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증은 늘 오지만, 지금은 건강하게? 잘 있어요
늘 우울하던 내가 어느 날부터 조증이 오기 시작하면서 더 충동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매일 비슷한 날들을 지나오다가 그날따라 유독 자신감이 넘쳤다. 우울증 약이 잘 들어서 그런가 생각하기도 잠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드디어 내게도 활력이 도는 거 같은 즐거움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죽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죽고 싶다는 말도 아니고, 그냥 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패할 거란 생각이 안 들었다. 유서처럼 개인 블로그에 이런 방법으로 오늘 죽으려고 한다는 글을 짧게 올렸다. 그리고 충전기 선을 잘 묶어서 문 손잡이에 걸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목이 조이니 얼굴이 터질 거 같았다. 이러다가 기절하면 죽겠거니 생각했는데, 끈이 풀리면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난 나의 시도는 죽음을 더 아무렇지 않다 느끼게 만들었다. 늦게까지 많은 생각이 들어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새벽 3시쯤 누군가가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계세요?? 안에 계신가요?"
문 안에서 누군지 확인해 보니 경찰관분들이 오신 거였다. 머쓱하게 문을 열고 상황설명을 잠잠히 듣고만 있었다. 블로그를 보고 누군가 신고전화를 걸었고, 그래서 출동하셨다고 하시더라. 너무 죄송했다. 내가 괜히 일을 만든 거 같아서. 죽겠다는 말만 써놓은 건지 정말 시도해 봤는지 물어보셨는데, 시도하다가 실패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소방관 분들까지 오셨는데, 젊은데 왜 죽으려고 하냐고 화를 내셨다. 이 밤중에 일이 생긴 게 영 마음에 안 드셨나 보다. 계속 나 때문에 출동했는데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고 툴툴거리셨다. 내가 말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당장 강제 입원 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기분이 안 좋았다. 그래도 경찰관 분들이 믿어보자고 하셔서 입원은 안 하게 되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니 일단 자고 아침에 다시 오겠다는 경찰관 분들께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괜찮다고 걱정돼서 그런 거라 미안해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셨다. 정말 아침에 다시 오셨다. 그런데 이번엔 보호자가 있어야 돌아가실 수 있다 말하셨다. 그런데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될지 몰랐다. 나를 도와주시는 분들은 다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다. 이미 민폐인데 더 민폐를 끼치기 싫었다.
경찰관 분들은 내가 보호자를 부를 때까지 허튼 생각하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어주셨는데 방에 붙여놓은 남자친구와의 사진을 보고 경찰관분이 남자친구라도 부르라고 하셔서 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안 올 거라 생각했는데, 한달음에 와준 오빠가 너무 고마웠다. 친근한 얼굴을 보니 맘이 다 풀려버려서 죽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좀 묻어두었다.
사람 쉽게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죽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 한동안은 시도하지 않겠지.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싶지 않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면, 같이 좀 더 살아있어 보자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