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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Mar 14. 2022

가오를 위하여

남성 동료들에게 "남자가 망하는 주된 이유는 가오 때문이다. 가오 부리고 싶을 땐, 이게 나한테 이익이 되는지 꼭 따져보고 폼을 잡으시라"라고 조언해왔다. 하지만 이렇게 떠드는 내가 정작 가오에 죽고 사는 사람이다. 얼마 전에 만난 한 대기업 임원 언니에게 월급이 적다 한탄을 했다가 "여자는 나이 들수록 가오야. 돈이 없어서 일하니. 뽀대 나는 명함 때문이야"라고 갈! 하셔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래, 나에게 이상한 인정 욕구가 있는 것 같아.    


이런 나에게 가오가 상하는 상황을 참고 견디는 건, 지금부터 모든 식사 시간을 체하는 시간으로 대체한다는 의미이거나 분노에 사로잡혀 눈에 핏발이 선채로 지내며 가족과 동료에게 매사 짜증을 내는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찌감치 여러 윤지나로 살면서 밸런스가 상당히 깨져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가오가 밥 먹여주냐? 그렇지, 밥 안 나오지. 그런데 나는 충분히 돈 많아서 밥은 먹고 살거야, 괜찮아. 이렇게 가오가 상하느니 다 때려치워 버리겠다, 하는 것이 어쩌면 부조리를 정정당당히 대면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카뮈만큼 훌륭한 사람도 아니다. 


사방에서 나를 달래거나 위로해주는 연락들을 한다. 같이 화내주는 사람이 내 성정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가운데, 각자 위치한 조건들에 따라 나에게 나름의 솔루션을 제시해주었던 것도 새겨 들었다. 심지어 먹여주고 입혀주고 선물도 막 해주는 주위를 보면,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 같다. 이 많은 얘기들 속에서 진정 위로가 됐던 건, 복잡할 때는 그냥 'brutal instinct'에 따르라는 말이었다. 그래, 나만 생각하자. 어쩌면 한 번 사는 내 생에 떠밀린 기회가 온 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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