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런 내가 왜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고자 기도했냐 하면,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늘 내게 반가운 얼굴로 인사해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나의 내면을 보게되면 더 이상 나를 가까이 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나를 지탱해주던 수 많은 관계들이 나를 떠나가기 전에 홀로 서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점점 나라는 사람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말을 듣고 망상이다, 네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서 그렇다, 남들이 다 너 같지 않다. 다들 별 생각 안 하고 있을거니까 걱정마라. 떠들곤 했다. 염려인지 비꼬는건지 모를 말들을 들으며 맘을 진정해보려 해도 시기가 시기인지라 한번에 아픈 일들이 몰려오며 견딜 수 없게 된 나는 자살시도 후 정신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심심하고 지루할 것 같은 병원생활은 신기하게도 내게 안식이 되었다. 보호자와의 트러블이 가장 힘들어 금방 나오게 되긴 했지만, 우선 핸드폰이 없어서 병원 밖의 사람들과 소통할 창구가 없었다. 덕분에 펜과 노트를 끄적거리며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도 그 노트를 뒤적거리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불안할 때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는 글이 수두룩하지만, 그 때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고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다 외면하고 싶고 아무도 필요없을 거 같던 시기를 지나고, 당장의 내 감정보다 한발짝 뒤로 떨어져 나를 위로해주고 보살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걸 알게 되기까지 가장 가까운 애인이 노력해줬고 친하게 지내던 교회 사람들도 나를 붙들어주었다. 이 글에서 몰래 감사인사를 드린다.
두려워하며 내 곁에 아무도 없길 바란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 타인을 밀어내고 있었구나. 이걸 알기까지 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모든 관계가 끊어지면 좋겠다는 기도를 멈췄다. 대신 모든 관계를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허락하신 관계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