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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04. 2020

71회 - 전염병을 이긴 음악가들

매독에 걸렸던 슈만과 볼프 이야기

http://www.podbbang.com/ch/1769003?e=23435970


오늘은 평행이론 같은 삶을 살다 간 두 작곡가를 소개하고 싶어요. 두 사람 다 독일 음악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떠났죠. 그리고 안타깝게도 같은 병을 앓았고,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모습도 비슷했습니다. 살아 있을 때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전설이 된 것도 그렇고요. 

네, 그렇습니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과  후고 볼프(Hugo Wolf)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슈만(1810-1856)은 젊은 시절에 얻은 매독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어요. 매독이란 병은요, 어떤 경우에는 잠복기가 수십 년에 달하기고 하고요, 특히 뇌와 신경계 쪽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매독의 증상 중에는 신경쇠약, 발작, 망상, 정신착란 등 증상도 있다고 해요. 가뜩이나 슈만 스스로가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는데요, 거기에 정신질환까지 더해져서 1854년에는 라인강에 투신하기도 합니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맞았죠. 

1847년의 슈만과 클라라, , 에두아르트 카이저 그림

이 병이 재발한 건 1846년이었다고 해요. 슈만이 아펐을 때, 그의 사랑하는 부인 클라라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 그리고 청년 브람스의 이야기는 [노. 고. 독. 고.] 28회에서 한번 소개했어요.


http://www.podbbang.com/ch/1769003?e=23026704


오늘 소개할 곡은 '당신의 얼굴 Dein Angesicht'라는 곡이에요. 슈만은 이 곡을 1850에서 51년 사이에 작곡했는데요. 이 때는 많이 회복돼서 뒤셀도르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시절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2년 뒤, 1853년부터 정신병이 심해졌거든요. 


이 곡은 멜로디가 너무나 아름다워요. 언듯 들으면 사랑 노래인 것 같죠. 하지만 시를 찬찬히 읽어보면 섬뜩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비극을 예감한 슈만이 운명처럼 이 비관적인 시에 이끌린 건 아닌가 싶어요.


Dein Angesicht so lieb und schön, 당신의 얼굴은 그토록 사랑스럽고 또 아름다워요, 

Das hab' ich jüngst im Traum gesehn, 이전에 꿈에서 본 적이 있지요.

Es ist so mild und engelgleich, 그 얼굴은 온화하고 또 천사와 같지만 

Und doch so bleich, so schmerzenbleich. 한편으로는 창백하고, 근심이 가득해요. 


Und nur die Lippen, die sind rot; 그리고 그 선홍빛 입술에

Bald aber küßt sie bleich der Tod. 곧 죽음이 창백한 키스를 할 거예요. 

Erlöschen wird das Himmelslicht, 그 천진한 눈에서 발하는

Das aus den frommen Augen bricht. 하늘의 빛도 사그라들겠지요.


https://youtu.be/sxbniVj0rdk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가 부르는 Dein Angesicht

매독은 슈만만 괴롭혔던 게 아니었나 봅니다. 이 시를 쓴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는 슈만과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는 자신이 매독에 걸렸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기록으로 남은 그의 증상은 매독의 징후와 유사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의 정확한 병명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분분합니다.) 

모리츠 다니엘 오펜하임이 그린 1831년의 하이네
'병든 하이네' 샤를 글레이르, 1851년

슈만은 하이네의 시로 많은 곡을 썼습니다. '리더크라이스'(op. 24)와 '시인의 사랑'(op.48)과 같은 연가곡 외에도 수많은 가곡이 하이네의 시에 영감을 받은 슈만에 의해 쓰였어요. 그리고 하이네의 작품은 슈만뿐만이 아니라, 브람스, 멘델스존, 리스트, 바그너 등 수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음악의 날개를 달게 됩니다.


후고 볼프 (1860-1903)

제가 쾰른에서 공부할 때, 한 번은 은사님이셨던 라이에 교수님이 저에게 질문을 던지셨어요. "독일어를 가곡으로 가장 잘 구현한 작곡가가 누구지?" 저는 단번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라고 대답했죠. 하지만 교수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어요. "음, 그래 슈트라우스도 잘 구현했지만, 볼프를 능가하는 작곡가는 없어." 


볼프는 독일어를 가곡으로 가장 잘 표현했다고 평가받아요. 한 시인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서 작품을 썼죠. 그 결과물이 괴테 가곡집, 뫼리케 가곡집, 아이헨도르프 가곡집 등인데요. 이를 통해 우리는 그의 집요함과 고집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혹시 독자분들 중에 바그너 팬이 있으시다면, 볼프도 추천합니다. 볼프도 바그너의 추종자이자, 바그너가 추구했던, 독일어를 음악으로 구현하는 정신을 추구했거든요. 


그럼 오늘 소개할 볼프의 노래를 들려드릴게요. 뫼리케의 시에 붙인 'Gebet 기도'라는 곡이에요.


Herr, schicke was du willt, 주여,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Ein Liebes oder Leides; 사랑, 혹은 고난을 주소서.

Ich bin vergnügt, daß beides 어느 쪽이라도 당신이 주시는 것이라면

Aus Deinen Händen quillt. 저는 족하나이다.


Wollest mit Freuden 기쁘거나 고난 중이거나 

Und wollest mit Leiden 그 어느 때라도 

Mich nicht überschütten! 저를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Doch in der Mitten, 하지만 그 안에서 

Liegt holdes Bescheiden. 늘 겸손하게 하소서. 


https://youtu.be/omnTJoZoK6A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부르는 볼프의 '기도'

이 곡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88년이에요. 바로 1년 전까지 볼프는 음악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너무나 솔직했던 그는 비평으로 적을 많이 만들었어요. 특히 당시 독일 음악계는 브람스파와 바그너파로 나뉘어서 서로 엄청나게 공격을 하던 시기였어요. 볼프는 위에 언급했듯이 바그너 파였고요. 당시 하늘과도 같았던 브람스를 감히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해서 볼프는 엄청난 공격을 받게 됩니다. 볼프가 본격적인 작곡에만 전념하게 된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비평으로 적을 너무 많이 만든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하네요.  


볼프는 일생동안 극심한 빈곤을 겪었다고 해요. 그의 예민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은 출세와는 거리가 멀었죠. 예민한 그가 비평을 하면서 적들에게 받았을 상처, 극도로 궁핍한 생활.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비평을 그만두고 작곡가로 전업한 지 딱 10년 되던 1897년에는 잠복해있던 매독이 재발합니다. 18살에 걸렸던 이 끔찍한 병이 36살의 젊은 볼프를 삼킵니다. 당시에 매독을 '미치광이 병'이라고 불렀대요. 볼프도 슈만처럼 정신병 징후를 보였습니다. 잠시 호전을 보이기도 했지만 볼프도 트라운 호수에 투신해 자살시도를 했어요. 하지만 실패한 후 자청해서 정신병동에 들어갑니다. 4년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난 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죠. 


볼프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일평생 가난했어요. 겨우 42세에 맞은 죽음은 너무나 쓸쓸했죠. 하지만 그는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이런 기도를 남겼어요.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 어느 쪽이라도 저의 마음은 굳건하오니, 다만 겸손을 잃지 않게 하소서 “. 


매독은 슈만과 볼프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그들의 음악까지 빼앗지는 못했습니다. 몹쓸 병이 그들의 육체를 갉아먹었어도, 음악의 숭고함은 여전히 우리를 위로합니다.


볼프의 '기도'의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https://youtu.be/cbV9Nh5AGLM

소프라노 에블린 리어가  부르는 볼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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