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사랑에 빠진 사람의 행동을 해 본 적이 없다. 상대의 눈,코,입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며 설레고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고 기뻐하며, 뒷모습이 점이 될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는 그런 행동 말이다. 내가 들인 감정만큼을 상대가 보여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며 삐치는 유치한 짓거리도 드물었다.
그렇다. 풋사랑에 설레는 10대에도 격정에 휩싸이는 20대에도 그런 감정은 나를 쉽게 지나친 적이 없었다. 소모적이라고 생각해서 자연스러운 감정을 일부러 억누르기도 했고, 뜨거운 감정을 불러 일으킬만한 매력적인 상대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게 피곤했다.
36살이 된 이제야 늦바람처럼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 '눈에 아른거린다'는 표현은 그저 많이 좋아한다는 은유인 줄만 알았는데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실제 상황이라는 것도 알게됐다. 마치 망막에 상대가 그려진 얇은 셀로판지가 덧대인 것처럼, 그렇게 눈에 아른거린다. 다가설 때는 상대의 사랑스러운 향기에 코를 실룩이게 된다. 방금 보고 헤어졌는데 벌써 그리워진다. 아, 사랑스러운 그대.
두 돌을 앞둔 내 딸에 대한 얘기다. 내 몸을 거쳐 나온 이 생명체는 윤지나라는 사람으로부터 이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에 놀라워 해야 할 것 같다. 생색내서 미안하다만. 일단 우리 부모님부터 내가 변했다고 한다. 내가 '나온' 가족이 아니라 내가 '만든' 가족이라 다른 것이라고 이상한 설명을 해줬다. 나에게 가족은, 그러니까 내가 '나온' 가족은 그동안 어떤 의무감이나 동맹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물론 그들을 사랑하고 아꼈지만, 딸에게 느끼는 감정 같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뭐랄까, 연애를 하는 기분이다.
물론 그냥 연애가 아니라 힘든 연애다. 일단 상대는 자기 맘대로 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파괴할 준비가 돼있는 폭군이다. 딸이 울 때면, 인간이 아이의 울음을 견딜 수 없게 진화한 게 아닐까 하는 진지한 고민을 할 정도다. 내 몸의 DNA가 자신의 번식을 위해 내 DNA 복제품에 쩔쩔매게 만들었단 말이다. 자, 그녀의 요구를 어서 들어줘! 넌 저 울음소리를 견딜 수 없도록 오랜 세월을 거쳐 프로그래밍 됐다고!
밥벌이와 가사, 육아노동의 끝나지 않는 굴레에서 하루라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래서 출장 간다고 거짓말을 한 뒤 부모님께 딸을 맡기고 어디 짱박혀서 푹 쉴까 고민도 하지만, 사랑에 빠진 자는 또 그녀를 보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른다. 어렵게 만난 그녀는 이런 마음도 모르고 나를 괴롭히니, 어떻게 보면 연애가십에서 말하는 '나쁜 남자' 캐릭터처럼, '나쁜 여자'다. 내가 만든 힘들고 사랑스러운 가족, 나의 딸. 불금은 그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