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간의 그녀
어떠한 말이 필요한지 결정하지도 못한 채 터져나올것만 같은 감정을 다스리지 어쩌지 못하고 만다.
사실, 글이라는 것을 풀어낼 수가 없다 요즘.
꽉 차 오르는 그 무언가는 가득한데,
주제, 제목, 결말조차 쉽게 떠오르지 않는
벙어리같은 머리속 생각들과 소재들만 이리 저리 쌩쌩 그네를 탈 뿐이다.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서 쓰는 짓을 멈추고 읽는 것에 집중하기 마음을 먹었다.
이 사건과 마주하기 바로 직전까지만해도....
***
언제나 날이 가면 갈수록 느끼는 위태로움이지만,,
세상이라는 이곳은 참 날벼락 같다.
순식간에 떨어지는 하늘의 진노같음을 느낄 때도 많다.
연신 윙 윙 귓가를 떠나지 않는 참혹한 사건과 사고, 그 중 살인사건들이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닌데 말이다.
살인범, 그 자들에 대한 분노는 굳이 따로 덧붙임을 하지 않더라도 모두 같은 느낌일것이라 믿는다.
살아있던 마지막 순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 50여일간 있었던 그녀를 떠올려본다.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워 뇌까지도 저려온다.
아무도 모른 채, 비밀을 간직한 채 죽어간 그녀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죽음의 끝, 천국에 있을까.
옛날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억울하게 죽어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떠돌며 처녀귀신이 되었을까.
그나마 영혼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잠시나마 안겼으면 좋으련만.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한 것 외 그녀에게 물을 특별한 책임이나 잘못이 없다는 사실에 다만 고개가 저절로 떨구어 질 뿐이다.
사랑이란 다른 이름은 무엇일까.
아름답기만 한것이 아님을 알지만 그렇다고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설명하기 힘들다.
오직 믿음: 그 단어 하나로 사랑이라는 이름에 목숨을 걸기엔 너무도 무모한데 말이다.
점점 변질 되어가는 사랑의 돌연변이적인 성향에 대해 떠올려보면 전기 뱀장어에 물린 듯 온 몸이 파르르 떨린다.
무지해서가 아니라 쇠뇌 당하는 것이었다면
어찌 설명할터인가.
외로움에 절어 사람냄새가 그리워 그랬다 말하기엔.. 그들의 동거가 익숙한 모습은 아니다.
한 남자와 두 여자-
죽은 여인은 약혼녀, 살아있는 목격자는 여자친구.
상식적이지 않은 이 만남을 우리는 무엇이라 표현해야 옳은것인가?
며칠 간 많은 잡 생각에 가만히 몸을 담그고 있었다.
굳이 나올 생각도 없었거니와 나올 힘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스쳐가는 잡념들에게 온전히 나를 맡기는 시간이었다.
차분해짐을 느꼈지만, 동시에 나태해짐과 우울함이 동반되어 한없이 내려 앉아 있음도 느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이 감정들을 쏟아부을 글짓기는 웬지 모르게 더 할 수가 없었다.
무기력과는 또다른 의미로- 그저 쓰는 행위를 누군가에 의해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깊은 밤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움으로 지켜보며-
곧 그것이 침울함이라는것을 눈치챘다.
티비 속 그녀의 마지막은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침울한 기운을 어쩌지 못해 서성이다 유투브에 올라 온 영어 예배를 찾았다.
가끔은 그안에서 놀라운 해답을 얻기도 하므로.
우리가 늘 묻고자 하는 질문- 옳고 그름.
어느 정도 질서를 다잡기 위한 틀 안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법이라는 것을 만들었지만, 진정한 마음 혹 진심이 담긴 실오라기 같은 양심이라도 빠져버린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설교를 통해 Grace and Truth이 말하고자하는 의미가 깊이 와닿았다.
울림
언제나 그것은 가슴 속 깊은 곳을 쑥 찔러 온전히 깨닫지 못하더라도 최소 미미한 흔들림으로 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
어쩌면 정체모를 쾌감도 느낀다.
정확한 기준을 통해, 예수의 삶을 통해,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으나
만져주거나 일깨우지 않으면
영원히 우리 안에 갇혀버리는 그것.
사실, 점 점 더 결핍되어 더 얻고자하는 갈망과 갈급함- 말씀 속 Grace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였을까.
23세 그녀가 믿었던 사랑이
상대에게는 무엇이었을까.
농락이고 기만이었을까-
호기심에서 발전 된 그들 둘만의 언약이 몇년이었던 간에, 단지 50일만의 동거 끝에 그녀는 타국에서 싸늘한 송장이 되어 살아 생전 느꼈던 그 외로움의 덫 안에 영 영 갇혀버렸다.
목적을 가지고 감정을 키워내고 모든것들이 의심으로 다가온다면 과연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과연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추한 글자로 처참히 망가져야만 하는가.
끝없는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놀잇감- 먹이감이 되도록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나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는 분노에 휩싸였다.
멀리서 지켜만 보아도 그 같은 분노로 인해 나의 목구멍에는 가시같은 것들이 씁쓸함으로 돋아나 침을 넘길 때마다 더욱 타들어가며 갈기갈기 찢어 상처가 나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
언제부터 시작이었을지 모를 그자의 이기심으로 짓밟힌 그녀의 영혼은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사람의 탈을 쓴 악마에게 일일히 보고를 하며 쫓겨 지옥같은 그곳에서의 탈출을 꿈꿔왔을지도 모른다.
