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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Feb 03. 2023

천천히 뒤집히고 있었다.

숨구멍 3

  김선규는 김이선의 고향을 다녀온 후 처음으로 밤이 아닌, 낮에 그 카페를 방문했다.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며 울리는 나무 바닥을 밟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페에 상주하는 나이 많은 리트리버가 누워있다. 차임벨 소리에 그는 잠시 고개를 들고 문 쪽을 보다 다시 제 팔에 머리를 묻었다. 원래 같으면 가볍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밟을세라 조심조심 넘어 들어갔지만, 오늘은 쪼그려 앉아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빛바랜 털 사이에 간간이 보이는 금빛실. 문득 개의 심장을 덮은 털을 쓰다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김선규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


 맨 안쪽에 들어갔을 때 머리를 높이 올려 묶은 호리호리한 여직원이 저를 알아봐야 하는데. 김이선과 매주 토요일 밤마다 와인을 마셨는데, 가끔 둘이 여행을 떠나거나, 공교롭게 둘 다 일이 밀리면 한 달 넘게 들리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랜만에 오셨어요!”하고 저희를 알은체했다.


 늘 있던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와 같이 일하는 직원 말고는. 묻지 않았다. 김선규는 화이트스파클링 와인과 클럽샌드위치 하나를 시켰다. 좁고, 창문을 내지 않아 어둑한 카페. 김선규는 은은히 주위를 밝히는 노란 조명 촉을 가만히 지켜보다 가방 앞주머니에 든 안약을 꺼냈다. 양쪽에 한 방울씩 넣은 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깜빡였다. 실링팬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옆에 끊이지 않고 들렸던 선율이 이젠 들리지 않는다.


 이틀간, 김이선이 자라왔던 곳을 여행했다. 오늘은 김이선과 자주 가던 카페에 갔다. 미묘하게 세상이 바뀌는 게 보였다.  근데 참 잦아. 기어이 알아챌 만큼. 결국 다 알아버릴 날도 오겠지. 김선규는 와인을 울며 들이켰다.


 천천히 뒤집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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