 음반을 남기죠. 하지만 1985년 지병이 생긴 이후부터는 작곡을 줄이고 있다고 하네요. 그의 음악은 너무 대중적이다, 진지하지 않다..라는 평도 있지만, 뭐 어떻습니까? 저는 루터의 아름다운 음악을 좋아합니다. 그럼 루터의 "피에 예수" 같이 감상하실까요?


https://youtu.be/INxOoohlGNY


20년 전에 <리베라 메>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차승원 씨가 연쇄방화범으로 나오고, 최민수 유지태 씨가 소방관으로 나왔죠.

저는 그때 <리베라 메>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나를 자유롭게 하소서,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죠.  

<레퀴엠> 속의 가사는 무시무시하고 또 절박합니다.    

                 

Libera me  Domine de morte aeterna

저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하소서, 주여,
in die illa tremenda quando coeli movendi sunt et terra.

그 두려운 날에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Dum veneris judicare saeculum per ignem.

당신께서 세상을 불로 심판하러 오실 때에

Tremens factus sum ego et timeo,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떨리라.
dum discussio veneri at que ventura ira.

소송이 임박하고 분노가 터져 나올 때
Dies irae, dies illa,

그 날, 그 분노의 날
calamitatis et miseriae. dies magna et amara valde.

재난과 비참함으로 두렵고 비통한 그 날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et lux perpetua luceat eis.

또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20세기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레퀴엠을 소개하고 싶어요. 전곡이 겨우 15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작품인데요. 이 중에서 오늘 소개할 ‘리베라 메’에는 두 가지 소리가 있어요. 하나는 멜로디를 노래하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쉴 새 없이,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는 목소리입니다. 하나는 멜로디고, 또 하나는 음향효과 같은 소리예요. 하지만 둘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리베라 메, 나를 구원하소서."


https://youtu.be/kjiMtvXmMMA


마지막 곡은 포레의 <레퀴엠> 중에 나오는 마지막 곡 ‘천국에서 In Paradisum’이에요. 포레의 레퀴엠은 특별합니다. 포레는 일부러 레퀴엠 중에 “진노의 날” 부분을 작곡하지 않았어요. 많은 레퀴엠이 심판의 날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잘 묘사하고 있는데요. 포레는 반대로 죽은 자와 남은 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합니다. 그래서 포레의 <레퀴엠>은 '죽음의 자장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죠.


“천사가 당신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당신이 도착하면 순교자들이 당신을 맞아,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천사들의 합창이 당신을 맞이할 것이며,

한때 가난하였던, 나사로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취할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을 얻으소서."


https://youtu.be/6-i1ESIRKdA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죽음 너머의 세계를 모릅니다.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의문 때문에 종교가 생겼겠죠.

그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겪는 고통은 여전히 두렵고,

또 사랑하는 이들과의 영원한 이별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으로 인한 상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또 우리 모두 언젠가는 그 순간을 원하지 않아도 맞이할 것입니다. 

다만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조금이라도 세상에 요긴하게 쓰임받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전세계의 의료진께 감사드립니다.


(유튜브로 72회 전체 에피소드 청취하기)

https://youtu.be/M9CwIOfi4js

(팟빵으로 듣기)

 http://www.podbbang.com/ch/1769003?e=23444718




산다는 것은, 매 순간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그 탄생이 멈추는 순간인 것이죠.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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