손을 내밀어도 도움을 받지 못할꺼라 그렇게 믿었을것이다.
또한 달리 벗어날 방법이 없었기에 그녀는 벗어나지 못하고 오직 돈'만이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방패라 믿었을 것이다.
맞은 곳을 또 맞아 갈비뼈가 수도 없이 부러져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마음을 졸이며 그렇게 숨죽이고 있었다.
멀쩡하던 그녀가 고통을 호소하며 찾아간 병원에서 고막 수술을 하고, 넘어져 다쳤다고 둘러대며 찾아간 치과에서 미심쩍어 찍어둔 사진 속 그녀의 얼굴은 멍투성이로 범벅이 되어 턱뼈가 두 군데나 으스러져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녀는 폭행을 당했냐는 의사의 질문에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자가 함께 동행하며 그녀의 모든 것을 감시했기 때문이겠지..희미한 추리만 할뿐이다.
싸늘히 식어버린 그녀를 부검했을 당시 발견한 갈비뼈- 곁가지처럼 뻗어나오고자 애써 몸부림을 쳤을것만 같은 새로운 뼈.
마치 희망을 쫓아 솟아났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슬픔이 밀려왔다.
수시로 반복적으로 가해졌을 폭력은 아픈 그녀의 영혼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해 고통을 그대로를 온 몸으로 고스란히 흡수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을것만 같은 네모난 맨션 룸 안 울타리.
감내해낼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던 반복적인 고통들은 그녀를 완전히 쇠뇌시켰을 것이고 그 작은 울타리 안에 그녀의 영혼을 봉인해버렸다.
아마도 지친 육체와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그자의 쳇바퀴안에서 돌고 돌았을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온전히 사육 당했다.
그 잔인한 표현밖에..
다른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미안할 뿐이다.
건장한 체구.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무력에 반항이라는것을 할 수록 더 힘들었을 것이 연상된다.
즐비하게 늘어놓은 운동 기구들이 보여졌을 땐 정말이지 섬뜩했다.
도구를 이용해 마음껏 그녀를 사육했고,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옳고 그름이라는 것을 잊었을 것이다.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아직도 죽음의 이유가 돈을 목적으로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 검찰은 폭행과 죽음에만 집중할 뿐.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한 관심은 없는 듯 보였다.
단 50여일간에 그녀라는 꽃은
그렇게 아무렇게나 짓밟히고 말았다.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이 비정상적인 사건을 통해 떠오르는 생각은 단 몇가지뿐이었다.
나의 몸과 뇌도 사실 정상적으로 회전하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어찌 하나님은 보고만 계시는걸까.
그것도 잠시...
이기적이게도 난 아줌마라 그런 일 당하지 않을꺼야..라는 안도감.
또한 그런 일 없이 순탄하게 이어진
내 지난 과거에 대한 감사함.
가슴 아프다, 어찌이런일이 있느냐 분노하지만 결국은 나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있을뿐이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것이 끝이 아니였다.
순간 엄습해오는 불안과 걱정 속 비춰지는 그림.
언제가 되었든 곧 사랑에 빠질 나이가 올테고, 이성에 눈 뜰 우리 아이들의 모습..
눈 뜨고 대낮에 코 베이듯 당할 수만은 없는데... 그저 낮은 신음 소리만 흘러나왔다.
또한 운이 나빠서 그렇다는 변명이나 위로를 삼기에 우리 모두의 아이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예쁘다.
'어른이 후진데, 아이들이 폼날리 없다-'
예전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가 와닿아 메모까지 해두었던 게 떠올랐다.
반성해야한다.
죽도록 반성해야한다.
매일같이 변화를 위해 달라져야만 한다.
있는 힘껏-
그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모든 기괴한 사건들은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 낸 전염병 같은것이라 생각한다.
점점 더 강도가 세지고 막강한 힘을 가진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면 만들수록 점 차 더 완전한 돌연변이의 형태를 지닌 괴물.
아이들이 잠자기 전 잠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런 저런것들을 나누며, 큰 아이에게 문득 이런 메세지를 전달해주고 싶었다.
악한 세상을 견딜 수 있는 방법.
또한 괴물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God is good and always watching over you, 24 hours.
감시라면 감시일테고, 동행이라면 동행일것이다.
사소한 잘못이라도 언제나 죄책감을 가지고 양심에 따라 행동해줄 것을 당부했다.
덧붙여, 언제까지나 부모가 따라 다니며 보호해 줄 수 없는 노릇임을 고백했다.
실제로 그것이 현실임을 이미 아이들은 더 잘 알고 있을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커다란 유산은 무엇인가.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만약 운이라 칭한다면..
그 천박한 운이라는 것을 잠재울 수 있는 것.
최소한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만남의 축복-을 위한 기도뿐임을.
주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기를 기도하는 것뿐임을.
He replied, " This kind can comes out ONLY by prayer" -Mark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것으로 이런 종류가 나갈 수없느니라 하시니라.)
어찌보면 너무 작고 사소한 일이라 여기며 나 자신을 비겁자라 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위험에 처한 피같은 내 자식을 위해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온몸으로 막아내지는못할 망정.. 편하게 앉아서 기도라니...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에게 그것은 가장 작은 일임과 동시에 가장 큰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꾸준히 매달릴 수 밖에 없고,
그것을 기반으로 삼는 기도는 축적이라 믿는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그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May 23.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