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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완 Feb 22. 2023

이젠 좀 알겠다.

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 3

  100일 그리기 수업이 어느덧 일주일이다. 첫 수업을 마치며, 생각보다 좀 더 어려울 것 같아 걱정했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내일은 무엇을 그릴지 기대가 된다. 주로 카페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집에 와서 채색하는 식이다.


 매일 올라오는 단체 채팅방에 핀터레스트 자료 하나를 골라 스케칭 펜슬로 밑그림을 따라 그린다. 리터치용 펜으로 피그먼트 라이너(STEADTLER)와 피그마 FB(Sakura) 중 내 손에 더 잘 드는 게 피그마 FB이다. 밑그림을 리터칭하고 지우개로 연필 선을 말끔히 없앤 뒤 수채화나 색연필로 채색한다. 사용하는 재료를 늘리거나 바꾸지 않는다. 초심자가 재료를 갑자기 교체하면 이미 손에 익은 재료를 사용할 때보다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까. 인간관계처럼 재료도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글쓰기는 결과물이 나올 때 비로소 즐겁다. 내가 낳은 글은 누가 뭐래도 내 눈에 예뻐 보이지만, 작업 과정은 고되다. 매일 글감을 선정할 때마다 한계를 느끼고, 수십 개의 비문을 쓰고, 기껏 한 문단을 완성했는데 본래 쓰려던 주제와 어긋나 그걸 통으로 날리는, 막막하고 지루한 시간을 견딜 때가 있다. 반면에 그리기는 시간은 걸리지만, 작업할 때 잡념이 많지 않다. 잡념이 사라지는 게 알맞은 표현이겠다. 시간도 후딱 간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나인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중하는 나를 보는 게 신기하다.


 이렇게 말하니까, 자식 비교하는 못된 엄마가 된 느낌인데... 두 가지 모두 내가 나를 지탱하는 데 긴요한 일과이다. 글을 쓰는, 그림을 그리는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나이다. 사유하고 몰입하는 나. 어떤 작품이든 그걸 온전히 사랑하는 나. 내 작품은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담겨있다. 그걸 사랑하는 내가 좋다.


 나를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세간이 떠들어대는데, 그게 뭔지 도통 모를 때가 있었다. 그 시간이 아주 길었다. 남들은 잘만 하는 것 같은데, 나에겐 너무나 어려웠다. 여전히 부족한 것투성이인 내가 밉고 심지어 이 세상에서 아예 사라지길 바랐다. 글과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나를 다독이고 완성한 걸 사랑하면서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게 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앞으로도 좀 더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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