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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Jan 23. 2023

장00 미술학원

사람들 사람들 5

  전혀 상처받지 않았고, 지금도 지인에게 농담하듯 이야기하는 어린 시절 일화가 있다. 7살 때 다녔던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렸던 날, 모든 것을 뚜렷이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 나는 흰 스케치북 위에 겨울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눈을 큼지막하게 그리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나는 손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눈송이가 너무나 아쉬웠다. 하늘에서 대왕 풍선처럼 커다란 눈이 내리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그렸다. 스케치북 하단엔 모자를 쓰고, 고구마를 맛있게 먹는 사람을 그리는데 옆에 있는 친구가 내 그림을 보며 “와, 사람이 고구마 먹는다. 웃긴다.” 말하며 재미있어했다. 그렇게 파안대소하는데 우리 반 선생이 다가와 내 그림을 유심히 보더니 별안간 내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다.(당시 정말 화나면 주먹, 별 거 아니면 머리카락 잡아당기기. 손기술이 화려한 선생이었다) 그러면서 했던 말이, 지금 생각해도 걸작품이다. “야, 눈 이렇게 내리면 사람 깔려 죽는다. 어딜 이렇게 그려.” 당장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하기 전에, 일단 맞은 머리가 너무 아팠다. 옆에 있던 친구도 웃음을 멈추고, 눈치를 보더니 그림만 묵묵히 그렸다. ‘죽는다’의 의미를 대충 알고 있어서,  스케치북을 넘기고 새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의 눈은 아주 아주 자그마했다.


 선생의 말이 황당한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다. 어처구니없어서 픽 웃는다.  그 이후로 정형화된 그림만 많이 그렸던 것 같다. 맞는 건 싫으니까. 무엇보다 누군가를 ‘죽이는’ 그림은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 일 년이 그랬다. 내 그림이 자유로워진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때 내가 선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일단 상상력을 가미한 눈에 주목하고 질문했을 것 같다. 커다란 풍선 같은 눈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러면 “선생님도 그런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풍선같이 큰 눈을 타고 날아가고 싶어!”라고 활짝 웃으며 동심에 공감해 줘야지. 아니다. 일단 어린이들이 퍽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겠다. 어린이들에겐 어린이들끼리 행복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속이 간질간질할 것 같다. 나도 저 틈에 껴서 와하하 웃고 싶다, 타이밍을 재며 기다리겠지.


 ‘장00 미술학원.’ 그 학원의 이름이었다. 우리 반 선생은 다름 아닌, 그 학원의 원장이었다. (보통 원장의 이름을 따서 학원 이름을 지으니) 내심 이름의 의미도 궁금해진다. 장00 씨는 장00 씨 마음대로 어린이를 휘두르려고, 장00 씨 취향대로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를 ‘양산‘하려고 학원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건가. 아니더라도 그 선생은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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