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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Oct 09. 2023

다문화교육

미래의 교육

 나는 교육학이라는 분야가 좋다. 2000년대 초중반,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직업은 찾아야겠고, 그때 가장 안정적이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인기 있는 직업이 선생님이었다. (지금 선생님 직업 인기 하락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선생님이 되려면 공부도 잘해야 하고 임용고시에 붙을 수 있는 끈기도 있어야 했다.

나는 정교사로 학교 선생님은 되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회사도 다녀보고, 여러 곳을 전전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학원인은 그냥 학생들을 많이 받아 이익을 창출하는 교육서비스업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내가 교육자라는 정체성으로 일을 해 왔었다. 제도 밖 교육현장에 있다 보니 별의별 아이들이 다 있었다. 그래서 후에 정서적인 부분을 다룰 수 있는 미술치료를 공부하게 되었고, 상담심리를 복수 전공하게 되었다. 미술치료 하면 아무래도 별 문제가 없는 아이들 보다는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나 정서적인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일반 학교 안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할 수가 없어 희망반에서 도움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케어가 계속 필요한 아이들이다. 나는 이 다양한 아이들을 가장 잘 지도할 수 있는 분야가 뭘까 생각하다가 다문화교육학과에서 상담을 전공하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교수님의 말씀 중, 세종대왕보다 우리가 더 진화된, 더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히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인물이다. 물론 그 업적은 대단하다. 하지만, 한 인간의 진화로 볼 때, 그 시대에 살았던 위대한 인물보다도,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더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사실은 새롭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종대왕도 그 사회에 맞게 살았을 뿐이겠지만, 우리가 더 인간다움을 지녔다는 면에서는 2023년 미래 시대에 살고 있는, 운 좋게 시대를 잘 타고난 우리의 승리일까.

 세월은 지나갈 것이고, 사회는 또 바뀌어 갈 것이다. 한국도 이제 다문화 사회로 변화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다문화 사회라는 걸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이 지나면, 한국인의 전형적인 얼굴은 귀한 얼굴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외형뿐만 아니라, 가치관도 생각도 많이 바뀔 것이다.


“초예측 부의 미래”에서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삼권분립(三權分立, trias politica, tripartite system) 또는 권력분립(權力分立, separation of powers)은 국가의 권력을 입법권(legislative power), 사법권(judicial power), 행정권(executive power)의 셋으로 분리하여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조직의 원리가 기본이었다. 이것이 국가를 이끌어 가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민주주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유발하라리는 앞으로는 하나의 컨트롤 타워에서 컨트롤이 가능한 사회주의 모델이 더 효율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은 후퇴되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는 사회주의 모델이 이 혁명적인 미래 시대에 다시 부활될 것이라고 상상하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미래의 세계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방향으로 돌아간다.


 나는 한 학년에 4반밖에 없는 경기도의 작은 초등학교 앞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한다. 이 장소에서 미술학원을 한 지 4년이 되었는데, 코로나가 지나고 3년째 되던 해, 초등학교는 3반으로 줄었다. 3반이면, 한 학년에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다고 할 때, 6학년까지 약 100명 정도의 아동들이 줄어드는 현상이 3년 만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한적한 동네이긴 하지만 환경이 좋은 동네인데, 이곳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거라면, 최근 서울 지역의 고등학교가 폐교되었다는 소식이 이상한 일이라고 볼 수도 없다. 앞으로의 교육의 방향도 기존 과거에 해왔던 대로 진행되어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학원의 한 남학생이 이번 주 토요일에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을 하는데, 한일전이라고, 이건 자존심 게임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나도 동조하며 당연히 일본은 이겨야지. 이건 우리 자존심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옆에 새로 학원을 등록한 여학생이 (외모가 깔끔하고 새초롬 한 일본 아이 같은) 앉아 있었다. 갑자기 나는 이 아이가 혹시 일본과 관련 있는 학생이 아닐까, 내가 말을 잘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00야, 너 한국사람이지?” 물어보니 너무 당연한 듯이 “네~~”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변명을 하듯이 아이들에게 설명을 했다. 요새는 다문화 사회라서 부모님이 외국인인 분도 많고, 외국에서 살다 와서 국적이 외국인 학생이 엄청 많다. 혹시 그런 친구들이 주변에 있으면 이런 말이 기분 나쁘거나 상처되는 말이 될 수도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니, 아이들도 맞다고 우리 반에도 엄마가 일본인인 아이가 있다고 하면서 너무 이해를 잘하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한국 땅에 있는 한, 학교에서 같은 반인 친구가 외국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살았는데, 그만큼 사회가 다문화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아이가 정보를 알려준 덕분에 축구 한일전을 시청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고 금메달 시상식까지 보게 되었다. 그런데 시상대의 위치가 태극기를 바라볼 수 없는 위치였다. 선수들은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부르다가, 태극기가 좌측에서 올라가는 모습을 보자, 앞쪽에 서 있던 선수가 몸을 태극기 쪽으로 돌리자 도미노처럼 모든 선수들이 몸을 태극기 쪽으로 돌렸다. 태극기를 등지고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문화 사회가 더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오게 될 텐데, 과연 부모가 외국인이거나, 국적이 섞여 있는 다문화 배경의 한국인들도 태극기를 향해 나의 조국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순수 한국인이 느끼는 그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제는 순수 한국인이라는 단어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표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사회이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우려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보면 이런 걱정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나부터가 사실 편견 아닌 편견을 갖고 있다.


 나는 토요일마다 다문화청소년협회에 봉사를 하러 간다. 한 부모 시설에서 지내는 다문화 아동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러 가는데, 어머니들이 중국, 베트남, 몽골 등 다양한 국적을 갖고 있다. 외모도 동남아시아 어머니를 둔 아이들은 우리나라 아이들과 다르게 생겼다. 하지만, 이 교육현장에서 국적을 염두에 두고 저 아이는 우리나라 아이가 아니지, 하고 대하지 않는다. 사람 자체로 대한다. 그냥 눈망울이 유독 커서 귀여운 아이들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다문화 사회에서도 사람들을 배경이 다르다는 조건을 붙이지 않고, 편견 없이 인간 그 자체로 대한다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아가 교육에서도 이제는 사람 교육을 더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학교 교육  안에서 “인간” 교과를 만들어서 인간 자체를 탐구하고 공부하는 과목을 만들면 어떨까. 이번 “학교개혁과다문화교육”에서 교수님께 배우고 있는 내용들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단일 민족이라는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이제는 과거형인) 이 단일민족에서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교육의 개혁은 또 다른 나라가 볼 때, 혁신적이고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에서 참 많은 수난을 겪으면서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섰던 한국의 새로운 교육 개혁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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