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군부대에 교육을 다녀왔다. 파주는 역시 파주였다. 출입문부터 공기가 달랐다. 마치 '여기서부터는 다른 세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진 촬영 금지
차량 블랙박스 가리기
휴대폰 카메라엔 스티커 부착
스티커를 붙이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오늘은 사진뿐 아니라 표정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구나.'
괜히 웃었다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히 등을 곧게 펴고 발걸음도 반듯하게 옮기게 된다. 군부대라는 공간은 사람의 태도부터 군기 잡는 재주가 있다.
이렇게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데 교육담당자님이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다.
"강의 시작 전에 대대장님이 티타임을 가지자고 하십니다."
"... 티타임이요?"
군대에서 티타임이라니. 그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잠깐 길을 잃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겨를 없이 대대장님 방에 들어갔다. 낯선 공간. 낯선 긴장감. 그런데 예상과 달리 대대장님은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다. 테이블 위에는 간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냉장고 문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커피 드실래요?"
냉커피를 주시려고 했는데 이미 마셨다고 하자 꺼내주신 건 '구론산 스파클링'. 마동석 아저씨의 미소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힘이 나는 얼굴. 아. 오늘은 이걸로 버티라는 뜻이구나. 대대장님은 별다른 말씀은 없었다. 단지 교육이 있을 때마다 강사와 꼭 티타임을 가지신다고 했다. 오늘 어떤 교육이지. 어떤 내용이 담기는지. 군인들에게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될지. 그런 질문을 하시는데 이상하게도 나를 편하게 했다. 평가하려는 질문이 아니라 '같이 잘 만들어보자'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짧은 티타임은 내 강의의 예열하는 시간 같았다.
강의장에 들어서자 용사들 사이로 간부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조합은 늘 나를 조용히 긴장하게 만든다. 아기 용사들만 있는 강의와 간부님들이 함께 있는 강의는 공기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조금 전 대대장님과 나눈 대화 덕분에 마음을 한 번 고르고 차분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100명 가까운 인원 앞에서 강의를 했다. 신기하게도 인원이 많으니 오히려 긴장감이 적당해지고 말이 더 잘 나왔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사람이 많을 때 편해지는 순간도 있다는 걸.
예전에 9명 앞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원래는 30~40명 대상 강의였는데 갑자기 긴급 훈련이 잡혀 인원이 줄었다. 완전 과외 수업이 되어버린 날. 그때는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게 오히려 더 어려웠다. 강의는 인원수에 따라 직위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가진다. 오전 강의와 오후 강의는 교육 듣는 사람 뇌 상태부터 다르다. 그걸 읽어내는 것도 강사의 중요한 기술이라는 걸 요즘 들어 더 자주 느낀다.
1시간의 마약 중독 강의를 마치고 다시 대대장님 방으로 향했다. 마무리 인사를 드리러. 이상하게도 '강의를 잘 마쳤습니다.'라고 보고하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분위기는 유연했지만 어딘가 군대 특유의 상하 보고 체계 안에 잠시 들어간 느낌. 처음엔 어렵게 느껴졌던 대대장님이 두 번째 얼굴을 뵈니 괜히 친근했다. 강의 중 100여 명의 군인들이 집중했던 이야기. 종이비행기에 진지하게 적어준 내용들을 언급하며 잠깐 담소를 나눴다.
이제 나가려는데 대대장님이 직접 마중을 나오셨다. 차에 탈 때까지 함께 걸어주시는데 몸 둘 바를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컸던 건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은 사람을 단정하게 만든다.
아주 특별한 하루였다. 사진은 하나도 남기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은 더 선명하다. 아마 보여줄 수 없는 날들이 오히려 오래 남는 법이라서 일 것이다. 파주는 역시 파주였다. 그리고 그날의 강의는 내 안에 오래 남을 장면 하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